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와 대한제국」

경운궁에서 태어난 대한제국은 경운궁 중심으로 시대를 형성한다.
그런 만큼 근대문화유산 1번지 정동의 중심은 경운궁이다.

 
고종이 1년 만에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으로 돌아온 그날을 떠올려본다.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 백성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어땠을까. 고종의 발걸음은 무거웠을까.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린 그때도 정동 경운궁 주변엔 꽃이 폈을까. 아닐 것이다. 어둡고 스산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섣부른 예상은 금물. 대한제국은 우리 역사에서 ‘봄’이다. 개화기와 함께 대한제국은 활짝 피었다. 「개화기와 대한제국」은 대한제국의 맨얼굴을 담았다.

10월 12일은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11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환구단(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을 갖고 국호를 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꿨다.
하지만 이날은 이제 신문 칼럼 한 줄 나오지 않는 잊어진 날이 되고 말았다. 저자는 그래서 책을 썼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제국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13년간 존속한 조선왕조의 국가는 무엇을 남겼을까. 기록은 꽤 세세하다.

대한제국의 역사는 국왕의 경운궁 환궁과 함께 시작한다. 1년여 동안 정부가 통째로 러시아 공사관에 몰려가 있는 꼴사나운 나라의 체통이 바로 선 것이다.

고종의 환궁이 단행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각계각층에서 환궁 요구가 이어졌다. 고종의 아관파천 이후 전에 없이 크게 일고 있었던 자주독립 수호 여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의 정치적 입김이 현저하게 약화된 정치현실도 영향을 미쳤다.

경운궁에서 태어난 대한제국은 경운궁 중심으로 시대를 형성한다. 그런 만큼 근대문화유산 1번지 정동의 중심은 경운궁이다. 고종이 진행한 한성부 개조사업의 출발이 대한문이고, 서양식 교육기관이 들어선 것도 주변에 미국과 영국대사관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동교회다.

옛 배재학당이나 이화여고 심슨홀, 중명전 등 즐비한 유명 건물 가운데 역사성과 건축미가 가장 낫다는 평을 듣는다. 1885년 한옥 기와집에서 출발했다가 일본인 요시자와가 설계하고 목수 심의석이 시공을 맡아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을 지었다.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상징이다. 고종은 경운궁 중심으로 도로망을 건설했다. 전통적으로 경복궁과 그 앞의 육조거리가 수도 한성의 중심이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현재 중앙관청도 이 주변에 배치돼 있다.

정치적 변화를 반영해 경운궁에서 종로를 거쳐 홍릉에 이르는 대로와 남대문에 이르는 대로가 중심가로를 이룬다. 소공동 원구단을 거쳐 남산에 이르는 도로와 서소문으로 나가는 도로도 대한제국 때 모습을 갖췄다. 대한제국의 핵인 경운궁의 면모가 부각되는 순간이다.

구한말 대한제국 모습도 눈에 띈다. 제1차 수신사로 일본을 간 김기수와 일행의 모습이나 명성왕후의 처조카 민영환의 장례식 사진도 생생하다. 광고 카드에 소개된 조선의 신비한 모습은 이국풍경을 그대로 자아낸다.

사진은 외국여행에 나섰던 여행가나 사진가가 주로 찍었다. 신문물인 카메라가 한국에 정착하기 이전인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구한말 사진 대부분은 이국풍경을 갈망했던 대중의 요구에 부합해 촬영된 세계 사진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진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제국주의와 오리엔털리즘의 시각을 주체적 편집을 통해 말끔히 거둬냈다. 면밀한 고증작업을 통해 촬영지와 연대를 확인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구한말 당시 사진에 적절한 인용과 해설을 덧붙여 역사적 사건과 시대상을 구현해 낸 것은 사료로서 손색이 없다.


북 에디터 한마디

언젠가 이룰 꿈을 꾼다. 시대와 역사에 가린 사람과 글을 찾아 복원하는 일이다. 기자는 삼원보와 용정을 근거지 삼아 중국 관내를 누빈 독립군의 발자취를 취재하고 싶다. 당대의 역사와 마주하는 일, 얼마나 근사한가. 희미한 역사의 기록을 되살리는 작업은 멋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역사의 무게는 무겁다. 때론 외로움과 고단함을 감수해야 한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황제의 나라였던 대한제국.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근대사가 시작하는 한국근현대사 교과목(고등학교)이 올해 마지막이라고 한다. 이젠 교과서에서도 대한제국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난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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