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시대의 아날로그 교구

엔젤산업은 불황에도 꺾임 없는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출산율에도 끄떡없다. 오히려 출산율이 낮아질수록 엔젤산업 시장은 몸집이 커지고 있다. 관련 콘텐트도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스마트 시대에 걸맞은 미디어 콘텐트들이다. 이런 가운데 특허기술을 바탕으로 아날로그 교구시장에 출사표를 내던진 스타트업이 있다. 성공할 수 있을까. 

저조한 출산율에도 엔젤산업은 꾸준히 성장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조한 출산율에도 엔젤산업은 꾸준히 성장세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에잇포켓(8-pocket)’ ‘골드키즈(gold kids)’… 지금의 엔젤산업(14세 이하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대표하는 표현들이다. 아이 한명을 위해 부모와 친조부모, 외조부모, 이모, 삼촌 등 8명의 어른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그 아이는 왕자나 공주처럼 귀하게 자란다는 의미다. 이런 신조어는 날로 심각해지는 저출산 시대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는 30만2676명이다. 10년 전인 2009년 44만4849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4만명 이상이 줄었다.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더 심각하다. 2009년엔 1.149명으로 그나마 한명 이상은 낳았지만 2018년부턴 0명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18명으로 집계됐다. 1970년 출생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치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조출생률도 2017년 7.0명, 2018년 6.4명, 2019년 5.9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유아용품 시장은 꾸준히 성장세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1조2000억원이던 유아용품 시장은 2019년 4조원대로 성장했다. 시장을 엔젤산업으로 확대하면 그 규모는 40조원대(KT경제경영연구소·2017년)로 커진다. 아동·유아용품 온라인쇼핑 거래액도 2017년 3조3872억원, 2018년 3조6153억원, 2019년 4조53억원으로 해마다 증가세다. 출산율과 엔젤산업 시장이 반비례하는 이유는 뭘까. 한 아이만 낳아 키우는 부모가 늘면서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사주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어서다. ‘골드키즈’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엔젤산업 성장에 따라 키즈콘텐트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중심의 키즈콘텐트가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정홍식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맞벌이 가구 증가로 육아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은 이전보다 줄어들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자신의 정성을 대체할 양질의 제품과 서비스에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그래서일까. 미디어에 노출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6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스마트 미디어를 최초 사용하는 시기는 만 1세(12~24개월 미만)가 45.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만 2세(24~36개월 미만), 만 3세(36~48개월 미만)에 처음 사용했다는 응답률은 각각 20.2%, 15.1%로 그 뒤를 이었다. 영유아가 스마트 미디어를 사용하는 시기가 점점 빨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중 하루 평균 30분 이상 사용한다는 응답률은 57.2%로, 30분 미만 사용한다는 응답률(42.9%)보다 높았고, 주중보다 주말에 평균 사용시간이 더 증가한다는 응답도 많았다. 주말에 평균 1시간 30분 이상 스마트 미디어를 사용한다는 응답률은 17.4%로, 결코 낮지 않은 수치다. 

이렇게 육아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됐지만, 사실 스마트 미디어는 양날의 검이다. 잘만 활용하면 다양한 시청각 콘텐트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스스로 생각하려는 능력이 떨어지고, 수동적인 성향으로 바뀔 우려도 있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조심해야 한다. 최근 영유아를 양육하는 부모들 사이에서 ‘미디어증후군’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디어증후군은 언어발달이 지연되고, 후천적 자폐스펙트럼의 위험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들에게 새로운 걱정거리를 안겨주고 있다.

스마트 미디어와 아날로그 교구

일부 부모가 스마트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서도 이런 우려를 엿볼 수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설문(2019년)에 응한 부모(254명)는 스마트 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과의존에 대한 걱정 때문에(70.2%·복수응답)’ ‘아이의 신체 발달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51.0%)’ ‘아이의 사회성·인지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줄까 봐(53.9%)’ 등을 꼽았다. 이창혁 아인스랩 대표가 연구실을 나와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날로그 교구엔 당연히 흥미를 잃게 되죠. 동영상 시청으로 이미지 변화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들에게 아날로그 교구를 접목할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른 게 직업체험이다. “아이들이 키즈카페 같은 곳에서 직업체험을 많이 하잖아요. 그중 소방관 체험을 좋아하더라고요. 거기서 착안해 ‘싸이바스 파이몽’ 스티커를 만들었습니다. 따뜻한 물을 뿌리면 마치 소방관이 불을 끄듯 불꽃 모양이 사라지는 원리입니다. 소방안전교육도 하고 목욕 스트레스도 줄이고, 일석이조입니다.”

이 대표가 개발한 ‘싸이바스 파이몽’ 스티커는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 닿았을 땐 색이 사라졌다가 차가워지면 다시 색이 나타나는 서모크로믹(온도감응 변색) 기술을 사용한 제품이다. 이 대표는 관련 특허도 2건 보유하고 있다. 첫 제품 출시 후 ‘다소 비싸다’ ‘반응속도가 느리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스티커 사이즈를 키우고, 반응속도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차기작은 낱말카드다. 이 역시 서모크로믹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다. “단어마다 각각에 맞는 스토리를 구현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이스크림은 녹아서 사라지는 모습을, 우산은 비올 때 펴졌다가 비가 그치면 접히는 그런 이야기들이요.”

코로나19 탓에 사람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아인스랩은 약간의 수혜를 누렸다. 아이들을 위한 콘텐트 수요가 늘어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란다. 더 큰 목표를 위해 또다른 시장(B2B·기업대 기업간 거래)에 도전하고 싶어서다.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 제품들이 여럿 있습니다. 내년엔 한단계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미디어 콘텐트가 쏟아지는 시대, 직접 만지고 느끼는 이 대표의 교구들은 어떤 발자국을 남길 수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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