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HQ 매각과 필룩스그룹

최근 몇년 새 건실한 기업들의 경영권을 사들였다. 부족한 현금흐름은 외부 차입으로 메웠다. 인수 뒤엔 수백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주가는 널뛰었고, 재무제표는 악화했다. 신흥 기업집단 필룩스그룹 얘기다. 필룩스그룹은 최근 유명 엔터사 iHQ의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됐다. 금융시장의 우려가 적지 않은데도 채권단은 ‘수의계약’을 결정했다. iHQ를 탐내던 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경쟁입찰에 부쳤다면 더 큰 몸값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선택은 iHQ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iHQ 매각을 둘러싼 논란을 취재했다. 

필룩스그룹은 외부 차입에 기대 그룹 몸집을 불리면서 성장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필룩스그룹은 외부 차입에 기대 그룹 몸집을 불리면서 성장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초 엔터테인먼트 기업 iHQ의 사내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업계 안팎에서 나도는 매각설 때문이었다. 신빙성 없는 ‘설’인 것도 아니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모회사 딜라이브(케이블TV 사업자)는 매각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비싼 매각가에 있었다. 그래서 딜라이브 경영진은 딜라이브와 딜라이브강남케이블TV가 보유한 iHQ 지분 43.98%를 팔기로 결정했다. 몸집을 줄여 딜라이브를 팔겠다는 전략이었다. iHQ가 ‘매각설’에 휘말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딜라이브의 매각예비입찰은 11월 진행됐다. 여기엔 한 업체가 단독 응찰했는데, KT였다. 이로써 iHQ도 새 주인을 맞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관건은 iHQ를 누가 인수하느냐였다. 알 수 없는 설이 몇차례 지나간 뒤인 11월 11일, iHQ는 다음과 같은 공시를 냈다. “최대주주가 삼본전자 컨소시엄과 매각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참고 : 삼본전자 컨소시엄엔 음향기기 업체 삼본전자와 건설소재 기업 이엑스티가 참여했다. 매각가는 경영권 프리미엄 없이 현 주가를 기준으로 1000억원 안팎에서 결정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iHQ는 경영 정상화가 절실했다. 모회사인 딜라이브가 매각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인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실적도 신통치 않았다. 2017년 매출 1267억원을 기록한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8년엔 1094억원, 2019년엔 992억원을 벌어들이는 데 그쳤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583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거둔 매출(726억원)과 비교하면 19.6%나 빠졌다. 

그렇다고 ‘바닥까지 떨어질 만한’ 기업은 아니었다. iHQ의 전신은 전지현, 정우성, 김혜수, god 등 톱스타를 배출한 회사로 유명한 싸이더스HQ다. 지금도 장혁, 김하늘, 조보아 등 인지도 높은 배우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드라마ㆍ예능 콘텐트를 자체제작할 역량도 갖추고 있고,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자격으로 ‘코미디TV’ ‘드라맥스’ ‘K STAR’ ‘큐브TV’ ‘라이프U’ 등의 TV 채널도 운영 중이다. 아티스트와 제작, 그리고 유통ㆍ플랫폼을 모두 확보한 ‘종합 콘텐트 회사’인 셈이다. 

더구나 이 시장의 미래 전망은 밝다. 코로나19 확산에도 K-컬처의 위상이 공고하고,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점차 풀리는 모양새다. 이를 감안해서인지 iHQ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자구책을 활발하게 모색했다. 최근엔 간판 프로그램 ‘맛있는 녀석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의미 있는 행보를 펼치고 있다. iHQ를 두고 ‘지금은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새로운 투자자만 유치하면 SMㆍYGㆍJYPㆍ빅히트 등을 위협할 중견 콘텐트 기업으로 발돋움할 역량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그래서 iHQ의 새 주인이 누구냐는 건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그렇다면 삼본전자는 적임자일까. 한 콘텐트 기업 관계자의 의견을 들어보자. “엔터테인먼트를 기반으로 한 콘텐트 사업은 시시각각 바뀌는 트렌드 때문에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조기업 중심으로 구성된 삼본전자 컨소시엄이 잘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이들의 자금력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뚜렷한 인수 비전이 보이질 않는다.”

