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 이후 산업재해 관련 법안 통과율 분석해 보니…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건 등 국민을 공분케 한 산업재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때문인지 최근 국회에서도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21대 국회가 재계의 반발을 뚫고 법 제정에 성공할 수 있느냐다. 19대 국회 이후 발의된 관련 법안 30개 중 국회를 통과한 법은 2개밖에 없었다. 법안통과율은 6.6%에 불과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중대재해법 뒤에 숨은 이야기를 취재했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요구가 거세다.[사진=뉴시스] 

# 2016년 5월 28일, 스무살의 비정규직 청년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이었던 청년은 지하철 2호선 구의역으로 진입하던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생을 마감했다. 2인 1조로 일을 해야 했지만 청년은 혼자였다. 현장엔 책임자가 없었다. 청년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가 있었지만 이를 유심히 지켜본 역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에 수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청년이 사고를 당한 스크린도어는 1만여장이 넘는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청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청년을 고용한 하청업체 대표는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원청인 서울메트로 대표는 고작 벌금 1000만원을 내는 것으로 끝났다.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법안(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 그로부터 2년 후 또 한명의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2018년 12월 10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던 중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의 나이는 스물셋에 불과했다. 이번에도 2인 1조로 작업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반복된 산업재해에 분노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원청과 하청 책임자의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이 사건 책임자 18명을 조사했지만 최종 책임자인 대표들은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이 혐의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다행히 검찰에서 책임자 전원을 기소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법적공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다시 2년이 흘렀다.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과 관련 공무원의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하고 연내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중대재해법은 모두 다섯개다. 법안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의무 위반으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형사처벌(최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게 법안의 골자다.

노동계는 법 제정 가능성을 반기고 있다. 반복되는 산업재해는 기업에 책임을 물어야 줄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민단체 민중공동행동은 지난 17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가 사고로 죽어가는 참담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사업주의 책임을 물어서라도 죽음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법 제정을 우려하는 재계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등 30개 경제단체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은 모든 사망사고의 책임을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부과한다”며 “이는 관리 범위를 벗어난 불가능한 것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 공동연대 처벌을 가하는 연좌제와 같다”고 비판했다. 주요 경제단체가 특정 법안을 두고 공동 기자회견을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대재해법을 향한 재계의 두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중대재해법 제정을 둘러싼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 우선 우리나라 산업재해 현황을 살펴보자.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2020명에 달한다. 2018년 2142명 이후 2년 연속 2000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는 9월 기준 1571명이다. 적지 않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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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국회의원들이 중대재해법을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사진=뉴시스]

하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고용노동부가 2013~2017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판결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법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 중 원청과 하청 사업주는 각각 34.6%, 12.7%에 불과했다(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결 분석 연구). 피고인의 절반 이상은 현장소장(10.6%)과 안전보건관리책임자(35.7%)였다.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피해자가 있는 사업재해에서 책임자가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1.7%에 불과했다.

정치권 한목소리 냈지만…

피고인의 10명 중 9명은 벌금(63.9%)과 집행유예(26.6%)를 받고 풀려났다. 이를 두고 한국비교형사법학회는 “마치 결론을 집행유예, 500만원·1000만원 벌금으로 정해 놓고 있다”며 “그 결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찾아 나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떨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노동계에서 중대재해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를 방지하겠다고 약속한 금배지들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으로 끝난 게 한두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19대 국회(2012~2016년) 이후 발의한 산업재해 처벌 강화 법안의 처리 결과를 분석해봤다.

2013년 5월 이후 발의된 법안은 총 30개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2건을 기록했다. 중대재해법의 전신으로 불리는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노회찬 의원 등 11인)과 중대재해법이 각각 1건, 5건 발의됐다.

하지만 발의된 법안의 처리 결과는 참담했다. 30건의 법안 중 국회의 문턱을 넘은 법은 2건에 불과했다. 26.6%에 해당하는 8건의 법안은 임기만료 폐기됐다. 11건은 대안반영 폐기됐고, 위원회 심사를 이유로 국회 계류 중인 법안도 9건에 달했다. 기업 경영활동을 옥죈다는 기업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법도 숱하다. 중대재해법의 전신으로 불리는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이 대표적이다. 이 법안을 논의한 2017년 9월 19일 법제사법위원회의 회의록에는 “법인에 독자적 범죄능력을 인정하고 있지 않고, 양벌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해 법인을 처벌하도록 한 현행법 입법 태도 등을 고려해서 판단할 사안”이란 짤막한 평가만 담겼다.

30개 중 국회 넘은 법은 2개

다행히 중대재해법은 여야 모두 입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문제는 법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두곤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자 책임 의무 범위, 인과관계 추정 조항 등이다. 노동계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선 강력한 법안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건강연대 관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처벌 규정이 있지만 최저 양형 규정이 없어 실질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다”며 “중대재해법의 의의는 사업주와 경영진의 책임을 넓게 인정하고 현실적인 처벌을 받게 한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의 목적은 기업 경영진이 현장의 안전을 살펴 산업재해를 예방하라는 데 있다”며 “경영진에 책임을 묻는다는 법이 있어야 안전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쓸 것 아니겠냐”고 꼬집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난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2000명을 훌쩍 넘었다. 하루 평균 5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는 거다. 언제든지 또 다른 구의역 사고, 태안발전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의 무관심이 부른 위험, 이제는 막아야 할 때가 아닐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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