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놀이터 제작소 박재상 소장 

뇌가 아픈 엄마를 위해 커다란 창문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꿈을 접고 무작정 목수木手의 길을 걸었다. 험난했지만 고달프지만은 않았다. 그 길 한복판에서 ‘아픈 기억’ 속 아버지와 조우했다. 우연히 만난 하찮은 쓰레기통에선 작은 희망도 찾아냈다. 

‘자연놀이터 제작소’의 박재상(45) 소장은 목수다.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지으며, 숲놀이터를 제작한다. 때론 설계도 직접 한다. 평범한 목수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가구·집·숲놀이터를 모두 만들 줄 알고, 시공에 설계까지 하는 목수는 손에 꼽을 만큼 드물다. 

그런데도 그는 “원칙대로 땀 흘려 일할 뿐”이라면서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 “내 부모님이 머물고,  내 아이들이 뛰노는 곳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할 뿐이에요. 전 지극히 평범한 목수입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평범하지만 특별한 목수를 만났다. 21번째 주인공이다.  [※ 참고: 천막사진관은 코로나19 수칙을 지키면서 촬영했습니다.]

박재상 소장은 웃을 때면 주름이 깊게 파인다. 그가 걸어온 인생의 굴곡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재상 소장은 웃을 때면 주름이 깊게 파인다. 그가 걸어온 인생의 굴곡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사진=오상민 작가]

# 1장. 숨길 막힌 나무

스르륵스르륵~. 바람결에 숲이 춤을 췄다. 10월의 숲은 어느새 ‘가을’을 입고 있었다. 노란색, 빨간색, 갈색…. 초록 일색이던 숲은 질서를 잃었지만 요란하진 않았다. 사람을 압도하는 고요함, 그건 절제의 미美였다. ‘목수’ 재상의 한탄이 유독 크게 들렸던 건 숲이 뿜어내는 적막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이렇게 로프를 조여놓으면 숨을 어찌 쉬란 말이야.” 얼마 전 개관한 ○○ 숲놀이터를 찾은 재상은 나무를 칭칭 감아놓은 로프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무는 부피생장을 한다. 물과 양분이 나무껍질 안쪽에 난 길을 흐르면서 두께가 굵어진다. 그래서 나무에 아무 생각없이 로프를 둘러선 안 된다. 나무의 숨길이 막힐 수 있어서다. 숲놀이터를 살피던 재상이 탄식을 쏟아냈던 이유였다. 

“점마 뭔데 저서 저러고 있노.” 불만 섞인 목소리가 숲의 적막을 깨뜨린 건 그때였다. 산책로를 만들던 몇몇 목수들이 재상을 째려보고 있었다. 재상은 그들이 숲을 어지럽힌 장본인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숲바람이 스산하게 감겨들었다. 유쾌하지 않은 만남이 재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재상 소장이 네트를 설치하고 있다. 나무의 숨길은 나무껍질 바로 안쪽에 나 있다. 로프를 무턱대고 감아선 안 되는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재상 소장이 네트를 설치하고 있다. 나무의 숨길은 나무껍질 바로 안쪽에 나 있다. 로프를 무턱대고 감아선 안 되는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 2장. 바람 탓이 아니었다 

숲놀이터의 주인은 숲이다. 숲에 나무를 잠시 빌렸으니, 사람도 해야 할 게 있다. 숲을 보호하는 거다. 그래서 숲놀이터를 만들 땐 지켜야 할 원칙들이 있다. ‘나무를 무턱대고 베지 않는다’ ‘맨나무에 로프를 감지 않는다’ ‘로프를 감을 땐 목재를 덧대 나무의 숨길을 열어준다’ 등등이다. 

하지만 얼마 전 만들었다는 ○○ 숲놀이터엔 원칙도, 기준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나무를 기꺼이 내준 숲을 되레 해치고 있었다. 재상은 나무에 묶여있는 로프를 일일이 풀었다. 그제야 맨몸을 찾은 나무에 38㎜ 목재를 듬성듬성 두르고, 그 위에 로프를 다시 감았다. 나무의 숨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였다. 

저 위편에서 작업하던 목수 세명이 터벅터벅 내려온 건 그날 오후께였다. 재상은 ‘장선기(로프나 전선을 당기는 기계)’를 활용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쳐놓은 로프를 당기고 있었다.  

