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5000만 달러에 숨은 진실

2018년 GM은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약속했다. 산업은행은 이 말을 믿고 7억5000만 달러(약 8100억원)를 한국GM에 투입했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한국GM 노사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왜일까. 회사는 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노조의 주장은 다르다. 한국GM의 미래발전방안에 2018년 GM의 약속이 담겨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산은의 2018년 공적자금과 GM 미래플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2018년 산은은 한국GM의 정상화를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사진은 이동걸 산은 회장(왼쪽),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사진=연합뉴스]
2018년 산은은 한국GM의 정상화를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사진은 이동걸 산은 회장(왼쪽),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사진=연합뉴스]

11월 25일 한국GM 노사가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건 24차례나 만난 후였다. 남은 건 노조 찬반투표였다. 50% 이상이 찬성표를 던지면 4개월여 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임단협 협상이 마무리되는 상황이었다. 노사 내부에서도 “어렵게 마련한 합의안인 만큼 좋은 결과 있을 것”이란 기대가 흘렀다. 

하지만 지난 1일 진행된 찬반투표는 부결로 끝났다. 조합원 7775명 중 7364명이 투표한 결과, 찬성표는 3322표(45.1%)에 그쳤다. 반대표는 절반을 넘은 3965표(53.8%), 무효표는 77표였다.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인상 ▲일시금ㆍ성과급 300만원 ▲특별격려금 100만원 지급 ▲조립라인(TC) 수당 인상 등의 내용이 담겼지만 노조는 거부했다. 세간에 나돌던 뜬소문처럼 노조가 돈만 밝혔다면 잠정합의안은 통과됐을 텐데, 이유가 뭘까. 

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이번 협상의 관건 중 하나는 GM의 미래 발전 방안이었다. 한국GM이 노조 측에 제시한 플랜이 만족스럽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1월 6일 보류하기로 했던 부평1공장의 1억9000만 달러(약 2079억원) 규모 투자 계획은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지만 그 외엔 별다른 변경점이 없었다.

특히 부평2공장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이 잠정합의안을 받아들이는 데 걸림돌이 됐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한국GM에는 부평1ㆍ2공장과 창원공장이 있는데, 그중 부평2공장만 신차배정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부평2공장에선 트랙스와 말리부를 생산 중이지만 2023년 이후엔 이마저도 단종될 가능성이 높다.[※참고 : 한국GM은 수요가 있을 경우 생산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찬반투표의 향방을 가른 건 부평공장 노동자들이었다. 투표는 부평ㆍ창원ㆍ사무ㆍ정비 지부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그중 부평공장 노동자의 찬성률이 가장 낮았다. [※참고 : 창원공장과 사무직 지부의 찬성률은 절반을 넘었지만 정비직 지부와 부평공장 노동자의 찬성률이 각각 40.7%, 38.4%에 그쳤다. 정비직 지부의 찬성률이 낮은 건 한국GM이 정비부품 물류센터를 잇따라 폐쇄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GM은 물류센터의 외주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기업이 노동자에게 항상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GM 노조가 GM의 경영 전략에 지나치게 개입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이번 한국GM 노사 갈등은 다르게 봐야 한다. 2018년 GM이 산업은행과 약속했던 ‘한국GM 정상화’ 방안의 연장선 위에 있기 때문이다. 

시계추를 한국GM이 군산공장을 폐쇄했던 2018년으로 돌려보자. 군산공장 폐쇄를 기점으로 ‘GM 철수설’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산은은 한국GM에 공적자금 7억5000만 달러(약 8100억원)를 투입했다. 한국을 떠날지 모르는 GM을 붙잡기 위해서였다. GM이 떠나면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고,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산은이 GM과의 합의를 앞두고 막판까지 ▲10년 이상 공장 유지 ▲비토권 확보라는 두가지 조건을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한국GM 공장이 일방적으로 폐쇄된 군산공장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내건 거였다. GM은 신차배정(2종)과 설비투자를 통해 한국GM의 생산시설을 10년 이상 유지하겠다고 화답했다. 그 결과, 한국GM에는 총 70억5000만 달러(약 7조7000억원)가 투입됐다. 

그렇다면 GM은 2018년 약속을 지켰을까. 겉만 보면, 약속을 어기진 않았다. GM이 약속한 신차 중 1종은 부평1공장에 투입했고, 나머지 1종은 2023년 창원공장에 배정할 예정이다. 나름 설비투자도 했다. 현재 창원공장에 도장공장을 짓고 있다. 잠정합의안대로라면 2021년엔 부평1공장에도 설비 개선을 위해 1억9000만 달러가 투입된다. 10년간 공장을 유지한다는 조건 역시 마찬가지다. 설사 일감이 없다고 해도 당장 매각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GM이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2018년 산은이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을 때 시장 안팎에서 기대한 건 ‘한국GM이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거’였다. 산은이 2018년에 투입한 7억5000만 달러는 명목상 시설투자비용이었고, GM도 36억 달러(약 3조9000억원)를 투자금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투자금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GM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부평2공장은 생산성이 크게 떨어져 1교대로 운영 중이다. 일감 확보를 위해선 신차를 배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설비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GM은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 

부평2공장만이 아니다. 부평1공장과 창원공장에도 잠재적인 불안요인이 있다. 2018년 GM이 약속했던 신차 2종만으로 생산량을 회복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국GM은 “연간 생산량이 30만대 수준으로 떨어지겠지만 신차 투입을 통해 50만대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한국GM은 연간 40만8125대(수입차 제외)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마스와 라보가 2021년 단종되고, 말리부와 트랙스도 2023년 이후 단종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신차 2종이 이를 모두 메울 수 있을진 의문이다. 신차 2종 이후 추가 생산물량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지만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한국GM 관계자는 “2023년 출시되는 CUV의 파생모델을 배정받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2018년 GM과 산은이 합의안을 체결한 이후 2년여, 상황도 바뀌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빨라지면서 내연기관차의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2년 전만 해도 전기차 붐이 덜했는데, 최근 전기차 전환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면서 “한국GM이 장기적으로 살아남으려면 GM이 전기차 생산물량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GM이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할 계획이 없다는 점이다. 

2018년 GM이 산은과 약속한 ‘정상화’는 장기적인 생존을 위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다. 공장 유지 기간만 채우는 게 아니다. 하지만 한국GM의 미래 발전 방안에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얼마나 담겨있는지 의문이다. GM이 2018년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다시 검토해봐야 하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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