“투자금 10배 빌려드립니다”
피싱 사기의 실체와 피해자들

“기사에 나온 투자 레버리지 사기를 당한 것 같습니다. 투자금 명목으로 ○○스탁에 입금한 돈 600만원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기사에 나온 수법이랑 똑같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월 19일 최정미 레버리지박멸단장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을 이정현(가명·44)이라고 밝힌 피해자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11월 18일 보도한 ‘투자금의 10배 빌려드립니다, 레버리지 사기의 교활한 실체’를 읽은 뒤 자신이 레버리지 사기의 덫에 걸렸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씨는 ‘지급정지 신청’ 제도를 통해 피해금 600만원을 돌려받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진통의 연속이었고, 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피해금을 모조리 날렸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씨는 ○○스탁 관계자들로부터 ‘지급정지 신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까지 들어야 했다. 더스쿠프가 ‘레버리지 사기 보도 그 후’ 이야기를 취재했다. 

레버리지투자를 빌미로 한 신종 피싱 사기가 활개를 치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정현씨는 주식투자 열풍에 뛰어든 이른바 ‘주린이’였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높아진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조금씩 쌓여가는 손실에 고민이 커지던 중 이씨의 눈에 리딩방이 들어왔다.

# 레버리지 사기의 ‘덫’
11월 초 이씨는 한 리딩방에 참여했다. 처음엔 참고용으로만 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리딩방의 유혹을 떨쳐내는 건 어려웠다. 리딩방에서 언급된 종목의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이씨는 조금씩 리딩방에 빠져들었고, 이후 열흘 동안 리딩방의 추천종목을 따라 투자에 나섰다. 운이 좋았던 탓인지 리딩방의 추천종목으로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리딩방에 반신반의했던 이씨의 마음이 확신으로 바뀐 것도 이때다. 그는 리딩방에서 모집하는 VIP방에 관심이 쏠렸고, 그 방의 ‘주인장’에게 관련 문의를 남겼다. 그러자 자신을 ‘○○스탁’ 박 팀장이라고 밝힌 상담원이 이씨에게 접근했다.[※참고 : 이정현씨가 참여했던 리딩방은 공교롭게도 더스쿠프가 11월 18일 보도한 ‘ “투자금의 10배 빌려드립니다” 레버리지 사기의 교활한 실체’란 제목의 기사를 취재할 때 접촉했던 ‘○○스탁’이었다. 수법도 기사에서 언급한 것과 똑같았다.]

○○스탁 상담원은 이씨에게 VIP방 회원들의 수익 인증 사진을 끊임없이 보냈다. 자신들이 추천한 종목의 주가가 몰라보게 상승했다는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VIP방에 들어가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탕발림도 빼먹지 않았다. 대략 이런 식이었다. “급등 가능 종목을 선점해 알려줍니다. 초보 투자자가 잡기 어려운 매수·매도 타이밍도 알려주고요.”

주식투자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에 이씨의 의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VIP방 회원의 수익률 인증을 보니 마음이 동했다”며 “자신들의 HTS(홈트레이딩시스템)를 사용하면 VIP방 회원비를 받지 않겠다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증권사의 HTS와 연동돼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홍보했다”며 “HTS를 이용하면 투자금의 10배에 달하는 돈을 무이자로 빌려주겠다는 말에 혹해 투자를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 3일 만에 증발한 투자금
상담원의 말에 넘어간 이씨는 11월 중순 3번에 걸쳐 총 600만원을 입금했다. 이씨는 600만원을 입금하면 10배에 달하는 60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투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유자금을 모두 끌어 600만원을 만들었다. 6000만원의 레버리지를 이용해 10%의 수익만 올려도 투자원금에 해당하는 6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씨가 돈을 입금한 곳은 ○○스탁이 알려준 ‘○○숍’이란 법인의 통장이었다. 돈을 입금한 회사명이 ○○스탁이 아니었지만 이씨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두개가 같은 회사라고만 여겼다. 이씨는 “돈을 넣으라고 알려준 법인통장이 ○○스탁이 아니었지만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며 “A배달앱에서 결제하면 앱을 운영하는 회사 이름으로 결제 통보가 오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투자금을 입금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VIP방에서 추천한 종목의 주가는 빠르게 하락세를 타면서 손실이 커졌다. 돈을 입금한 지 3일 만에 이씨의 투자금은 60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스탁은 “투자손실이 커져 빌려준 레버리지를 회수할 수밖에 없다”면서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증거금 명목으로 돈을 더 입금해야 한다”는 말로 이씨를 다시 꼬드겼다.