“머하노.” 입이 댓발 나온 목수 한명이 불만을 던졌다. “거 여서 만든 거보다 나아 뵈지도 않고만, 어지간히 유세 떠네. 저것도 기계가. 매가리도 없어 비는구만.” 재상은 답을 하지 않았다. 1.5톤의 힘을 가진 장선기를 모르는 사람과는 말을 섞을 필요가 없었다. 재상에게 중요한 건 기싸움이 아니라 ‘숲의 기’를 살리는 거였다. 

한나절이 흘렀다. 재상의 귀엔 목수들의 비아냥이 맴돌고 있었다. 잘못했으면서도 잘못한 줄 모르는 사람들의 말, 그건 용납할 수 없는 역설이었다. 날을 세운 가을바람이 재상의 땀을 식혔다. 몸이 서늘해졌다. 마음도 싸늘해졌다. 바람 탓만은 아니었다. 

로프를 당기는 박재상 소장의 얼굴에 힘이 들어간다. 숲놀이터에 로프를 설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오상민 작가]
로프를 당기는 박재상 소장의 얼굴에 힘이 들어간다. 숲놀이터에 로프를 설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진=오상민 작가]

 

숲놀이터의 주인은 숲이다. 그래서 박 소장은 그물 하나를 걸 때도 나무의 생장을 신경 쓴다. [사진=오상민 작가]
숲놀이터의 주인은 숲이다. 그래서 박 소장은 그물 하나를 걸 때도 나무의 생장을 신경 쓴다. [사진=오상민 작가]

# 3장. 돈보다 중요한 가치 

로프를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재상은 타협하지 않았다. 나무와 놀이터에 작은 문제라도 있어선 안 됐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숲에서 꼬박 사흘을 보내고 나서야 놀이터는 제모습을 찾았다. 

“자! 이제 올라가 볼까?” 재상이 숲놀이터 중 하나인 ‘외줄타기 코스’에 섰다. 마지막 검증, 설렘과 걱정이 교차했다. 문제가 생기면 로프를 풀고 다시 묶어야 한다. 

오른발을 내밀어 로프를 살짝 눌렀다. 너무 팽팽해도 너무 느슨해도 안 된다. 출~렁. 다행이다. 탄력이 살아있다. 이번엔 양손으로 손잡이 로프를 잡고 왼발을 올려놨다. 몸이 허공에 떴다. 위는 하늘이요, 아래는 땅이다. 다시 출~렁. 아래로 내려갔던 로프가 살짝 튕겨 올랐다. 너무 빠르면 위험하고 느리면 시시한데, 딱 좋다. 

“휴~ 이제 됐다.” 사흘 내내 굳어있던 재상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스쳤다. 작업을 지켜보던 ○○ 숲놀이터 관계자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숲놀이터를 만드는 게 단순한 줄 알고 아무에게나 일을 맡겼던 게 후회스럽네요. 제값을 쳐 드리지도 못했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천만에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재상에겐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었다. 배운 대로 원칙대로 일하는 거였다. 그날 늦은 오후, 산등선을 넘어가던 가을해가 숲놀이터를 붉게 물들였다. “다음주부턴 아이들이 여기서 뛰놀겠구나.” 재상이 콧노래를 부르며 산비탈을 내려갔다. 숲이 ‘새빨간 그림자’를 만들며 배웅했다. 콧노래가 조용히 화답했다. 

숲놀이터를 만들 땐 나무만큼이나 아이들의 즐거움을 고려해야 한다. 숲놀이터 제작 시연에 참가한 박 소장의 아이들과 조카.[사진=오상민 작가]
숲놀이터를 만들 땐 나무만큼이나 아이들의 즐거움을 고려해야 한다. 숲놀이터 제작 시연에 참가한 박 소장의 아이들과 조카.[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이 로프 그네를 만든 후 직접 타보고 있다. 그는 놀이기구를 만들 때마다 꼼꼼하게 검수한다.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로프를 풀었다가 다시 설치한다.[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이 로프 그네를 만든 후 직접 타보고 있다. 그는 놀이기구를 만들 때마다 꼼꼼하게 검수한다.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로프를 풀었다가 다시 설치한다.[사진=오상민 작가]

# 4장. “그저 그뿐입니다”  

 사람들이 생애 가장 많은 돈을 쓰는 대상은 ‘집’이다. 사든 빌리든 평생 쥐기 힘든 돈을 쏟아붓는다. 그런데도 집을 사는 기준은 ‘평(㎡)’으로 수렴한다. 어떤 자재를 쓰는지는 뒷전이기 일쑤고, 누가 만드는지도 관심 밖일 때가 많다. 모순이다. 