새 주인의 상황이 어떻길래 이런 우려가 나오는 걸까. 먼저 ‘전문성’부터 따져보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삼본전자는 1988년에 설립된 이어폰ㆍ헤드폰을 생산하는 음향기기제조 전문업체다. 품질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음향기기 개발ㆍ제조(ODM) 시장을 이끌어왔다. 콘텐트 사업을 벌인 적은 없지만, 콘텐트가 IT산업의 흥망을 좌우할 경쟁무기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선 ‘아예 연관없는 투자’라고 볼 수도 없다.

범위를 넓게 펼쳐보면, 삼본전자도 e스포츠, 게임 퍼블리싱 등 시장에 진출했다. 삼본전자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콘텐트 사업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왔다”면서 “iHQ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조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진짜 문제는 삼본전자의 유동성이다. 삼본전자의 현금성자산(올해 3분기 기준)은 191억원에 불과하다. 실적이라도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지난해 4분기부터 올해 3분기까지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는 건설소재기업 이엑스티 역시 사정이 넉넉진 않다. 현금성자산은 88억원이다. 새 콘텐트에 투자하긴커녕 1000억원에 이르는 iHQ의 몸값을 감당해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금융투자업계는 삼본전자 컨소시엄이 신흥기업집단인 ‘필룩스그룹’의 일원이란 점을 눈여겨보고 있다. 이 그룹이 빚을 발판으로 덩치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먼저 필룩스그룹의 지배구조부터 살펴보자. 정점엔 배상윤 필룩스그룹 회장이 있다. 배 회장은 건하홀딩스(지주회사)의 최대주주다. 건하홀딩스가 클로이블루조합(사모펀드)을 지배하고 있고, 클루이블루조합이 삼본전자의 지분 31.15%를 보유하고 있다. 삼본전자 밑으론 수직적 지배구조를 갖췄다. ‘배상윤 회장→건하홀딩스→클로이블루조합→삼본전자→필룩스(조명회사)→장원테크(IT 부품사)→이엑스티(건설소재기업)’로 이어지는 집단이란 얘기다. 

iHQ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엔터사로 꼽힌다. 사진은 iHQ의 소속 배우 장혁.[사진=뉴시스]
iHQ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엔터사로 꼽힌다. 사진은 iHQ의 소속 배우 장혁.[사진=뉴시스]

언뜻 건실해 보이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2018년 8월 배상윤 회장이 삼본전자를 인수하면서 그룹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을 쐈는데, 그 이후 M&A 작업이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2019년 1월 삼본전자는 장원테크를 인수했고, 한달 뒤인 2월 장원테크를 통해 이엑스티를 삼켰다. 6월엔 삼본전자를 통해 필룩스 경영권을 사들였다. 다시 한 달 뒤인 7월 삼본전자가 장원테크 주식을 필룩스 유상증자에 현물로 출자하면서 지금과 같은 수직계열화된 그룹 지배구조를 완성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막대한 ‘전환사채(CB)’가 발행됐다는 점이다. 장원테크의 경우 필룩스그룹의 일원이 된 지난해 2월부터 9차례 총 830억원 규모의 CB를 발행했다. 이엑스티는 올 하반기에만 CB를 4차례 발행해 총 250억원을 조달했다. 지난해 6월부터 발행한 CB까지 더하면 총 750억원 규모다. CB는 만기까지 보유하면 애초 약정한 이율을 지급하는 사채(채권)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차익을 낼 수도 있다. 

