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식 계열분리 기대와 우려 

내년 5월 구본준 LG그룹 고문이 독립한다. 최근 LG그룹이 새 지주사를 만들어 LG상사,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 MMA를 떼어내기로 결정해서다. LG그룹 측은 ‘기업가치 제고’ ‘성장 잠재력’ ‘외부 사업 확대’ ‘사업기회 발굴’이라는 말들로 계열분리의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시장 주변에선 기업을 위한 분할分割이 아니라 오너를 위한 분가分家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LG식 계열분리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냉정하게 짚어봤다. 

LG그룹이 4개의 계열사를 떼어내 구본준 고문을 위한 계열분리에 나선다.[사진=뉴시스]
LG그룹이 4개의 계열사를 떼어내 구본준 고문을 위한 계열분리에 나선다.[사진=뉴시스]

거의 2년 반 만에 LG그룹의 계열분리가 현실화됐다. 2018년 6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선임되자 구본준 LG그룹 고문을 중심축으로 계열분리가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관건은 ‘어떤 계열사를 언제 분리하느냐’였는데, 결정이 나온 셈이다. 

LG그룹은 지난 11월 26일 새로운 지주사(구본준 고문이 대표이사)를 설립해 LG상사(판토스 포함), LG하우시스, 실리콘웍스, LG MMA를 묶어 분리(인적분할)하기로 결정했다. 내년 3월 26일 ㈜LG의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승인절차가 마무리되면 5월 1일부터 4개 기업은 LG그룹에서 완전히 분리된다. 

LG그룹 관계자는 “성장 잠재력을 갖춘 사업회사들을 주력기업으로 육성해 각각의 지주회사와 자회사들의 기업가치도 올라갈 것”이라면서 “이번 계열분리를 통해 LG그룹은 전자ㆍ화학ㆍ통신서비스로 주력 사업을 좀 더 단순화할 수 있게 됐고, 덕분에 역량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요한 건 새로운 지주사와 이 지주사에 포함돼 분리되는 계열사들의 전망도 밝으냐다. LG그룹의 해석은 긍정적이다. LG 관계자는 “각각의 기업은 해당 산업에서 경쟁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성장 잠재력이 크다”면서 “이번 분할을 계기로 외부사업 확대는 물론, 다양한 사업기회를 발굴해 주력사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장밋빛 기대감만 내놓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계열분리의 목적을 보면 기업가치나 성장 잠재력을 운운하는 게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장원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분석을 들어보자. “기업을 분할하는 목적은 크게 두가지다.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경영권 승계효과까지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영권 승계절차가 마무리된 LG그룹은 분할해야 할 ‘사업적인 이유’가 없었다. (LG에서) 기업가치를 얘기하는데, 그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기업을 분할하지 않더라도 4개 기업의 성장방향은 충분히 제시할 수 있다. 겉으론 기업가치 제고를 내세우지만 목적은 결국 ‘전통’처럼 내려왔던 계열분리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쉽게 말해, LG그룹 오너 일가를 예우하기 위한 분가分家라는 얘기다. 일부에서 “LG그룹의 경영 전략에 차질을 최소화한 계열분리” “LG그룹에 기여도가 적은 기업들의 분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계열분리 대상 기업의 사업 연관성이 현저히 떨어져서다. 

하나씩 살펴보자. LG상사의 핵심사업은 자원개발, 인프라개발, 물류다. LG하우시스는 건자재 사업이 중심이다.[※참고 : LG하우시스의 자동차 소재 사업 부문은 사업성이 떨어져 새 주인을 찾는 중이다.] 실리콘웍스는 디스플레이 패널 부품, LG MMA는 화학 분야가 핵심이다. 

얼핏 봐도 사업별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떼어줄 기업을 찾다 보니 이런 결정이 나온 것 같다”면서 “4개 계열사가 모조리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들의 각개전투가 호락호락할 것 같진 않다는 점이다.

일단 계열분리되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특수관계자와의 거래(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LG상사의 사업은 ▲자원개발(석탄)이나 거래 ▲팜농장 운영(팜오일 생산ㆍ판매) ▲석유화학 제품과 전자ㆍ전기부품 수출입 ▲인프라 시설 투자ㆍ개발ㆍ운영 ▲물류사업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 때문에 내부거래 비중이 높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2019년 기준 LG상사의 내부거래 규모는 2조378억원(매입 포함)이었다. 당시 매출(10조5309억원)의 5분의 1 수준인데, 주요 대상자는 LG전자, LG화학 등이다.[※참고 : LG상사의 경우 ‘내부거래’가 모두 매출로 이어진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출과 매입이 별도로 나눠져 있지 않아서다.] 

LG상사 매출의 상당 부분(2019년 기준 전체 매출의 39%)을 차지하는 물류사업을 떼어놓고 보면, 내부거래 비중이 더 높아진다. 물류사업은 자회사인 판토스가 담당하고 있는데, 판토스는 전체 매출의 75.2%(이중 LG전자 비중 61.2%)를 내부거래를 통해 올렸다.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동하는 부품(시스템 IC)을 생산ㆍ판매하는 실리콘웍스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매출의 83.8%(2019년 기준)가 내부거래로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LG디스플레이와의 거래가 92.3%다. LG디스플레이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얘기다. 메틸메타크릴레이트(MMAㆍ플라스틱 렌즈 등에 쓰이는 화학물질)를 제조ㆍ판매하는 LG MMA도 2019년 전체 매출의 34.6% (2307억원)를 내부거래로 올렸다. 그중 LG화학(종속기업 포함)과의 거래 비중은 85.3%였다. 

이처럼 내부거래 비중이 높으면 자생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참고 : 건축자재와 자동차 소재, 산업용 필름 등을 생산ㆍ판매하는 LG하우시스만이 내부거래 비중(9.2%)이 낮았다. 여기엔 매입액이 포함돼 있어 매출액만을 따지면 비중은 더 낮아진다. 이는 사업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LG그룹 사업분야에는 건설과 자동차 제조가 없어서다.] 

이번에 계열분리된 기업들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은 또 있다. 기업별로 안고 있는 과제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예컨대 LG상사의 자원개발 부문은 주로 석탄에 집중돼 있다. 최근 심해지는 환경규제를 고려하면 방향 전환이 필요한 상황이다. LG하우시스는 자동차 소재 부문과 산업용 필름 부문 매각을 고려하고 있다. 자동차 소재 부문(그중에서도 경량화 소재 부문)에서 적자를 내고 있어서다. 

시너지 효과 없는 분할 괜찮나

회사 측은 성장 잠재력을 고려해 비싼 값을 받겠다는 입장이지만, 수익을 못 내는 사업 부문을 비싸게 주고 살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물망에 오르는 매수자는 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다. 흥미로운 건 시장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실리콘웍스(코스닥) 3일 주가는 LG그룹의 계열분리 발표일인 11월 26일 대비 2.9% 올랐다. 반면 LG상사와 LG하우시스(코스피)의 주가는 같은 기간 각각 1.01%, 5.38% 떨어졌다. ‘구본준 계열분리’의 미래가 안갯속에 갇혀 있음을 잘 보여주는 시그널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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