숲놀이터도 다르지 않다. 숲이 있어야 놀이터가 있건만, 사람들은 숲을 죽이고 놀이터를 만든다. 로프를 꽉 묶어 나무의 숨통을 막아버리는 건 예삿일이다. 놀이터를 만든답시고 멀쩡한 나무를 잘라내는 일도 숱하다. 모순이다. 

‘자연놀이터 제작소’의 박재상 소장은 목수다. 가구를 만들고, 집을 지으며, 숲놀이터를 제작한다. 때론 설계도 직접 한다. 가구·집·숲놀이터를 모두 만들고, 시공에 설계까지 하는 ‘현장목수’인 셈이다. 지금까지 제작한 숲놀이터만 해도 15곳에 이른다. 박 소장은 목수를 ‘땀 흘려 보람을 찾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가구든 집이든 놀이터든 목수가 하는 일은 사람과 관련이 있어요. 무얼 만들든 땀을 쏟으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죠.” 

박 소장은 땀의 가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은 땀의 가치를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은 작업 영역이 무척 넓다. 집부터 숲놀이터까지 모두 만든다. 사람들은 그를 ‘현장목수’라 부른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은 작업 영역이 무척 넓다. 집부터 숲놀이터까지 모두 만든다. 사람들은 그를 ‘현장목수’라 부른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래서인지 그는 ‘세상 속 모순’을 멀리한다. 집을 지을 땐 평수보단 사람과 자재를 먼저 따진다. 숲놀이터를 지을 땐 나무와 아이들이 우선순위다. 그런 그에게 세상은 ‘유난 떨지 말라’고 빈정거린다. “집을 뭐로 만들든 사람들이 관심을 두겠는가” “맨나무에 로프를 감든 말든 누가 알겠는가” 등등이다. 

박 소장의 생각은 다르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됐더라도 원칙이 흔들려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건 목수인 그가 굵은 땀방울을 흘려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원칙, 사실 별거 아니에요. 내 부모님을 위해 집을 짓는다면 평수를 먼저 따지지 않을 거예요. 내 아이가 뛰놀 놀이터를 만든다면 나무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겠죠. 그저 그뿐입니다.” 

그가 눈을 감았다. 희뿌연 먼지를 뚫고 매서운 소리가 들려왔다. “야! 어딨어, 야!” 2013년 겨울, 바닥에 널브러진 자재를 찾고 있는 재상이 보였다. 그는 가구공장에 있었다. 

원칙을 지키는 건 당연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못 하나를 박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박재상 소장. 그는 “배운 대로 할 뿐”이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원칙을 지키는 건 당연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못 하나를 박을 때도 최선을 다하는 박재상 소장. 그는 “배운 대로 할 뿐”이라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5장. 저거와 저것   

“야! 저거 가져와.” 생각할 겨를 따윈 없었다. 선배 목수의 고갯짓만으로 ‘저거’가 어떤 자재(목재)인지 골라내야 했다. 저거를 잘못 가져가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야, 저거도 제대로 못 찾아?” 

2013년 가구공장에 들어간 ‘초보 목수’ 재상은 이름 대신 ‘야’로 불렸다. 선배 목수들이 찾는 저거는 자재였고, 저것도 자재였다. 모르면 모른다고 알면 아는 척한다고 욕을 먹었다. 

37세, 늦은 나이에 시작한 목수의 길은 가시밭의 연속이었다. 무례는 상습적이었고, 일은 거칠기 짝이 없었다. 모멸감에 마음이 멍들었다. 자괴감에 상처가 쌓였다. 질긴 아픔을 참지 못해 아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재상이 나약했던 건 아니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힘들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돼 사표를 던진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홧김에 공장 뒷문을 발로 차버렸고, 누군가는 산재신청서만 달랑 남겨놓고 잠적했다. 

공장을 떠나는 이들은 재상에게 똑같은 말을 남겼다. “야가 뭐고 저거가 뭐야. 이해할 수 없어.”  하지만 재상은 공장을 떠날 수 없었다. 느지막이 목수를 시작해서가 아니었다. 남들에겐 털어놓기 힘든 사연이 있었다. 

