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김지선씨와 박소민 학생

미소가 밝고 예쁜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끼 많고 꿈 많은 20대 박소민(22) 학생입니다.  노래ㆍ춤ㆍ악기, 못하는 게 없는 청년입니다. 한때 엔터테이너를 꿈꿨다가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은 ‘회사 취업’으로 진로를 변경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할 줄 아는 건 많은데 뛰어나게 잘하는 건 없습니다. 저보다 잘난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라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티(Tea)가 놓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소민 학생과 마주 앉은 이는 개그맨 김지선(49)씨입니다. 베테랑 엔터테이너인 지선씨는 오늘 소민 학생의 ‘쌤’을 자처했습니다. 그는 치열한 틈바구니에서도 수십 년간 방송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로 ‘끼’가 아닌 ‘뻔뻔함’을 꼽았습니다. 김지선씨의 멘토링을 들어보시죠. “개그도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도 제가 롱런할 수 있었던 건 저는 도전을 했기 때문이죠. 도전하세요. 끼는 누구나 다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뻔뻔해지면 그 끼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해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티토링(Tea-toring) 두번째 편, 개그맨 김지선씨와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청년의 만남입니다. 티토링은 더스쿠프(The SCOOP)와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가 공동으로 기획한 ‘멘토링 프로젝트’입니다. 꿈을 꾸는 청년 멘티와 꿈을 이룬 멘토를 매칭해 티 한잔을 마시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입니다. 

티토링을 통해 만난 박소민 학생(왼쪽)과 개그맨 김지선씨.[사진=천막사진관]
티토링을 통해 만난 박소민 학생(왼쪽)과 개그맨 김지선씨.[사진=천막사진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가 세계인을 홀리고 있다. 글로벌 대중가요 시장의 정점에 선 BTS와 블랙핑크는 2020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 후보에 올랐다. 영화 ‘기생충’은 각종 국제영화상을 석권했고, 한국 드라마 ‘킹덤’도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다. 한국인 특유의 흥과 끼가 세계를 매료시킨 셈이다. 

더구나 요새는 누구든지 창의성과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시대다. 유튜브ㆍ틱톡ㆍ인스타그램 등의 소셜 플랫폼 덕분이다. 억대 연봉을 자랑하는 1인 방송 크리에이터가 등장했고, 연예인을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는 이들이 숱하다. ‘유튜브 학과’를 신설하거나 ‘1인 미디어’를 강조한 별도전공을 만든 대학도 생겼다.

이뿐만이 아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은 ‘스타 등용문’으로 통한다. 과거의 설움을 딛고 빛나는 스타가 되는 참가자들은 시청자들과 희로애락을 공유했다. 방송사 공개채용이나 길거리 캐스팅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비교하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진입 루트가 확연히 늘었다. 박소민(22) 학생 역시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끼 많은 청년 중 하나다. 시장도 커졌고 파고들 문도 많아졌으니 좋을 법도 한데, 소민 학생의 고민은 의외로 깊었다. 

박소민 학생(이하 소민) :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악기도 곧잘 배웠습니다. 제법 끼가 있었죠. 문제는 딱 하나 꼬집어서 잘하는 게 없다는 거예요. 다재다능한 줄 알았는데, 어정쩡한 거였어요. 성공한 엔터테이너를 보면 그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끼와 재능을 갖고 있잖아요. 이 정도 끼로는 어림도 없겠죠?” 

소민 학생의 고민을 듣고 개그맨 김지선씨가 생각에 빠졌다. 그는 30년차 베테랑 엔터테이너다. 1990년 K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그는 지금도 다양한 방송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예계 대표 ‘다둥이 엄마’이자 ‘줌마테이너’로서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헌신적인 나눔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0월엔 남편 김현민씨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이 됐다. 11월엔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멘토링 전문 NGO 러빙핸즈에서 10년째 후원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오늘은 소민 학생의 고민을 덜어줄 멘토 ‘지선쌤’으로 분장했다.

