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OP? STORY!
리셀러 시장의 두 얼굴

여기 새 제품보다 비싸게 팔리는 중고가 있습니다. 바로 ‘리셀’ 제품입니다. 판매 수량이 제한돼 있다는 이유에서인지 제값의 수백배가 넘는 가격에 팔릴 정도로 시장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하지만 이런 리셀 문화를 달갑게 보지 않는 시선도 많습니다. 치솟는 가격에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소비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더스쿠프(The SCOOP)가 리셀 시장의 현주소를 살펴봤습니다.

리셀 시장이 커지면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리셀 시장이 커지면서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희소성 있는 신발을 정가보다 비싼 값에 파는 ‘슈테크(신발+재테크)’가 인기입니다. 잘만 하면 슈테크로 큰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한정판 신발이 론칭하는 날이면 매장 앞에 소비자들이 만든 장사진이 펼쳐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요즘 같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그럴 정도이니, 말 다했습니다.

이렇게 구입한 신발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리셀(되팔기)’ 방식으로 팔려나갑니다. 새 제품을 되판다는 점에서 ‘중고거래’와 비슷하지만 리셀은 완전히 다른 ‘판매 방식’입니다. 중고가격이 새것보다 비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리셀 제품은 단종이거나 소량만 제작되는 ‘한정판’입니다. 수량이 제한된 제품을 구하고 싶은 이들의 심리가 리셀 제품의 값을 끌어올리는 셈입니다.

이런 리셀 시장은 해마다 성장 중입니다. 미국 투자은행 코웬앤드컴퍼니는 세계 운동화 리셀 시장이 지난해 20억 달러(2조1744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2025년엔 지금의 3배인 60억 달러(6조5232억원)로 커질 전망이라고 하니 소비자들이 리셀 제품에 얼마나 열광하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올해 가장 인기가 많았던 리셀 제품은 나이키와 연예인 지드래곤의 협업으로 탄생한 신발 ‘나이키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입니다. 21만9000원이 정가인 이 제품을 지금 사려면 색상에 따라 적게는 9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쳐줘야 합니다. 나이키가 아이스크림 브랜드 벤앤제리스와 함께 내놓은 신발(나이키 X 벤앤제리스 SB 덩크 청키 덩키)도 210만원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출고가가 12만9000원이었으니 리셀러들은 무려 197만1000원의 시세차익을 보는 셈입니다.

차 1대 값을 훌쩍 넘긴 신발도 있습니다. 지난 6월 나이키와 디올이 콜라보한 ‘에어디올’입니다. 정가는 270만~300만원이었지만 리셀 가격은 최대 1550만원까지 뛰었습니다. 이러니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리셀족’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합니다.

신발뿐만이 아닙니다. 명품 브랜드에서도 리셀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샤넬입니다. 지난 5월 샤넬이 국내 판매 가격을 20%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백화점 앞은 소비자들로 북적였습니다. 과열이 심해지자 일부 매장에선 구매를 희망한 사람들 중 추첨을 통해 판매하는 ‘래플(raffle)’ 형식을 도입하기도 했죠. 가격이 오르기 전에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현재 가격보다 비싸지만 인상 후 가격보단 싼 가격으로 되팔아 이득을 보려는 리셀러들이 많았을 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추정입니다.

그렇지만 리셀 제품을 파는 누구나가 일확천금의 기회를 거머쥘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제품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에어디올의 경우 총 1만3000족 중 8000족만 일반 고객에게 판매됐습니다. 판매 방식은 래플로 진행됐는데, 디올에 따르면 래플에 응모한 소비자만 500만명에 달해 실제 당첨될 확률은 0.16%에 불과했죠.

문제는 이런 리셀 열풍에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리셀 가격이 문제입니다. 기존 가격에서 많게는 수백배까지 오르는 현상이 소비자들 입장에서 달가울 리 없는 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물건을 구할 뾰족한 수가 없는 소비자 중엔 결국 리셀러들을 찾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이준영 상명대(경제금융학) 교수는 “리셀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품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이 제값을 주고 사지 못한다는 것”이라면서 “소비자 권익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리셀러가 파는 제품이 진품인지 여부도 불확실합니다. 일부 리셀러가 교묘하게 ‘짝퉁’을 판매해도 소비자들은 이를 가려낼 방법이 없습니다. 짝퉁인지 진품인지를 판별해 주는 ‘판별 전문가’를 고용하는 리셀 판매 사이트가 있긴 하지만, 하루에 수천건이 사고 팔리는 리셀 시장에서 이런 피해를 100% 막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탈세 문제도 있습니다. 일회성이 아닌 반복적인 리셀로 소득을 얻는 경우엔 소득 신고를 하지 않으면 불법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리셀러들도 소득세와 부가가치세를 내야 하죠. 하지만 리셀러들이 의도적으로 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딱히 이들을 규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최근 리셀 시장에 국내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다는 점은 위안을 삼을 만합니다. 신뢰할 만한 거래 사이트를 이용하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리셀 시장을 가장 먼저 두드린 건 네이버입니다. 자회사 스노우를 통해 3월 한정판 운동화 거래 플랫폼 ‘크림’을 출시했습니다. 패션브랜드 플랫폼 무신사도 7월 ‘솔드아웃’을 론칭하면서 대열에 합류했죠. 같은 달 롯데쇼핑도 리셀 거래 플랫폼 ‘아웃오브스탁’과 손잡고 리셀 제품 판매에 돌입하면서 기업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거나 리셀의 열기는 앞으로도 더 뜨거워질 전망입니다. 리셀 대상이 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이 리셀의 브랜드 홍보 효과를 노리고 점점 더 많은 한정판 상품을 출시하고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피해를 입는 소비자들도 늘어날 공산이 큽니다. 법적 사각지대가 너무 많기 때문이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리셀 시장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리셀 시장에서 소비자는 철저한 을乙이다. 매물을 가진 리셀러가 부르는 가격에 살 수밖에 없다. 소비자를 지켜줄 법의 테두리가 느슨한 현재 상태에서 리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안착한다면 피해를 입는 소비자가 우후죽순 늘어날 거다.”

이혁기 더스쿠프 IT전문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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