해뜨기 전 시작한 일은 해가 지고도 끝나지 않았다. 박 소장은 시간에 맞춰 대충 일을 끝내지 않는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핀다. 박 소장의 실루엣이 창에 비친다. [사진=오상민 작가]
해뜨기 전 시작한 일은 해가 지고도 끝나지 않았다. 박 소장은 시간에 맞춰 대충 일을 끝내지 않는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핀다. 박 소장의 실루엣이 창에 비친다. [사진=오상민 작가]

# 6장. 좋은 목수가 되는 길 

“야! 그냥 이거 쓰면 돼!” 선배 목수 한명이 자재를 툭 던졌다. 건성으로 쓱 본 것 같은데, 자재는 곧고 결은 예뻤다. “뭘 어떻게 했길래….” 점심시간이면 곧은 자재를 찾는 연습을 하던 재상은 흠칫 놀랄 때가 많았다. 선배 목수의 눈과 손만 거치면 ‘쓸 자재’와 ‘버릴 자재’가 순식간에 가려졌다.  

목수라는 직업이 그렇다. 눈은 빠르고 손은 감각적이어야 한다. 베테랑 목수가 ‘곧은 자재’를 구별하는 모습을 보면, 눈과 손이 동시에 움직인다. 대패질할 때도 마찬가지다. 엇결이 나오면 대팻날을 순간적으로 뒤집어야 하는데, 손감각이 없으면 쉽지 않다. 

선배 목수들처럼 되는 길은 하나였다. 지루함을 이겨내는 거였다. 재상은 1년 내내 ‘반복’이란 지루함과 싸웠다. 1분 1초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틈만 나면 자재를 감별했고, 대패를 들었다. 

재상에겐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 좋은 목수가 돼야 했다. 억센 삶을 살다가 뇌를 잃은 엄마를 위해 창문이 큰 방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픈 기억만 남긴 채 홀로 떠나신 아버지에겐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야! 어딨어, 저거 가져오라니까.” 재상이 헐레벌떡 자재를 찾았다.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박 소장이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집의 ‘평수’로 작업의 값을 매기지 않는다. 자재와 사람이 먼저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이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집의 ‘평수’로 작업의 값을 매기지 않는다. 자재와 사람이 먼저다. [사진=오상민 작가]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유학도 다녀왔다. 누군가는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왜 목수 일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박 소장은 세상이 ‘땀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보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토목공학을 전공한 그는 유학도 다녀왔다. 누군가는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왜 목수 일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박 소장은 세상이 ‘땀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보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7장. 아들은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페인트공이었다. 솜씨만은 동네에서 최고로 꼽혔다. 성품도 고왔고, 성실했다. 담배는커녕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돈, 그놈의 돈이 문제를 일으킬 때까지 재상의 집에선 행복이 넘실댔다. 

아버지는 더 많은 돈을 벌겠다면서 월남전에 자원했고, 딴사람이 돼서 돌아왔다. 온종일 담배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을 부어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폭력성까지 깨웠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엄마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어린 재상과 세살 터울 누나는 ‘공포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귀를 막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집을 나갔다. 재상과 누나도 할머니댁으로 쫓기듯 내려갔다. 가정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진흙 구덩이 같은 삶으로 빠져들었다. 재상이 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3년 후인 일곱살 때였다. 삶의 끈을 사실상 놔버린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해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시면서였다. 

아버지는 솜씨 좋은 페인트공이었다. 성실한 데다 색 감각도 좋아 일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버지는 솜씨 좋은 페인트공이었다. 성실한 데다 색 감각도 좋아 일이 끊이지 않았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버지가 살고 있던 ‘○○ 쪽방촌’은 어린 재상에게도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남루한 방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술병들, 낮이면 들려오는 신음, 밤이 되면 시작되는 난폭한 몸짓과 고함…. 

재상과 누나의 하루는 끔찍했고, 할머니는 애처로운 손주들을 위해 자존심을 굽혀야 했다. 동네 청과물 도매시장에서 주워온 배춧잎을 팔아 생계비를 마련하는 건 할머니에게도 힘겨운 일이었다. 