개그맨 김지선(이하 지선쌤) : “소민 학생은 어떤 끼를 갖고 있어요?”

소민 : “노래를 잘하고요. 춤도 한번 보면 대충 따라 할 수 있어요. 악기도 몇개 다룰 줄 압니다. 가야금이나 피아노, 중국 전통 악기도 칠 수 있어요. 웹디자인이나 동영상 편집도 능숙하게 할 수 있어요.”

지선쌤 : “할 줄 아는 게 정말 많네요. 그런데도 소민 학생은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들 생각은 안 해본 거예요?”

소민 : “생각에만 그쳤습니다. 이중에서 유별나게 잘하는 건 한개도 없거든요. 주변 친구들만 봐도 저보다 훨씬 예쁘고 뛰어난 사람이 많다 보니 주눅부터 들더라고요.”

지선쌤 : “미모야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른 건데…. 혹시 전공은 뭐예요, 문화예술 쪽인가요.”

선망의 직업이긴 하지만…

소민 학생은 정식으로 문화예술 관련 공부를 한 적 없다.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꿈꾸긴 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접었다. 그렇게 선택한 학과는 ‘경제학’. 무난하게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엔터테이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커졌다. 학교에서도 전공 대신 미술이나 디자인 과목을 청강하는 일이 잦았다. 

소민 : “노래를 하거나 콘텐트 관련 공부를 할 땐 정말 즐거웠어요. 다만 ‘네가 무슨 연예인을 하냐’는 무시나 편견을 듣는 건 두려웠어요. 워낙 힘든 길로 알려져 있다 보니 부모님도 내심 반대하셨고요.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내년엔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연예인은 평탄치 않은 직업일 것이다’는 소민 학생의 우려는 사실 지나친 건 아니다. 억대 수입, 팬들의 환호…. ‘엔터테이너의 세계’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불편한 진실도 있다. 그중 하나는 엔터테이너 업계가 ‘레드오션’이란 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연습생으로 발탁돼 5~6년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 스타들의 이야기가 이상하지 않게 들릴 정도다. 업계가 추산하는 국내 아이돌 지망생만 해도 100만명에 이른다는 말이 있다. 이중 데뷔하는 신인 가수는 매년 1000여명에 불과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는 극소수다. 

시장의 양극화도 문제다. 가수들의 사례를 보자. 상위 1%의 1인당 평균 소득은 34억4698만원(2018년 기준)이었는데, 나머지 99%의 1인당 소득(3050만원)의 113배에 달했다. 1%가 벌어들인 소득은 전체 가수 소득의 절반 이상인 53%를 차지했다.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불균형이 더 극심해지는 추세다. 

지선쌤 : “막연한 동경만으론 섣부르게 다가설 수 없는 직업인 건 맞아요.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죠.”

김지선씨는 안타까워하면서 말을 이었다. “안정적인 일을 한다고 꼭 행복한 건 아니에요. 제 친구 얘기를 해볼까요. 유명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성우 이선씨가 제 친구예요. 성우의 길을 걸으면 탄탄대로였을 텐데, 그 친구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지인 몇몇을 모아 대학로에서 극단을 만들었죠. 밤을 새워서 무대 세팅을 해도 연극만 할 수 있다면 힘들지가 않대요.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냐’고 핀잔을 줬더니 ‘나 이 일이 너무 좋아’하고 되레 웃더라고요. 간절함 때문인지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소민 학생 안에도 그런 뜨거운 열정이 있나요?”

소민 : “초등학교 때 중국에 살았어요. 저는 한국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볼 수가 없었어요. 중국은 유튜브 접속이 막혀 있잖아요. 어린 나이인데도 악착같이 우회접속 방법을 알아내서 춤을 따라 추곤 했었죠. 지금이야 검색만 하면 바로 알아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지선샘 : “열정이 있었는데 왜 도전하지 않았죠?”

소민 : “저 말고도 잘하는 사람이 세상에 너무 많아서요. 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자신을 냉정하게 판단하게 되더라고요.”