어수선한 iHQ M&A

주가가 내려가도 주식 전환가를 최대 70%까지 조정(리픽싱)할 수 있어 설령 주가가 반토막이 나도 주식 매매 차익을 꾀할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선 전환가를 낮추면 그만큼 신주 발행 규모가 늘어나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손해로 이어지게 된다. [※참고 : 전환가액 1만원으로 50억원의 CB를 발행한 사례를 들어 쉽게 설명해보자. 전환가액이 조정되지 않았다면 50만주만 발행해도 되지만, 전환가액이 5000원으로 하락하면 100만주의 신주가 발행된다. 누군가는 신주 100만주를 싼값에 매입할 것이고, 그 결과 기존 주주의 지분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금융투자업계는 장원테크와 이엑스티의 오버행(대량의 대기물량)을 우려하고 있다. 두 회사 모두 현재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는데, 이미 발행한 CB가 주식으로 전환되면 대량의 신주 물량이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건 필룩스그룹 측이 자금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연쇄적 M&A를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필룩스그룹이 태동하던 삼본전자를 인수할 때만 해도 배상윤 회장은 현금을 한푼도 동원하지 않았다. 순전히 재무적투자자(FI)와 외부 차입을 활용해 인수대금 634억원을 완납했다. 주식을 담보로 맡겨 자금을 빌리고, CB 발행으로 인수자금을 메운 ‘무자본 M&A’였다. iHQ의 인수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필룩스그룹의 무서운 식탐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이 그룹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특급호텔 그랜드하얏트서울을 보유한 서울미라마 인수전에도 참전했다. 현재 사모펀드가 보유한 지분을 취득해 호텔 경영권을 소유한다는 계획인데, 과정이 순조롭진 않다. 필룩스가 호텔 인수를 목적으로 129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한 자금조달을 공시했지만, 금감원으로부터 정정 신고서 제출을 4차례나 요구받은 상황이다.

iHQ뿐만 아니라 호텔까지…

금융업계 관계자는 “통상 금감원에서 정정신고서를 요구할 때는 기업들이 제출한 증권신고서가 형식에 맞지 않거나 중요 기재사항을 누락했을 때, 혹은 거짓정보를 담은 것으로 판단될 때”라면서 “코로나19로 국내 호텔업계가 부진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대규모 투자라 금감원의 시선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필룩스그룹에 편입된 피인수 기업들의 재무상황이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18년 재무제표와 코로나19 여파가 닥치기 전인 지난해 재무제표를 비교하면 삼본전자ㆍ장원테크ㆍ이엑스티의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원래 적자였던 필룩스는 적자폭(2018년 -110억원→2019년 -117억원)이 더 커졌다. 장원테크(55.5%→150.2%)와 이엑스티(15.6%→ 145.5%)는 부채비율이 치솟기도 했다. 삼본전자는 2018년 12억원에 불과하던 단기차입금이 지난해 204억원으로 급증했다.

인수 직후 주가도 널뛰는 모습을 보였다. 삼본전자의 경우 인수 직후인 2018년 9월 6일 6580원의 종가를 기록했다. 지금 주가는 1910원(3일 기준)에 불과하다. 장원테크 역시 인수 직후(2019년 2월)엔 주가가 6000원대를 웃돌았다. 지금은 2385원에 거래 중이다. 이엑스티 역시 인수 직후인 2월 21일 7300원의 종가를 기록한 뒤 급등락을 거듭했다. 지금 주가는 2950원으로 잠잠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iHQ도 필룩스그룹 계열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수 직후 대규모 CB 발행→주가 급등락→ 재무제표 악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M&A 업계 관계자는 “빈번한 CB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회삿돈으로 기존 영업과 무관한 타법인 주식을 취득하는 건 전형적인 기업 사냥꾼의 행태”라면서 “과거 이들은 인수한 기업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짜낸 뒤, 결국 그 기업의 빈껍데기만 남기곤 했다”고 꼬집었다.

더 심각한 건 지금부터다. 필룩스그룹의 행보에 미심쩍은 시선이 쏟아지는데도 딜라이브 채권단(신한은행ㆍ하나은행 등)은 이번 iHQ 매각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했다. 

누굴 위한 CB 발행이었나

정작 모회사인 딜라이브는 공개입찰로 시장에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그렇다고 iHQ를 탐내는 곳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iHQ의 잠재력을 눈여겨보는 사업자가 적지 않았던 만큼 입찰에 부쳤으면 더 높은 몸값을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칫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1000억원 규모의 딜을 수의계약으로 진행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iHQ에 눈독을 들이는 기업이 있었던 만큼 공개입찰을 하거나 소수의 원매자들을 초청해 제한적 경쟁입찰을 꾀했으면 iHQ 몸값을 더 높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계약 관련해선 비밀유지 조항이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때 잘나가던 영광의 엔터사 iHQ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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