그럴수록 어린 재상의 마음에선 증오가 커졌다.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겠어.”  그래, 1983년 겨울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그날 새벽 아버지는 술에 취해 꽁꽁 얼어붙은 길을 건너고 있었다. 아버지에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었다. 술에 힘을 빌려 세상을 향해 분노를 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였다. 끼~익. 자동차 바퀴가 도로를 날카롭게 긁었고, 아버지가 사라졌다. 뺑소니, 그걸로 끝이었다. 할머니는 넋을 잃었다. 소식을 듣고 지방에서 올라온 엄마는 누나를 부둥켜안고 통곡했다. 하지만 재상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사라진 걸 다행으로 여겼다. 잔인한 운명이 어린 그를 휘감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아버지란 존재가 아프게 박혀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의 가슴속에는 아버지란 존재가 아프게 박혀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8장. 아버지의 파편과 피멍 

다시 만난 엄마는 달라져 있었다.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억셈’을 선택한 듯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종로에 포장마차를 열었다. 새벽녘까지 술손님을 받아야 했지만 엄마는 험난한 길을 피하지 않았다. 재상이가 고등학생이 됐을 땐 일수에도 손을 댔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독한 일’. 그래, 엄마는 변해 있었다. 

달라진 건 엄마만이 아니었다. 철이 들면서 재상의 가슴엔 피멍이 맺혔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다행으로 여겼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기억 저편에 파편처럼 남아 있는 아버지의 웃음이 떠오를 때면 ‘죄스러움’이 치밀어 올랐다. 

방황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지만 그 길을 애써 외면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 계열사에 프로그래머로 입사했을 때에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재상에겐 날카로운 자책을 떼칠 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야 했다. 공원 잔디를 깎고, 집을 수리하는 알바를 하면서 말을 배웠다. 1년 후 신학대에 들어갔을 땐 ‘청소 알바’를 했다. 아버지란 슬픈 파편과 무거운 자책을 떨치려면 삶을 몰아세워야 했다. 

그러던 2005년 겨울, 복도 청소를 하고 있던 재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누나였다. “엄마가 쓰러지셨어.” 재상은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의 앞에 펼쳐진 비극의 장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있었다. 

숲놀이터 작업을 마친 그가 산에서 내려가고 있다. 장선기 등 많은 장비가 그의 등에 실려 있다. 목수란 직업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진=오상민 작가]
숲놀이터 작업을 마친 그가 산에서 내려가고 있다. 장선기 등 많은 장비가 그의 등에 실려 있다. 목수란 직업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진=오상민 작가]
삶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박 소장도 청년 시절 삶의 ‘어둠’을 이겨내야 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삶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박 소장도 청년 시절 삶의 ‘어둠’을 이겨내야 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 9장. 목수, 아버지의 길 

머리를 세번 열었고, 수술만 네번 했다. 엄마의 뇌는 죽어갔다. 예후도 좋지 않았다. 40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온 엄마는 ‘식물인간’이었다. 아픈 삶을 버텨온 엄마에겐 가혹한 결과였고, 대가는 재상이 치러야 했다. 그날로 유학을 포기했다. 1년 내내 엄마 옆을 지켰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화장품 수출업무, 사무보조 등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2년 후 엄마는 정신을 차렸다. 기적이었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아픈 뇌가 제 기능을 못 하니, 장기가 말썽을 피웠다. 뇌의 통제를 벗어난 기관지에선 끊임없이 가래가 끓어올랐다. 

간단치 않은 문제였다. 가래를 제때 뽑아내지 못하면 합병증에 걸릴 위험이 컸다. 엄마에게 좋은 공기를 선물해야 했다. 큰 창문이 달린 집을 찾았지만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박 소장은 토목공학을 전공한 목수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천생 목수’라고 말한다.[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은 토목공학을 전공한 목수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천생 목수’라고 말한다.[사진=오상민 작가]

어쩔 수 없이 재상은 목공방에서 ‘목수 일’을 배웠다. 언젠가 공기 좋은 곳으로 이사를 하면, 큰 창문을 내드리고 싶었다. 맑은 공기를 마신 엄마가 예전처럼 환하게 눈을 뜨길 바랐다. 그렇다고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큰 창문’을 만드는 게 부질없는 꿈일 수 있다는 걸 재상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목공방에서 톱질할 때마다 대패를 밀 때마다 ‘솜씨가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 실습으로 만든 의자에 색을 입혔을 땐 ‘페인트공 뺨친다’는 말을 들었다. 

“집안에 목수 있어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손사래를 쳤지만 재상은 답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였다. ‘아픈 시간’ 속에서 떨어져 있던 아버지와 아들은 그렇게 스미듯 섞이고 있었다. 이제 자책을 떨칠 시간이었다. 재상은 목수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의 길이었다. 