반대 의견을 강하게 낼 것 같았던 김지선씨는 뜻밖에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소민 학생 말대로 세상에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소민 학생이 답했다. “정말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김지선씨는 이 말엔 동의하지 않았다. “특별한 사람만 엔터테이너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티토링 2편 ‘개그맨 김지선과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티토링 2편 ‘개그맨 김지선과의 차 한잔’의 스틸컷.[사진=더스쿠프 포토]

지선쌤 : “개그도 그래요. 저보다 웃긴 사람은 숱할 거예요. 그런데도 제가 30년째 엔터테이너로 살 수 있는 건 그들보다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도전했기 때문이에요. 도전하면서 기회와 경험을 쌓다 보니, 꿈이 이뤄졌던 거죠.” 

소민 : “정말 도전한다고 될까요. 요샌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은데요.”

지선쌤 : “자기 자신에게 뻔뻔해져야 해요. 배짱과 낯 두꺼움으로 무장한 자신감을 가지란 거죠. 항상 그러라는 게 아니에요. 노래 오디션을 본다고 가정해보죠. 그럴 때 ‘난 심사위원을 감동하게 할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춘 가수’라고 생각하고 무대에 서야 해요. 22살, 아직 어린 나이입니다. 도전하면 할 수 있어요.”

“도전하고 인내하라”

소민 : “도전만 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을까요?” 

지선쌤 : “도전이 모든 길의 끝은 아니에요. 도전한 다음에도 갈고닦아야 할 게 많아요.” 

김지선씨는 30년 전 갓 데뷔했던 시절의 얘기를 꺼냈다. 북한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해 순식간에 주목받는 개그맨으로 떠오른 그의 차기 프로그램은 ‘괜찮아유’란 콩트쇼였다. 부담감이 만만치 않았다. 애까지 딸린 시골 아낙네 역할을 맡았는데, 그의 실제 나이는 21살이었다. 김학래ㆍ최양락 등 대단한 선배들과 함께하는 무대란 점도 부담이었다. 결국 사고를 쳤다. 연습 첫날 선배들과 모여서 대본 리딩을 하는데, 곳곳에서 한숨소리가 들렸다.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이 북한 사투리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지선쌤 :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충청도 사투리를 써야 하는데, 북한 사투리만 나오더라고요.”

김지선씨가 난관을 돌파한 방법은 간단했다. 끊임없는 노력이었다. “함께 코너를 했던 이경애 선배에게 대본에 담긴 대사를 모두 읽어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걸 녹음기에 담았습니다. 눈뜨면서부터 잘 때까지 그걸 들었어요. 어찌나 많이 들었던지, 나중에는 카세트테이프의 벨트가 다 늘어져서 들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했더니 이전보다 나은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죠. 최양락 선배가 ‘얼래? 얘가 오늘 뭘 먹고 왔대’라면서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문화예술계엔 속설이 하나 있다. 재능과 끼가 모든 걸 결정한다는 거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유전자를 누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김지선씨는 이 속설을 부정했다. 성공의 열쇠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끼가 아니라 인내와 끈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 기회가 올 때까지 열정을 절대로 꺼뜨리면 안 돼요. ‘나는 잘할 수 있다’ ‘나에게 맞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할 수 있어요.”

두 사람의 티토링이 끝났다. 소민 학생은 “제가 도전해서 성공하면 지선쌤을 다시 볼 수 있겠죠”라면서 두번째 만남을 고대했다. 

김지선씨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이죠. 다만 명심할 게 있어요. 내 길이 아니다 싶을 땐 과감하게 포기해도 괜찮아요. 그것도 어쩌면 용기죠. 그 전까진 도전해 보세요. 해보기 전까진 아무도 모릅니다. 첫번째 오디션을 보게 되면 꼭 연락 주세요. 어때요. 가슴속에 타오르는 게 있나요.” “네. 타닥타닥 불씨가 지펴지는 것 같아요.” “좋아요. 꺼뜨리지 않기로 우리 약속해요.”  

김다린ㆍ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사진= 천막사진관

영상=영상제작소 Vide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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