하지만 ○○스탁의 HTS는 정상적인 주식매매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었다. 증권사의 HTS를 모방해 만든 가짜였다. 투자금의 1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도 진짜 돈이 아니었다. 고객을 꾀기 위해 만든 가짜 돈이었다. 다행히 이씨는 추가 피해에선 벗어날 수 있었다. 추가 입금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이씨가 우연히 ‘레버리지 사기’ 관련 기사를 접했기 때문이다. 이씨가 최정미 단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피싱 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은행 지급정지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뉴시스] 

이씨는 “레버리지라는 문구를 보고 기사를 읽었는데 자신이 겪고 있는 일과 같았다”며 “그제야 내가 신종 피싱 사기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칫 잘못했으면 피해가 더 커졌을 것”이라며 “그럴듯한 웹 사이트까지 버젓이 운영하고 있어 피싱 사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환불요구와 연락두절
추가 피해는 면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이씨가 입금한 600만원을 돌려받아야 했다. 문제는 이씨가 ○○스탁에 관해 알고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자신을 상담한 ○○스탁 박 팀장의 전화번호와 돈을 입금한 ○○숍의 계좌번호가 전부였다. ○○스탁 홈페이지에는 업체의 주소는커녕 그 흔한 사업자등록번호도 나와 있지 않았다.

11월 19일, 이씨는 ○○스탁 박 팀장에게 연락해 입금한 돈을 환불해 달라고 요청했다. 돌아오는 답은 당연히 “안 된다”였다. 주식투자 실패로 발생한 손실이니 돈을 돌려줄 의무가 없다는 이유였다. 이씨가 계속해서 환불을 요구하자 박 팀장은 연락을 끊은 채 잠적했다. 이씨가 수차례에 걸쳐 문자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이씨에게 남은 방법은 ○○스탁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최정미 단장은 이씨에게 “○○스탁을 피싱으로 신고하고, 투자금을 입금한 계좌에 지급정지를 신청하라”며 “돈줄이 막히면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올 것”이라고 알려줬다. 11월 23일 오전, 이씨는 최 단장의 조언대로 투자금을 입금한 계좌를 경찰에 피싱 범죄 혐의를 들어 신고했다. 레버리지 사기꾼들이 피해금을 빼돌리는 걸 막기 위해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도 했다.

# 뻔뻔한 거짓말
이씨가 지급정지 신청을 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에서 연락이 왔다. [※참고 : 지급정지 신청 이후 피싱범들이 어떻게 이씨를 특정해 연락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시중은행은 지급정지 신청자의 정보를 계좌주나 외부에 제공할 수 없어서다. 전문가들은 범죄 과정에서 입수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활용해 지급정지를 신청한 고객을 특정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11월 23일 오후 전화를 걸어온 남자는 자신을 ○○숍 대표 최영준(가명)이라고 밝혔다. 돈을 돌려달라는 이씨의 요구에 꿈쩍 않던 사기꾼들이 돈줄이 막히자 반응을 한 셈이었다. 하지만 레버라지 사기꾼들은 이 과정에서도 이씨를 기만했다. ○○숍 대표 최씨는 자신들은 ○○스탁과 거래를 하는 편집숍으로 3자 사기를 당했으니 지급정지를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숍 대표 최씨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스탁은 우리 회사의 거래처 중 하나다. 이씨가 지급정지 신청한 ○○숍 법인계좌는 ○○스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도 ○○스탁에 사기를 당한 것이다. 지급정지를 취소하지 않으면 사기죄로 이씨와 ○○스탁을 모두 고소하겠다. 경찰서로 가고 있으니 곧 경찰의 연락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숍(올해 5월 설립)과 ○○스탁은 한통속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숍 대표가 경기도에 설립한 또다른 법인의 주소는 과거 레버리지 사기에 사용된 대포통장 법인의 주소와 같았다. 꼬리가 밟히면 법인을 없애고 새로운 법인을 세워 피싱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사례다.

