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전기차 플랜과 한국GM의 입지

12월 1일 열린 한국GM 노조 잠정합의안 찬반투표가 부결됐다.[사진=연합뉴스]
12월 1일 열린 한국GM 노조 잠정합의안 찬반투표가 부결됐다.[사진=연합뉴스]

# 12월 1일, 한국GM 노조가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거절했다. 24차례나 협상을 거친 끝에 어렵게 나온 잠정합의안이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걸까. 내용을 보자. “호봉승급분만큼 기본급을 인상한다. 일시금ㆍ성과급 300만원을 노조원 모두에게 지급한다. 코로나 위기극복 특별격려금도 100만원 지급한다…”. 

# 혹할 만한 내용이었다. 원하는 게 돈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노조가 잠정합의안을 거절한 이유를 두고 일부에선 “노조가 과한 욕심을 부린다”고 혀를 끌끌 찼다.

# 과연 그럴까. 6년째 적자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GM은 한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게 과연 돈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이번 한국GM 노사 갈등의 관건은 ‘미래 발전 방안’이었다. 하지만 한국GM이 제시한 플랜으로는 긍정적인 청사진을 그리기 어려웠을 공산이 크다. 한국GM의 3개 공장(부평1ㆍ2공장, 창원공장) 중 부평2공장은 설비투자도, 신차배정 계획도 없었다. 나머지 2개 공장엔 각각 1종의 신차가 배정됐거나 배정될 예정이지만, 그게 끝이었다. 

#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GM 경영진의 역할인 경영 전략을 왜 한국GM 노동자들이 왈가왈부하느냐.” 물론 그렇게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철수하든 말든 그건 GM의 자유다. 하지만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2018년 한국GM엔 공적자금 7억5000만 달러(약 8100억원)가 투입됐다. 군산공장을 폐쇄한 GM을 둘러싸고 ‘철수설’이 떠돌 때였다. 산은의 투자를 받은 GM은 ‘10년간 한국을 떠나지 않겠다’ ‘투자도 하겠다’고 화답했다. 

# 그로부터 2년여, 그 약속이 충실하게 이행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은 소수다. 한국GM의 투자 플랜과 신차배정 계획을 보면 그들은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들 같다. GM은 전기차 전환 계획을 야심차게 밝혔지만 그 계획에 한국은 없다. 부평공장 노동자들이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미래플랜이 뭐냐고 되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가. 지금의 GM 사태, GM 탓일까 노조 탓일까.

GM이 100%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전기차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GM이 100%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전기차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노조가 한국을 경쟁력 없는 국가로 만들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한국GM의 생산을 중단하기 어렵겠지만 장기적 미래는 의심스럽다.” 지난 11월 18일(현지시간) 스티브 키퍼 제너럴모터스(GM) 수석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대표가 영국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는 GM의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엄포로 주목을 끌었다. 2018년 산업은행의 투자를 받으며 약속했던 ‘10년의 유지기간’이 끝나면 한국에서 떠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장이었다.

키퍼 수석부사장이 언급한 것처럼 GM이 내세운 이유는 ‘노조’다. 노조가 지난 10월 말부터 파업을 멈추고 있지 않은 탓에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거다. 키퍼 수석부사장은 “(노조의 파업으로)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어 한국GM에 대한 투자와 신차 배정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파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말은 한국의 여론을 자극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질병인 ‘노조 리스크’가 끝내 화를 자초했다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키퍼 수석부사장의 말처럼 한국GM의 장기적 미래가 의심스러운 건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노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GM의 장기플랜에 한국GM이 포함돼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무슨 말일까. GM은 글로벌 완성차업체 중에서도 전기차 전환 의지가 높은 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압박에도 전기차 전환을 위한 구조조정을 감행해 왔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45억 달러(약 5조원)를 투자해 전기차 생산기지 3곳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전기차 위크 행사에선 ‘전기차 전환’을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GM은 새로 개발한 전기차 배터리 ‘얼티엄’과 이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공개했다. 2025년까지 전기ㆍ자율주행차 개발에 2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023년까지 22종의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선포했다. 

최근엔 속도를 더 내고 있다. 지난 11월 19일 발표한 전기차 가속화 전략의 일환으로, 전기ㆍ자율주행차 개발 투자금을 기존 20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로 높이고, 전기차 라인업은 30종(2025년까지)으로 확대했다. 아울러 “2025년까지 전기차 판매량을 100만대로 끌어올리고, 순수전기차(BEV) 판매 비중을 40%로 높인다”는 목표도 세웠다. ‘100% 전기차 전환’이란 GM의 청사진이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GM의 미래 플랜에 한국GM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GM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한국GM을 통해선 전기차를 만들 생각이 없어서다. 현재 한국GM에서 생산 중이거나 신차 배정이 확정된 건 내연기관차뿐이다. 

한국GM 관계자는 “한국은 부품 단가가 비싸고, 주요 시장과 거리가 있어 물류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전기차를 생산하기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한국GM에서 생산하는 내연기관차도 약 80%(2020년 11월 누적 기준)가 해외 시장으로 팔려나가기 때문이다.

생산단가가 비싸고,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건 전기차나 내연기관차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GM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려면 GM의 전기차 플랫폼을 들여와야 한다”면서 “여기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데, GM이 과연 하려고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일부에선 “전기차 시장의 성장이 빠르다고 해도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자릿수에 불과하다”면서 “GM이 ‘전기차 100%’를 이유로 한국을 버린다는 건 과한 우려”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GM이 전기차 개발ㆍ생산 비중을 높일수록 내연기관차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혹여 GM이 한국GM에 내연기관차 생산물량을 꾸준히 공급한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최근 미국ㆍ유럽ㆍ중국ㆍ일본 등 내연기관차 판매금지를 법제화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어서다. 이르면 2030년, 늦어도 2035년께엔 주요 시장에서 내연기관차의 판매가 금지될 공산이 크다. 앞서 말했듯 수출 비중이 큰 한국GM으로선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전기차를 만들지 못하는 한국GM은 10년 후엔 설 자리를 잃을 게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라면서 “GM은 전기차 전환을 선언했고, 내연기관차는 완전히 내리막을 걷고 있는데, 내연기관차만 붙들고 있는 한국GM은 죽으란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물론 어느 공장에서 어느 제품을 생산할지는 기업이 결정할 일이다.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GM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GM은 경우가 다르다. 지난 2018년 산은으로부터 7억5000만 달러(약 8100억원)를 지원받으면서 한국GM의 미래를 약속했다. 한국GM에 우리 정부의 돈이 들어간 만큼 한국GM의 장기 플랜을 함께 논의해야 맞다. ‘10년의 유지기간’만 지키고 떠날 게 아니라면 10년 이후에도 경쟁력을 이어나갈 수 있는 미래 플랜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은이 GM을 견제하고 장밋빛 미래를 함께 도모해야 하지만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산은과 2018년 약속을 망각한 GM,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GM은 모든 책임의 화살을 ‘노조’로 돌리고 있고, 탁월한 여론전으로 한국에 ‘노조 비판론’을 만들고 있다. 한국GM 노조가 막무가내로 ‘파업’을 이어간다면 문제겠지만 생존권을 위한 행보까지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 한국GM의 장기적 미래가 의심스러운 게 누구 때문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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