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삭막한 겨울

국내 은행의 희망퇴직 시즌이 돌아왔다.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주요 은행이 희망퇴직 접수를 받고 있다. 은행은 비대면 거래의 확산, 코로나19 위기, 저금리 기조에 따른 수익성 악화 등을 인력조정의 이유로 들고 있다. 문제는 시중은행의 실적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희망퇴직 대상 연령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것도 걱정거리다. 올해는 만 40세인 1980년생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은행권에 부는 살벌한 바람을 취재했다. 

올해도 시중은행이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사진=뉴시스] 

올해도 찬바람이 부는 연말이 다가오자 어김없이 은행권에 감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은행권 희망퇴직의 시작을 알린 곳은 NH농협은행이다. 농협은행이 11월 신청받은 희망퇴직에는 총 503명의 직원이 신청했다. 지난해 356명보다 147명이나 늘어났다. SC제일은행도 희망퇴직에 나섰다.

10년 이상 근무한 만 55세(1965년 이전 출생) 이상 직원이 대상이다. 지방은행 역시 희망퇴직 대열에 합류했다. BNK금융그룹의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이 임금피크제(만 56세) 적용 직원과 일반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자를 받았다.


사실 은행업계의 연말 희망퇴직은 연례행사가 됐다. 2015년 이후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은행이 늘어서인지 희망퇴직을 받는 횟수도 증가했다. 변화하고 있는 금융업계의 영업 환경도 인력 감축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로 비대면 거래의 활성화다.

은행 창구를 통한 거래 비중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융서비스 전달 채널별 업무처리 비중’에 따르면 2018년 3월 사상 처음으로 10%(9.5%)를 밑돌기 시작한 은행 창구의 업무 비중은 올해 6월 7.4%로 떨어졌다.

은행 업무를 보는 고객 100명 중 7명만 은행을 찾고 있다는 의미다. 인터넷뱅킹을 통해 할 수 있는 은행 거래의 종류가 증가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 수치는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 은행의 입장에선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행 직원의 감소세는 통계로도 알 수 있다.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6월 국내 은행 13곳(인터넷뱅킹·국책은행 제외)의 일반직(무기 계약직 제외) 직원 수는 8만5591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6월 8만6308명보다 717명이 감소했다. 은행 직원 수가 정점을 찍었던 2015년 9만3940명과 비교하면 8349명이 은행을 떠났다. 이는 올해 6월 기준 한국씨티은행(3486명)과 SC제일은행(4223명)의 직원을 합한 7709명보다 많다.

주목할 점은 은행 실적이 좋아질수록 희망퇴직을 통한 인력 감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영업이익 6조2665억원, 연결당기순이익 5조1683억원을 기록했던 13개 국내 은행의 실적은 지난해 영업이익 16조7019억원, 연결당기순이익 11조6937억원으로 증가했다. 영업이익과 연결당기순이익이 각각 2.6배 2.2배 늘어난 셈이다. 은행 수익을 인력 줄이는 데 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NH농협은행은 이번 희망퇴직을 통해 최대 39개월 치의 임금을 특별퇴직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일반직원인 1971~1980년생에게도 20개월 치 임금을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한다. SC제일은행도 최대 38개월치의 임금을 희망퇴직 조건으로 걸었다. 여기에 각각 2000만원에 달하는 자녀 학자금과 재취업 지원금도 지급한다.

올 상반기 국내 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하나은행·한국씨티은행·KB국민은행·SC제일은행)의 평균 임금이 5270만원이라는 걸 감안하면 직원 한명을 내보내는 데 적게는 2억1500만원에서(5270만원÷6개월×20개월+자녀학자금+재취업 지원금 평균 4000만원) 많게는 3억8000만원(5270만원÷6개월×39개월+자녀학자금·재취업 지원금 평균 4000만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자 장사로 번 돈을 몸집 줄이기에 쓰고 있다는 비판이 사실인 셈이다.


은행들은 체질 변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실적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코로나19 위기와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비대면 거래 확대에 따른 점포 통·폐합, 책임자급 대비 행원의 비중이 적은 ‘항아리형’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력조정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퇴직금을 지급하는 건 직원의 선택을 돕기 위한 것”이라며 “직원에게 직접적으로 퇴직을 권유할 수 없어서 더 많은 퇴직금을 주거나 희망퇴직 대상을 넓히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IT부문 인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직원을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하고 업무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직원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며 “퇴직금을 조금이라도 더 줄 때 은행을 떠나는 게 낫다고 여기는 직원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은행 직원이 감소하는 건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구분하는 금융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희망퇴직이 신규채용 규모 확대로 이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2018년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일자리를 크게 늘렸던 은행업계의 채용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서다.

국내 5대 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의 신규채용 규모는 지난해 2300여명에서 올해 1600여명으로 30.4%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채용 규모가 다시 증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은행이 점포 통·폐합과 인력 감축 등의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전망이 밝지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연례행사된 은행 희망퇴직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은행이 효율성과 수익성만 좇는 것이 문제”라며 말을 이었다. “희망퇴직이 문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은행 구성원이 바라는 게 다를 수 있어서다. 하지만 희망퇴직이 인력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활용돼선 안 된다. 노동조합이 희망퇴직으로 줄어든 직원만큼 신규채용을 늘리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측인 은행은 전산화·업무 효율화를 이유로 채용엔 소극적이다. 이는 남은 직원의 업무 부담 증가와 고객의 금융서비스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적정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 건 기업의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은행업계에 감원 바람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올해는 만 40세인 1980년생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됐다. 은행업계의 감원 칼바람이 더 매서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