조새한 법무법인 자산 변호사는 “문제가 된 법인을 말소하고 새로운 법인을 세워 범행을 이어가는 피싱 범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대포통장 법인을 추적한 결과, 한 주소에 7~8개의 법인이 등록된 사례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 협박과 회유
○○숍 대표 최씨의 으름장에도 이씨는 “투자금을 모두 돌려받기 전까지는 지급정지를 취소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다음날(11월 24일) ○○스탁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급정지를 풀지 않으면 이씨를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관계자는 ○○숍이 자신들과 연관이 있는 법인이라고 인정했다.

○○스탁 관계자는 “○○숍 계좌주도 우리 쪽 사람”이라며 “지급정지를 풀어주면 일이 커지지 않도록 중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급정지를 풀지 않으면 고소 등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며 “서로 피곤해지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이씨를 되레 협박했다. 

○○스탁의 계속된 전화와 문자에도 이씨가 꿈쩍하지 않자 이번엔 회유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스탁 박 팀장과 이씨의 통화를 간추린 내용이다. 독자에게 상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1문1답으로 정리했다.

지난해 인터넷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13만6074건에 달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인터넷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13만6074건에 달했다.[사진=연합뉴스] 

○○스탁 박 팀장(이하 박 팀장) : “부장님께 회원님이 우리 계좌를 신고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남은 투자금 50만원을 돌려주겠다. 지급정지를 해지해 달라.”

이정현씨(이하 이씨) : “레버리지 사기라는 걸 알았다. 투자금을 모두 돌려줬으면 좋겠다.”

박 팀장 : “그렇다면 회원님의 투자금 600만원 중 300만원을 돌려주겠다. 내일 지급정지가 해지된 것을 확인하면 나머지 300만원을 입금하겠다. 대신 내일 오전에 바로 지급정지 신청을 철회해 달라. 계좌가 막혀 있어 일을 할 수 없다.”

이씨 : “○○스탁의 말은 믿을 수 없다. 600만원을 모두 입금해 달라.”

박 팀장: “지급정지로 계좌가 묶여 있어 돈을 찾을 수 없다. 한번에 돈을 줬다가 회원님이 지급정지를 풀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회사에선 오늘 지급정지를 풀지 않으면 거래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이씨 : “어쩔 수 없다. 투자금을 모두 돌려주지 않으면 지급정지 신청을 풀지 않겠다.”

박 팀장 : “돈을 돌려주면 바로 지급정지를 해지해 줄 수 있나.”

이씨 : “그렇다.”

박 팀장 : “그럼 내일 오전 9시 전에 돈을 입금하겠다. 은행 문이 열리는 대로 지급정지를 취소해 달라.”

벼랑에 몰렸기 때문인지 ○○스탁은 다음날 이씨의 피해액 600만원을 모두 돌려줬다. 하지만 이씨처럼 돈을 돌려받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다. 최정미 단장은 “이씨는 운이 매우 좋은 경우”라며 말을 이었다.

“이번 경우는 대포통장에 상당한 범죄 수익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포통장에 묶여 있는 돈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지급정지 취소를 전제로 거래에 나선 것이다. 대다수의 레버리지 사기꾼은 통장에 남은 돈이 많지 않으면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범죄 수익금을 포기하더라도 끝까지 피해자를 괴롭히겠다는 심산에서다. 얼마 전 한 피해자는 ‘레버리지 사기꾼에게 대포통장에 남은 돈이 200만원밖에 없어 돈을 돌려주는 것보다 통장을 버리고 새로 만드는 게 낫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 지급정지 제한적 효과
이씨는 다행히 피싱 피해금 600만원을 돌려받았다. 지급정지 신청 과정을 빨리 밟았던 게 피해금을 돌려받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최 단장이 지적한 것처럼 이씨의 사례가 드문 케이스란 점이다. 레버리지 사기와 같은 신종 피싱 범죄의 경우, ‘지급정지’ 대상으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다. 

시중은행 지급정지의 근거인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를 지급정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은 지급정지 대상에 해당하지만 주식정보·레버리지 제공을 빌미로 한 피싱 범죄는 지급정지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참고 :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은 지급정지 대상으로 대출의 제공·알선·중개를 가장한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레버리지를 빌미로 한 피싱 범죄를 지급정지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조새한 변호사는 “현재 법은 지급정지 대상인 피싱 범죄의 범위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피싱 범죄의 수법이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만큼 관련 규정을 현실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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