박 소장의 분신 같은 하네스(사진 맨 위). 그가 고등학생 때 처음 샀다는 드릴과 직소, 공구함엔 세월이 묻어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의 분신 같은 하네스(사진 맨 위). 그가 고등학생 때 처음 샀다는 드릴과 직소, 공구함엔 세월이 묻어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10장. 쓰레기통과 꿈의 도면 

곡절曲折 끝에 들어간 가구공장이었다. 재상에겐 푸념을 늘어놓을 시간이 없었다. 좋은 목수가 되려면 참아야 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눈이 빨라졌고, 손맵시가 좋아졌다. 1년 6개월이 흘렀을 무렵, 선배 목수 한명이 재상에게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야! 오늘 쓰레기통 만들어.” 

가구를 만들 땐 ‘똥가리(토막)’란 쓸모없는 자재가 나온다. 길이가 맞지 않거나 비틀어진 것들인데,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불리는 커다란 나무박스(가로 2m 44㎝×세로 1m 22㎝)에 버려진다. 

쓰레기통을 만드는 건 밑·좌우·앞뒤를 막는 단순 작업이지만 대충 해선 안 된다. 지게차가 쓰레기통을 통째로 옮기기 때문에 밑이 빠지거나 좌우가 터지면 대형사고가 날 수 있다. 그렇다고 공을 들일 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30분이면 뚝딱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일이 재상에게 맡겨졌던 거다. 

박 소장이 뚝딱뚝딱 만든 ‘촬영용’ 쓰레기통. 현장에서 똥가리를 담는 쓰레기통은 이보다 훨씬 크다. 똥가리는 토막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사진=오상민 작가]
박 소장이 뚝딱뚝딱 만든 ‘촬영용’ 쓰레기통. 현장에서 똥가리를 담는 쓰레기통은 이보다 훨씬 크다. 똥가리는 토막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사진=오상민 작가]

재상은 초시계를 켰다. 00:01, 00:02…. 째깍째깍 소리에 맞춰 쓰레기통을 만들어갔다. 눈은 빨랐고, 손은 감각적이었다. 순식간에 곧은 자재를 찾아냈다. 엇결은 대팻날을 뒤집으면서 빠르게 긁어냈다. 

26:42. 재상은 쓰레기통을 완성했다. 가구공장에 들어간 지 1년 반 만에 혼자 만든 작품이었다. 볼품없는 쓰레기통이었지만 그에겐 하찮지 않았다. 모멸감, 자괴감, 지루함을 떨쳐내고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재상은 쓰레기통 속에 조용히 앉았다.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옛 기억을 반기는 듯 소박한 나무 내음이 풍겨 올랐다. 안락함이 밀려들었다. ‘지붕 없는 집’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재상은 혼잣말을 되뇌었다. “쓰레기통 저쪽에 창문을 내면 엄마에게 맑은 공기를 선물할 수 있겠다. 지붕만 만들 줄 알면 집도 지을 수 있겠는데….” 그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저긴 엄마방, 저긴 아이들방, 저긴 놀이방…, 그의 머릿속에선 꿈의 도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 ×× 어디 있어? 야! 야!” 선배 목수들의 고함이 커지고 있었다. 재상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쓰레기통에서 꿈을 짓고 있었다. 

방음실을 공사하던 중 창문 낼 공간을 살피는 박 소장. 창문은 그가 목수의 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사진=오상민 작가]
방음실을 공사하던 중 창문 낼 공간을 살피는 박 소장. 창문은 그가 목수의 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다. [사진=오상민 작가]
기둥을 박기 위해 기초공사 중인 박 소장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자연놀이터 제작소’를 창업했다. 숲놀이터, 트리하우스 등을 전문 제작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기둥을 박기 위해 기초공사 중인 박 소장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자연놀이터 제작소’를 창업했다. 숲놀이터, 트리하우스 등을 전문 제작한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는 엄마에게 큰 창문을 선물하기 위해 목수의 길을 걸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는 엄마에게 큰 창문을 선물하기 위해 목수의 길을 걸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 11장. 땀의 숭고한 가치 

뒤늦게 시작했지만 타고난 게 있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솜씨는 일품이었다. 재상은 꿈꾸던 목수가 됐고, 2015년 독립했다. 아버지와 엄마를 위해 목수의 길을 선택한 만큼 꼼수를 쓰지 않았다. 아버지의 작업실을 만들 듯, 엄마의 부엌을 꾸미듯, 내 아이들의 놀이터를 제작하듯 배운 대로 원칙대로 일했다. 

