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속 경제 이야기 | 월급 오지급 사건

회사 회계팀의 실수로 수개월간 당신의 월급 통장에 돈이 더 많이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월급 통장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는 당신은 ‘상여금’이 들어온 것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1년이 훌쩍 지난 어느날 회계팀으로부터 돈을 잘못 넣었으니 6개월 안에 토해내란 연락이 왔다. 갚아야 하는 건 알겠는데, 회계팀이 반납 기간을 정하는 건 괜찮은 걸까. 그들에겐 잘못이 없을까.

월급명세서를 소홀히 했다간 고충을 겪을 수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월급명세서를 소홀히 했다간 고충을 겪을 수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회사 회계팀의 실수로 월급 통장에 급여가 잘못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너무 바쁘게 살다 보면 약간 모자라거나 넘치게 들어와도 모르고 지나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중요한 건 급여 처리가 잘못돼서 나중에 이를 바로잡고자 할 때, 회사와 직원의 입장 차가 크다는 점이다. 

회사가 급여를 적게 줬다면 다시 채워주면 그만이다. 회사는 그만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급여를 많이 줬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직원은 목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편의를 돕기 위한 사례를 하나 보자. 실제 있었던 일을 독자 편의를 위해 약간 각색했다.

중견 자동차 부품제조사에 다니는 직장인 박종구(가명ㆍ46)씨. 그는 수년째 유럽의 해외지사에서 근무 중이다. 가족과 함께 나가 있는 데다, 회사에서 자녀 학비까지 일부 지원해 주고 있어서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업무가 만만치 않았다. 

박씨의 직급은 부장이다. 서열상으로는 해외지사장 바로 아래였지만 웬만한 잡무는 그가 도맡아야 했다. 짧은 법적 근무시간 탓에 발생한 잔업을 현지인 대신 박씨가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초엔 해외지사장마저 일신상의 이유로 그만뒀고, 박씨는 임시 해외지사장의 역할까지 떠안았다. 

하지만 본사는 인력을 충원해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 글로벌 환경규제가 심해지면서 자동차 부품사들도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회사가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의 힘든 상황을 잘 견뎌낸다면 공석이 된 해외지사장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언젠가 고생한 보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통장에 더 들어온 월급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부당이득이 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통장에 더 들어온 월급을 되돌려주지 않으면 부당이득이 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최근 본사 회계팀으로부터 박씨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소식이 날아왔다. “회계팀의 실수로 올해 초부터 거의 1년간 월급을 많이 넣었습니다. 잘못 들어간 돈이니 6개월 내에 모두 반납하시기 바랍니다.” 

박씨는 눈앞이 깜깜했다. 회계팀이 그동안 잘못 입금한 돈은 1400여만원. 한두푼이 아니었다. 더구나 박씨는 그 돈을 대부분 써버렸다. 박씨의 월급이 약 5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6개월간 급여의 절반을 반납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생활이 쪼들릴 수밖에 없다. 

박씨에게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매월 통장에 월 120만원가량이 더 들어온 사실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될까 싶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박씨는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월급 통장을 꼬박꼬박 확인하지는 않았다. 해외지사에 있는 데다 일이 바빠 통장을 들여다볼 겨를도 없었다. 

잘못 입금된 월급 반납해야

오해를 할 만한 상황도 있었다. 월급 통장으로 자녀 학비 지원금이 함께 들어왔다는 점이다. 올해 초 아내는 살림살이가 빠듯하니 자녀의 사교육비를 좀 줄여야겠다고 말한 바 있었다. 그런데 통장에 돈이 더 많이 들어오자 아내는 아내대로 지원금이 더 늘었나보다 생각해 사교육을 유지했고, 박씨는 박씨대로 사교육을 줄였나보다 생각했다. 야근이 잦았던 박씨가 아내와 진지하게 대화를 많이 하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박씨로선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이 상황을 법적으로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어떻게 될까. 우선 박씨가 더 받은 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돌려주지 않으면 ‘부당이득’을 취한 게 된다. 

법무법인 자우의 조준행 변호사는 “송금하는 과정에서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서 다른 사람 통장에 입금이 됐을 때 이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박씨 입장에선 좀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근로계약서상에 기재된 금액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았다면 회사의 반납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살펴봐야 할 건 두가지다. 하나는 박씨가 돈을 잘못 입금한 회계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느냐는 거다. 사실 회계팀은 한두달도 아니고 거의 1년간 돈을 잘못 보냈다. 박씨와 마찬가지로 회계팀도 몰랐던 거다. 이에 따라 회계팀에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회계팀이 박씨에게 금전적인 손실을 끼친 게 아니어서다. 현행법은 잘못 입금된 돈을 쓴 박씨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본다. 

다른 하나는 회계팀이 박씨에게 6개월이라는 기간 내에 잘못 지급된 돈을 다 갚으라고 일방적으로 지시할 수 있느냐다. 법적인 측면에서 보면, 박씨는 회사와의 협의를 통해 반납 기간을 조정할 수 있어 보인다. 

기간 조정 가능하지만…

조준행 변호사는 “박씨가 돈을 안 갚겠다는 게 아니라면 회사는 반납 기간을 조정해줄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빚을 받을 때에도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간을 조정해준다. 하물며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 직원이다. 회사가 6개월 내에 돈을 받아내야 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면 당연히 기간 조정이 필요하다. 법적 다툼을 한다고 가정한대도 비슷한 판결이 나올 듯하다.”

문제는 원칙과 현실이 다르다는 점이다. 협의 과정에서 박씨와 회사 회계팀은 날을 세울 수밖에 없다. 해외지사에 나가 있어야 하는 박씨가 괜히 구설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작 기간을 조정하는 것일 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조차 박씨에겐 쉽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박씨는 회계팀의 요구대로 ‘6개월 내’에 잘못 입금된 1400여만원을 반납하기로 했다. ‘월급이 더 들어온지 몰랐던’ 박씨는 책임을 졌지만, 1년간 돈을 잘못 보낸 회계팀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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