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출처 논란과 안전문제

질병관리청이 보톡스의 원료인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전수조사에 나섰다. 안전문제를 야기하는 균주 출처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서다. 그럼 지금이라도 균주 관리시스템을 강화하면 안전문제가 해소될까. 문제는 허술한 균주 관리가 수많은 보톡스 생산ㆍ개발기업을 양산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이 또다른 안전문제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국내에 보톡스 기업이 유독 많은 이유를 취재했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가 불분명한 이유는 허술한 관리시스템에 있다. 사진은 미국 엘러간의 보톡스.[사진=연합뉴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가 불분명한 이유는 허술한 관리시스템에 있다. 사진은 미국 엘러간의 보톡스.[사진=연합뉴스]

‘출처 논란’이 시작된 건 2015년 4월께였다. 두바이에서 열린 피부미용 관련 학회에 참석한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는 대웅제약 관계자에게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기원을 물었다.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메디톡스의 것과 유사하다고 판단한 정 대표는 당시 ‘도용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참고 :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보톡스’라고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만드는 원료다.]

두 기업을 둘러싼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 논란은 이내 업계 전체로 확전됐다. 다른 기업들 역시 불분명한 출처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마구간 토양, 부패된 통조림, 썩은 음식물, 분양 등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추출한 경로가 기업마다 달랐지만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충분치 않았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흐른 지금, 숱한 논란에도 해소되지 않던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 논란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질병관리청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보유한 기업과 기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은 메디톡스, 휴젤, 대웅제약, 휴온스 등 19개 기업을 비롯한 20여곳이다. 질병관리청이 이들에 보낸 공문엔 보툴리눔 톡신 균주 보유 현황과 취득 경위, 특성 파악 여부, 보안 관리, 도난 사고 발생 여부 등의 질문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1일 서면조사를 끝마친 질병관리청은 필요한 경우 현장조사까지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기업이 신고한 정보와 언론에 홍보한 사실이 다를 경우, 경위를 파악해 허위 기재된 사실이 있으면 고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면서 “2021년 상반기까지는 조사가 이어질 전망이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건 리스크 요인이다. 앞서 말했듯 ‘기술 도용’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다.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안전’이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극소량만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맹독성 물질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생물테러감염병병원체로 지정돼 있다. 이런 고위험 물질의 출처를 알 수 없다는 건 안전관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방증이다. 질병관리청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나선 이유다. 

그렇다면 균주의 출처 논란만 해결하면 안전문제가 해소될까.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안전문제를 야기하는 건 보툴리눔 톡신 균주만이 아니다. 이 균주로 만드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편의상 보톡스로 통일)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도 안전문제가 발생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균주 출처 논란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동안 균주 관리가 소홀했던 탓에 보톡스의 관리도 취약해졌을 공산이 크다”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 기업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보톡스를 만드는 기업은 엘러간, 입센, 멀츠를 비롯해 7개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에는 총 13개 기업이 보톡스를 생산ㆍ판매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말했듯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손꼽히는 고위험 물질이다. 당연히 보톡스를 생산ㆍ개발하려는 기업엔 까다로운 자격요건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외국에 보톡스를 만드는 기업이 많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반대였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위험성을 인지하면서도 안전관리는 허술했다. 일례로 보건당국은 신고만 하면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취급하려는 기업에 전문인력이 있는지 자격은 있는지 등을 묻지 않았다. 

무엇보다 균주의 획득 사실을 알리는 ‘분리신고서’에는 자세한 경위를 기재하지 않아도 됐다.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가 불분명한 건 그 때문이었다. 균주를 손쉽게 보유할 수 있으니, 보톡스를 만드는 기업이 빠르게 느는 것도 당연했다. [※참고 :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올해부터는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보유할 수 있다. 분리신고 시에도 상세한 획득 과정을 파악할 수 있도록 분리경위서를 추가하도록 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이전부터 균주를 보유하고 있던 기업들을 대상으로 시설ㆍ전문인력ㆍ안전관리 현황 등을 확인해 균주 보유 자격을 부여했고,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서도 그동안 허술했던 안전관리 부문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의 노력과 보톡스의 안전관리는 별개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를 관리하는 건 질병관리청의 몫이지만 보톡스와 관련된 사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맡고 있다.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안전관리가 강화된다고 해도 이미 생산되고 있는 보톡스의 안전성과 품질 문제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란 얘기다. 실제로 보톡스 시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이슈 중 하나도 보톡스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장하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승인 절차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보툴리눔 톡신 균주 출처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기업들은 상업적인 가치만을 논한다. 그게 출처 논란이다. 반면, 시술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예측 가능한 효과를 내고, 꾸준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하지만 해외에선 국내 제품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령, 50유닛 제품을 사용하면 50유닛에 준하는 효과를 내야 하는데, 어떤 건 30유닛의 효과를 내고, 어떤 건 70유닛의 효과를 낸다는 거다. 그만큼 품질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균주를 배양하는 건 어렵지 않다. 품질 유지가 힘든 거다.” 

국내 보톡스의 품질과 신뢰성 문제를 불러일으킨 원인이 뭘까. 어쩌면 허술한 균주 관리시스템으로 인해 균주 보유기업과 보톡스 개발기업이 무분별하게 늘어난 탓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균주 관리시스템을 바로 세운다고 해도 한번 무너진 보톡스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긴 어렵다는 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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