어떤 ‘배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독립하기 전엔 설계를 배웠다. 시공은 물론 설계까지 할 줄 아는 목수가 되기 위해서였다. 2018년 ‘숲놀이터를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땐 기초부터 다시 밟았다. 나무에 목재를 덧대야 하는 이유, 부피생장을 하는 나무에 좋은 놀이터를 만드는 법 등을 때론 현장에서 때론 책에서 습득했다. 

혹자는 ‘그래봤자 당신은 공사판에서 땀을 흘리는 일개 목수이고, 당신이 만드는 건 그저 그런 숲놀이터일 뿐’이라고 폄훼한다. 낡고 오만한 편견이다. 땀의 가치는 너무나 숭고하다. ‘그래봤자’란 말 따위로 깎아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숲놀이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로프는 매듭법만 수십개에 이른다. 사진은 8자 매듭으로, 안전벨트와 로프를 연결할 때 사용한다(사진 위). 누구든지 숲놀이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무의 생장과 로프의 특성을 모르면 숲은 물론 놀이터도 망가지기 십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숲놀이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로프는 매듭법만 수십개에 이른다. 사진은 8자 매듭으로, 안전벨트와 로프를 연결할 때 사용한다(사진 위). 누구든지 숲놀이터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무의 생장과 로프의 특성을 모르면 숲은 물론 놀이터도 망가지기 십상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숲놀이터도 그렇다. 나무에 로프를 감는 방법만 해도 ‘둘러막기’ ‘천공법’ 등 숱하다. 로프의 매듭법 역시 ‘8자매듭’ ‘고리매듭’ ‘보울라인매듭’ ‘걸매듭’을 비롯, 수십개에 이른다.

고정형 숲놀이터와 임시형 숲놀이터는 로프의 두께마저 다르다. 5㎜ 안팎의 미세한 차이지만 지속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누가 어떻게 작업하느냐에 따라 숲놀이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뭐 그리 까다롭게 일하느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아이들이 숨 쉬는 곳을 만든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목수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니까요.” 

지난 2월 그는 ‘자연놀이터 제작소’를 세웠다. 숲놀이터·트리하우스 등을 전문제작하는 업체다. ‘자연과 공생하는 놀이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했다. 

지난 여름엔 한 대학의 청년 멘토링 과정에 멘토로 참여해 ‘자연놀이터 제작기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숲놀이터 일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원칙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배운 대로 원칙대로 일해도 잘해 낼 수 있다는 걸 이 청년들이 보여줬으면 합니다.” 

나무에 로프를 감을 땐 목재를 듬성듬성 덧대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숨길이 막히지 않는다. [사진=오상민 작가]
나무에 로프를 감을 땐 목재를 듬성듬성 덧대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숨길이 막히지 않는다. [사진=오상민 작가]
나무에 로프를 감을 땐 목재를 듬성듬성 덧대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숨길이 막히지 않는다. [사진=오상민 작가]
나무에 로프를 감을 땐 목재를 듬성듬성 덧대야 한다. 그래야 나무의 숨길이 막히지 않는다. [사진=오상민 작가]

#12장. 꿈을 짓는 목수 

2015년 재상은 경기도 가평의 산기슭에 ‘작은 집’을 마련했다. 60㎡(약 18평) 단층집. 엄마의 방엔 그렇게도 꿈꿨던 큰 창문을 냈다. 해가 뜨면 가장 먼저 햇빛이 스며들도록 제작했다. 마당 한편엔 작업실을 만들고 있다. 페인트공이었던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설계한 ‘꿈의 공간’이다. 

“집을 5년째 보완하고 있는데,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웃음).” 어쩌면 그는 이 집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집이 아닌 꿈을 짓는 그에게 완성이란 의미 없는 목표일지 모른다. 

저녁 노을이 그의 머리 위에서 너울댔다. 절반쯤 열린 창문에 엄마의 얼굴이 아로새겨졌다. 마당 저편 작업실엔 누군가 몰래 찾아온 듯 바람이 맴돌았다. ‘목수’ 재상이 활짝 웃었다. 쓰레기통에서 찾은 꿈이 피어올랐다.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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