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미국에 로비자금 댄 이유
ITC 전쟁 대체 어디까지 갈까

“트럼프는 빠져라.” LG화학 임원이 WSJ에 기고한 글이다. 미국 대통령이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주문한 거다. 하지만 이 주장은 회사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았다. LG화학은 미국 백악관과 행정부에 로비자금을 대고 ITC의 조기 패소판결 지지를 요청했다. 국익을 운운하며 정부 중재를 바라는 SK이노베이션이나 미국 로비업계에 회삿돈을 쓰는 LG화학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ITC 진흙탕 싸움을 취재했다. 

미국에선 로비와 로비스트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LG화학도 로비 활동에 적잖은 비용을 들였다.[사진=뉴시스]
미국에선 로비와 로비스트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LG화학도 로비 활동에 적잖은 비용을 들였다.[사진=뉴시스]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을 둘러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소송)이 또 연기됐다. 벌써 세 번째다. 10월 5일에서 26일로, 다시 12월 10일로 연기하더니 또 밀렸다. ITC의 발표대로라면 두달 뒤인 2021년 2월 10일에야 결론이 나온다. 

그럼에도 ITC의 소송 구도는 그대로다. LG는 공세, SK는 수세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지난 2월 ITC가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종 판결에서도 조기패소 판결이 확정되면 SK이노베이션의 명운은 급격하게 기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대미對美 배터리 부품ㆍ소재 수출에 제동이 걸린다. 그러면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배터리공장의 가동 여부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반면 LG화학의 어깨는 한결 가볍다. ITC의 조기패소 판결이 최종에서 뒤집어진 사례가 단 한건도 없어서다. ‘LG 공세 SK 수세’란 현 구도는 두 회사가 발표하는 입장문과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국가 경쟁력 침해’ ‘해외 기술 유출’ ‘국익 훼손’ 등에 초점을 맞춘다. 국내 기업 간 갈등이 국내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부추긴다는 논리다. 역으로 돌려보면 범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그럴 때마다 LG화학은 “국익 훼손은 전혀 근거 없는 추정”이라면서 반박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면 ITC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 기술력을 인정받는 계기로 삼으면 된다. 잘못이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양사가 진지하게 대화하고 정당한 보상을 논의하면 된다(2019년 9월 입장문).” 법대로 하면 그만이란 거다. 

올해 9월에도 LG화학은 “사익을 위해 국익을 운운하는 일은 이제 그만 멈추길 바란다”면서 “소송을 통해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고,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라”고 경고했다. 

지난 11월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실린 LG화학 임원의 기고문 맥락도 같다. “트럼프는 한국 분쟁에서 빠져야 한다(Trump Should Stay Out of Korean Dispute)”. 민간기업 간 갈등에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LG화학의 속내까지 그랬던 것 같진 않다. ‘국익 훼손 운운하지 마라’ ‘트럼프는 한국 분쟁에서 빠져라’고 주장하던 LG화학은 뜻밖에도 미국 정치권에 ‘로비자금’을 댔다. [※참고 : LG화학은 올해 미국에서 로비자금 20만6666달러(약 2억2500만원)를 공식 지출했다. 원래부터 미국 로비에 적극적이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로비활동을 등록했고, 4차례에 걸쳐 총 10만5000달러를 썼다. 올해는 비용이 두배로 늘었다.]

물론 미국에서 로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상충된 이해관계를 절충할 묘책’으로 통한다. 정책 결정 과정이 복잡한 만큼 각자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온갖 로비를 펼치는 경우가 숱하다. 대신 각국 정부와 민간단체ㆍ기업이 로비 용도로 쓴 금액과 내역을 미 법무부에 제출ㆍ신고하도록 의무화해 놓고 있다. 얼마나 돈을 썼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공식적으로 밝히라는 의미에서다. 

“명명백백하게 밝혀라” 

LG화학의 피후원자 목록을 보자.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Consumer Product Safe ty Commission), 상무부(Dept of Comme rce), 국토안보부(Dept of Homeland Secu rity), 대통령실(Executive Office of the President), 부통령실(Vice President’s Office) 등으로 다양했다. 

이 회사의 로비 활동이 모두 ITC 소송과 관련된 건 아니었다. 예컨대, 소비자제품안전위원회에 로비를 한 건 전자담배 배터리 소송과 관련됐을 공산이 크다. 전자담배에 탑재된 LG산 배터리가 폭발해 미국 전자담배 소비자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한 바 있다. 하지만 LG화학의 다른 의도가 드러나는 자금집행 내역도 있다. 

LG화학이 4만1666달러의 로비자금을 대면서 고용한 CGCN그룹 로펌은 지난 10월 30일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백악관과 행정부 관리를 교육해 대통령이 LG화학 지식재산권 침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에 책임을 묻기로 한 ITC의 결정을 준수하도록 보장하라(Educate White House and adminis tration officials to ensure that the Presi dent upholds the decision by the Intern ational Trade Commission to hold SKI Innovation accountable for violating the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of LG Chem).”

쉽게 말해 미국 행정부를 상대로 ITC가 내린 조기 패소판결의 합당함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 셈이다. ITC의 최종 판결에 미국 행정부가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 있어서다. LG화학의 로비 집행은 이런 시나리오를 막기 위함인 셈이다. 

물론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기업 미래를 위한 투자라면 얼마든지 써야 한다. 그 결과가 ‘소송 승리’라면 그 몇배, 몇십 배의 이익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그 승리가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도 있다는 거다. 두 회사가 소송 경쟁에 골몰하는 사이 글로벌 배터리 기업들은 기술 혁신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어서다. 두 회사는 여론전을 펼칠 때마다 “소송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조했지만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소송을 유리한 판도로 뒤집는 데에만 매달리고 있어서다. 로비를 통한 정치공세를 편 LG화학이나 ‘국익 훼손’을 운운하며 정부 중재를 끌어들인 SK이노베이션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LG화학은 “진흙탕 싸움이 아닌 배터리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한 법적 절차”라고 주장해왔다. 이 소송이 국내 배터리 핵심 기술을 지키기 위한 법적 절차인지, 진흙탕 싸움인지를 결정하는 건 소송을 대하는 양사의 태도다. 아직까진 ‘너 죽고 나 살자식 진흙탕 싸움’일 뿐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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