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아포칼립토❹

‘아포칼립토’는 아포칼립스(Apocalypse·묵시록)의 그리스 어원이다. ‘신의 계시 실현’을 의미하기도 하고 거대한 사변의 발생으로 하나의 세계가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종말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말로 하면 ‘판갈이’ 쯤 될까.
 

스페인은 마야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페인은 마야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옥의 ‘쿠쿨칸’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표범 발’을 8명의 추적자들이 집요하게 추적한다. 위기의 순간마다 어느 소녀가 노예상인들에게 했던 저주의 ‘계시’가 하나씩 이뤄지면서 노예상인 추적자들이 차례로 죽어간다. 우리나라 영화 ‘최종병기 활’이 표절했다고 논란이 일었던 쫄깃쫄깃한 장면들이다. 그렇게 7명의 추적자들이 하나씩 죽어가고 마지막 남은 최후의 추적자가 주인공 표범 발을 땅끝 해변까지 몰아붙인다. 더 도망갈 곳 없는 해변에 도달한 최후의 추적자와 표범 발앞에 거대한 스페인의 전함이 떠 있다. 

1500년 마야인들에게 그것은 마치 2000년대를 사는 우리 앞에 갑자기 나타난 압도적으로 거대한 외계인의 우주선과 같은 느낌이었을 듯하다. 너무나 ‘황당한’ 장면에 추적자도 도망자도 ‘하던 일’을 멈춘다. 추적자는 이미 ‘표범 발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 넋 놓고 해안의 거대한 증기선을 바라본다. 그것은 마야의 창이나 활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추적자가 넋이 나간 사이에 표범 발은 숲속으로 사라진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마야인들이 자기들끼리 죽고 죽이고, 자기들끼리 노예사냥에 나서 이웃을 잡아 사고팔고, ‘쓸데도 없는’ 신전을 짓느라 정작 삶의 터전인 숲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그 신전에서 ‘무지몽매’한 인신공양이나 해대는 사이에 서구 근대문명의 총아인 증기기관을 장착한 거대한 전함이 마야의 해안에 점잖게 들어온다. 멜 깁슨이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맡은 영화 ‘아포칼립토’는 이렇게 남미에 하나의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서구의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멜 깁슨은 ‘백호주의’를 표방하는 호주 출신 배우이자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멜 깁슨은 ‘백인우월주의’의 성향으로도 꽤 알려져 있다. 이 영화엔 멜 깁슨다운 시각이 묻어있다. 마야 사회는 서구에게 정복당하기 이전에 이미 썩을 대로 썩고 곪을 대로 곪아 어차피 ‘망할 놈들’이었다는 시각이다. 

 

아포칼립토는 스페인 점령군의 만행을 기록하지 않았다. 멜 깁슨의 시각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아포칼립토는 스페인 점령군의 만행을 기록하지 않았다. 멜 깁슨의 시각이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아포칼립토는 화면 가득 전개되는 마야 사회의 잔인한 ‘폭력’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영화다. 서구가 그곳에 발을 들여놓기 이전에 마야 사회는 너무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였다는 사실을 열심히 설명한다. 멜 깁슨의 시각을 순순히 따라간 관객들은 어쩌면 마야를 서구가 ‘거둬주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뒀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마야를 정복해 준 스페인에 오히려 감사해야 마땅하게 보인다. 이렇게 ‘침략자’들은 ‘구원자’로 둔갑하곤 한다. 과연 그랬을까.

아포칼립토는 스페인 용병들이 마야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저지른 끔찍한 폭력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멕시코의 은銀 광산에선 마야 원주민 약 2000만명이 가혹한 노동과 은 중독으로 죽어갔다. 물론 스페인 사람들이 유럽에서 옮겨온 지독한 성병도 크게 한몫했다. 비싼 성병약이 마야인들에게까지 공급되지 않았다. 

스페인의 남미 진출(정복) 사업에 동행했던 당시 스페인의 지성이자 신부였던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는 원주민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고통받았다. 자신이 죽은 후에 출간하라고 부탁한 그의 저서 「변명의 역사(Histo ria de Apologia)」에서 라스 카사스는 “만약 나의 신이 이런 짓을 저지른 스페인을 벌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나의 신을 믿지 않겠다”고 적었다.

아포칼립토를 만든 멜 깁슨의 시각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시각과도 닮은 듯하다. 당시 일본의 대표적인 ‘정한론자’들은 ‘서구사람들이 무지몽매하고 더러운 조선인이나 중국인을 일본인과 구분하지 못한다. 통탄할 일이다. 우리가 조선과 중국을 정복해서 그들을 개조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조선을 이대로 놔두면 어차피 누군가 먹을 테니, 우리가 먹는 게 낫다’는 논리도 펼친다. 

 

해방 70년이 넘었지만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인식에 동조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사진=연합뉴스]
해방 70년이 넘었지만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인식에 동조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사진=연합뉴스]

야만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식민지 조선’에 철길도 놓아주고 근대교육도 시켜줬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마땅하다는 의식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모양이다. 멜 깁슨이 아포칼립토에서 스페인이 마야에 퍼부은 온갖 악행과 폭력에 눈감아 버린 것처럼, 일본도 그들이 ‘조선’에 저지른 악행과 폭력에는 시치미를 뗀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마 그들은 멜 깁슨의 아포칼립토를 보면서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고 무릎을 쳤을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이 꽤 성공적이었는지 해방된 지 70년이 넘은 지금도 일본 보수주의자들의 인식에 동조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일본에 감사할 줄 모르는 무지한 한국인을 대신해서 ‘아베 총리님 죄송합니다’를 외치던 어떤 단체의 모습이 떠올라 참으로 착잡하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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