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이륜차 시험 적체 논란

정부(환경부)는 전기이륜차 보급에 적극적이다. 보조금도 늘리는 추세다. 물론 전기이륜차 제조사가 보조금을 받으려면 일종의 시험을 거쳐 특정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문제는 시험을 치르려면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점이다. 장비와 인력이 모자란 데다 비현실적인 시험항목까지 수두룩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전기이륜차 시험 적체 논란을 취재했다. 

환경부는 전기이륜차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시험 적체로 인해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사진=뉴시스]
환경부는 전기이륜차 보급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시험 적체로 인해 보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사진=뉴시스]

“올해 안에 신형 전기이륜차를 출시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해를 넘길 것 같다.” 한 전기이륜차 제조업체 대표인 A씨의 푸념이다. 지난 4월에 성능시험을 의뢰했는데, 8개월째 성적서를 받지 못해서다. 그는 “시험을 한번 할 때마다 짧게는 2~3개월, 길게는 6개월 이상이 걸리니 경영전략을 짤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시험성적서 발급이 늦어지면 판매도 늦어지고, 유동성도 약해지니 중소제조업자로선 답답할 노릇이다.[※참고 : 전기이륜차 업체에 시험성적서가 필요한 이유는 환경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다. 환경부 기준 시험성적을 충족해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제조업자만 답답한 건 아니다. 정부도 답답하다. 현재 정부는 탄소배출량 저감에 관심이 많다. 내연기관 자동차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륜차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환경부는 전기이륜차 보조금도 늘리고 있다. 올해 책정된 보조금만 126억원(국비 기준)이다. 하지만 시험성적서 발급이 늦어지면 보조금 소진 계획도, 보급 확대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럼 시험 적체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주무기관인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보조금 지급 시기에 시험성적서를 받으려는 이들이 몰린다. 특히 환경공단은 환경부 보조 덕분에 시험 시 부과하는 인증수수료(약 520만원)가 다른 시험기관(약 1500만원)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환경공단의 시험 적체가 더 심한 편이다. 시험 준비(추가 부품 구비 등)를 제대로 하지 못해 중간에 시험이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보조금을 노리고 ‘일단 시험부터 받아보자’며 신청하는 이들도 종종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업계 관계자들도 이 설명에 대부분 공감했다. 하지만 모두 맞는 말도 아니다. 환경공단의 적체 현상이 심한 건 사실이지만, 다른 기관이라고 빠른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환경공단 외 시험평가기관 관계자 B씨는 “아무리 빨라도 최소 한달 반은 걸린다”면서 “연간 시험할 수 있는 대수는 30여대”라고 설명했다. 

월로 환산하면 2~3대꼴이라는 건데, 적당한 주기일까. 그렇지 않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전기차의 경우 시험항목이 훨씬 많지만 보통 1개월 안에 시험이 끝난다. 

그렇다면 전기이륜차의 성능시험이 더디게 진행되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장비가 너무 부족하다. 전기이륜차를 시험하려면 특별한 장비(설비 포함)가 필요한데, 전국에 4대뿐이다. 한국환경공단(인천)과 대구기계부품연구원, 한국자동차연구원(영광 분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대전)이다. 

이 가운데 에너지기술연구원 장비는 연구 목적이고, 나머지 3곳에서 주로 시험을 진행한다. 환경공단 관계자는 “장비 가격(약 10억원)이 비싸기 때문에 쉽게 늘리기가 어렵다”면서도 “시험 적체가 심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내년에 장비를 하나 더 보충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시험 장비만 늘리면 될까


문제는 장비 1대를 도입하더라도 적체 현상이 해소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해당 시험 장비는 주기적으로 정비를 받아야 하는데, 그 기간만 한달이 넘는다. 그렇다고 검사 인력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업계 관계자는 “모 기관의 경우 2명(주ㆍ부)의 전담연구원이 있지만 부연구원은 부수적인 업무도 많이 하고 있어서 주연구원이 자리를 비워 시험이 중단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쓸데없는 시험항목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속도 시험 내용을 보자. ‘전기자동차 보급대상 평가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전기이륜차는 배터리 잔량이 20~30%일 때에도 완전 충전했을 때와 같은 속도와 가속 성능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최악의 조건을 준 후 똑같은 성능이 나오는지를 보겠다는 거다.

적절한 시험항목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배터리 잔량이 20~30%밖에 남지 않았을 때 운전자가 가장 걱정하는 건 충전 가능한 장소까지 내 차가 갈 수 있느냐다. 따라서 주행가능거리가 더 중요하다. 하지만 속도ㆍ가속 성능을 유지하면 주행거리가 짧아진다.[※참고 : 주행가능거리 시험도 하지만, 가속도 시험 점수 반영 비중이 더 높다.] 

영하 5~15도(시험 시엔 영하 10도로 평준화) 사이에서 전기이륜차를 6시간 방치한 후에도 최고속도를 내는지 측정하는 항목도 있다. 하지만 자동차도 이런 날씨에는 서행 운전이 기본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최고속도를 유지한다는 건 의미가 없다. 

꽁꽁 언 상태에서 충전이 되는지 보는 시험도 있다. 하지만 리튬이온배터리 셀 제조사들은 0도 이하일 때는 가급적 충전을 권하지 않는다. 셀 수명이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환경부 시험에선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니 오히려 질 나쁜 전기이륜차를 만들라는 거냐는 불만도 나온다. 

보급만 신경 쓴 환경부의 패착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판되는 좋은 전기이륜차들은 배터리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목적지까지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급출발이나 급가속은 물론 속도까지 제어하는 시스템을 탑재한다”면서 “그래서 정말 좋은 전기이륜차들이 속도 시험에 걸려 보조금을 못 받는 경우도 있다(제 속도를 못 내면 시험은 중단)”고 설명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수입업자들 사이에서도 간혹 좋은 전기이륜차를 수입하려는 이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안전규정이 미흡한 한국’의 조건에 맞춰 제어 시스템을 손봤다가 괜히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이유로 제조사로부터 퇴짜를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결국 안전장치가 있는 전기이륜차보다 안전장치가 없는 전기이륜차가 보조금을 타 가고, 시험은 시험대로 적체되는 그런 상황이라는 얘기다. 환경부가 전기이륜차 시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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