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전통시장 인기에 숨은 비결

요즘 대형 유통채널이 ‘먹거리’를 강화하는 덴 이유가 있다. 먹거리를 찾아온 소비자를 다른 쪽으로 유인하기 위해서다. 마케팅으로 ‘구매 연계 효과’를 내겠다는 거다. 하지만 소비자를 ‘먹고 사고 다시 오도록’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소비자를 ‘먹고 사고 다시 오도록’ 만드는 시장이 있다. 광명전통시장이다. 옆에 마트와 쇼핑몰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도 그렇다. 비결이 뭘까. 

광명전통시장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시장이다. 사진은 지난 4월 진행된 KT 온라인 라이브 방송 촬영 현장. [사진=연합뉴스]
광명전통시장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는 시장이다. 사진은 지난 4월 진행된 KT 온라인 라이브 방송 촬영 현장. [사진=연합뉴스]

간식거리를 살 요량으로 찾은 시장이었다. 기자가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전통시장을 방문한 11월 29일은 한주 동안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400~500명대를 기록해 정부가 방역 강화를 발표한 날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추위에 서울 최저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날이기도 했다. 내심 썰렁한 시장을 마주할 것이라 걱정했지만 분위기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시장은 초입부터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통로의 폭이 넓지 않아 두줄로 다녀야 했는데, 잠시 좌판을 보려면 뒷사람이 기다리지 않게 눈치껏 옆으로 비켜야 했다. 

광명전통시장은 면적이 약 1만9223㎡(약6000평)에 달하는 대형 시장이다. 그래서인지 구조가 독특하다. ‘크로앙스’라는 중형 복합쇼핑몰이 시장에 붙어있다. 시장 내부에 크로앙스와 연결된 입구가 있을 정도다.

독특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크로앙스 건물 지하에는 ‘이마트 메트로 광명점’이 입점해 있다. 일반 대형마트와는 다른 소형(약 1157㎡·350평) 매장이지만 각종 생필품부터 야채·과일, 해산물 등 웬만한 품목은 갖추고 있다. 대략 종합해보면, 복합쇼핑몰과 대형마트가 버티고 있어도 시장을 찾은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그럼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광명전통시장을 찾는 이들이 많을까. 지난 1일 오후 5시를 살짝 넘어 찾은 시장엔 주말만큼의 인파는 아니지만 장 보러 온 주부와 정장 차림의 직장인을 제법 볼 수 있었다. 시장 곳곳의 칼국숫집·빈대떡집 등 식당은 저녁을 먹는 이들로 반쯤 차 있었다. 오후 7시 이후 하나둘씩 마감을 준비하는 점포들이 생겼지만 골목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오갔다. 

상인들은 코로나 사태의 여파를 느끼고 있을까. 마감을 앞두고 손님을 모으던 한 떡집 사장은 “요새도 방문객이 많다”며 “코로나가 심각할 땐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시장 안의 할인마트 직원도 “관광객보단 인근 주민이 많이 오는 것 같다”며 “지금이 김장철이라 북적이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마당에 대형마트도 아닌 전통시장이 붐비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실제로 전통시장 중엔 코로나의 타격을 피하지 못한 곳이 많다. 지난 2일 찾은 서울시 종로구의 광장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각종 미디어에 소개돼 관광객이 많이 오는 먹거리 골목에도 장사를 접은 듯한 좌판이 군데군데 보였다.

어묵·김밥 등을 파는 한 상인은 ‘손님이 좀 있느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지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없다”며 “코로나 탓인지 수능 때문인지 모를 일”이라고 토로했다. 

마트 옆에 두고 전통시장으로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수도권은 지난 11월 24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돌입했다. 일일 감염자 수가 500명대를 기록하자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일주일간 추가 방역조치를 시행했다. 1단계로 내려간 후 숨 좀 쉬나 싶었던 자영업자들의 근심이 깊어진 건 당연하다. 방역조치를 강화하면 간신히 살아나던 소비심리가 또 꺾일 수 있는 데다 확진자가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도 마찬가지다. 출처 모를 감염이 이어지자 한끼 외식조차 자제하는 이들이 많다.

광명전통시장 내에는 중형 복합쇼핑몰 ‘크로앙스’와 연결된 입구가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광명전통시장 내에는 중형 복합쇼핑몰 ‘크로앙스’와 연결된 입구가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그런데도 광명전통시장에 사람이 모이는 이유는 뭘까. 먼저 접근성이 좋다. 시장이 서울과 경기도의 경계에 있는 만큼 서울 지역 주민이 쉽게 찾아온다. 버스 정거장과 지하철역(7호선 광명사거리역)이 시장 입구와 맞닿아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구색도 잘 갖췄다. 400여개에 이르는 농산수산물·공산품·반찬 등 점포에선 장 보기를 끝낼 수 있다.

값도 싸다. 아보카도·브로콜리·깻잎 등은 1000원, 반찬류는 한팩에 2000원, 과일은 5000원이면 한 바구니 가득 살 수 있다. 퇴근 후 시장을 찾은 한 30대 여성은 “마트보다 저렴한 상품이 많아 종종 장 보러 온다”며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수산물 가게도 있고 시장에 활력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 안에 있는 ‘먹거리촌’은 명물이다. 닭강정·김밥·칼국수·햄버거 등으로 SNS에서 화제가 된 점포도 많다. 2000~3000원이면 국수 한그릇을 먹을 만큼 저렴하다. 먹거리 점포가 골목 곳곳에 있다 보니 배를 채우러 왔던 이들도 자연스레 장을 보곤 한다. 먹거리를 통해 ‘구매 연계 효과’가 나타나는 셈이다. 빵집 상인은 “우리 매장은 ‘클로렐라 버거’로 유명해서 다른 지역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며 “주말이면 장 보러 온 주민에다 먹거리를 찾아온 관광객이 몰려든다”고 말했다. 

시장 내부가 깔끔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골목이 좁긴 하나 점포마다 정리된 매대를 갖춘 데다 시장 바닥도 깨끗하다. 광명전통시장은 2004년부터 현대화·환경개선 사업을 진행해왔다. 2015년에는 고객센터를, 2017년에는 공영주차장을 만들어 편의 시설도 늘렸다. 잘 정비된 환경 덕인지 코로나 사태에도 시장 손님은 이어졌다.

할인마트 직원은 “상인들이 철저하게 마스크를 착용한다”며 “사람이 몰리긴 해도 트여있는 공간이라 손님들이 불안감도 덜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참고: 다만 방문객 기록은 잘되지 않는 건 아쉬운 점이다. 지정된 번호로 전화를 걸면 방문기록이 남는 ‘발신자 전화번호 관리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배너 외엔 별다른 안내가 없다.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측은 “광명시와 상인들로 구성한 의용소방대, 이사회 등이 매일 방역을 실시하고 있다”며 “전화번호 관리 시스템은 시에서 홍보한다”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비자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지만, 시장은 시장이다. 무서운 바이러스는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추위는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또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재개발로 인해 시장과 인접한 광명 1·2동의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서다. 한 상인은 이렇게 토로했다. “한번에 동네가 비어버려 큰일이다. 퇴근길에 가볍게 들러 장을 보는 사람도 줄었다. 전보다 점포들이 일찍 문을 닫는 이유다.” 

기자는 추위를 달랠 간식거리를 잔뜩 들고 시장을 떠났다. 며칠 후인 6일, 정부가 연말까지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적용한다는 소식에 시장의 상인들이 떠올랐다. 유달리 혹독한 올겨울, 전통시장은 괜찮을까.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