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명동에서 개업한 상인들

여기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명동 임대료다. 올 3분기 서울 중구 명동의 1층 상가 3.3㎡(약 1평)의 임대료는 전년 동기 대비 더 올랐다. 추정컨대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국면에서도 개업할 사람들은 창업했고, 그 틈을 타고 임대료는 더 올라갔다는 거다. 그럼 명동에서 개업한 자영업자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코로나19 국면에서 명동에서 개업한 상인 3명을 만나봤다. 

코로나19에도 올해 서울 중구 명동에서 문을 연 업체는 71곳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에도 올해 서울 중구 명동에서 문을 연 업체는 71곳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25만5052원. 서울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중구 명동 1층 상가 3.3㎡(약 1평)의 3분기 평균 임대료다.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어든 곳이 많을 텐데도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오히려 3만6000원이 올랐다. 33㎡(약 10평) 상가로 본다면 30여만원 상승했다.

같은 기간 명동에는 폐업한 곳(138개)도 있지만 개업한 곳(71개)도 있었다. 역설적이다. 어려운 시기에도 개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이 있고 임대료는 그 와중에 더 오른다. 개업한 가게 사장들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던 걸까. 직접 찾아가 물어보기로 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우리동네 생활업종 시스템에 따르면 올 초부터 3분기까지 명동에서 문을 연 자영업 대표 업종인 일반음식점(한식)과 휴게음식점(커피)은 각각 20곳으로 총 40곳이다. 흔히 명동이라고 하면 관광객이 모이는 명동길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명동의 범위는 그보다 훨씬 넓다. 북쪽으로는 청계천, 남쪽으로는 남산 자락까지다. 북쪽부터 남쪽으로 내려가며 올해 개업한 가게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시청 근처에 있는 작은 개인 카페는 지난 6월 문을 열었다. 이 카페 사장은 어쩌다 개업을 결심하게 된 걸까. “원래는 여기서 옷을 팔았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심해지다 보니까 옷이 전혀 팔리지도 않더라고요. 그래도 옷보단 먹는 게 나을까 싶어 6월에 업종을 변경했죠. 몇년 전에도 사실 카페 운영을 했었거든요.”

처음엔 옷보단 커피 매출이 괜찮았지만 코로나19가 지속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고객이 부쩍 줄어든 것은 기본. 시청 주변 오피스에서 종종 나오던 대량 주문마저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뚝 끊겨버렸다. 정부가 시행한 지원 방안은 도움이 안 됐던 걸까. “사실 소액의 지원금보다는 저금리 대출이 필요해요. 대출 방식도 조금 바뀌면 좋겠어요.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온종일 컴퓨터만 보고 있기는 어렵거든요. 생계도 유지하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서버가 다운되거나 대출 마감이 너무 순식간에 끝나버리더라고요.”

그래도 이 카페 사장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었다. 건물주가 3개월간 임대료를 10% 인하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상황에 놓인 상인들도 있었다. 이 카페 주변에 있는 신축건물에 입주한 상인들은 월세와 함께 평균보다 높은 관리비에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시청에서 을지로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을지로 대로변에는 새롭게 만들어진 고층 건물이 즐비하지만 조금만 발걸음을 블록 안으로 옮기면 다르다. 서울 도심 제조업을 키운 골목 안에는 최근 몇년간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가 하나둘씩 생겼다. 올해 3월 문을 연 과자점도 인근에 있는 13.2㎡(약 4평) 점포에 둥지를 틀었다. 어려운 시기에 창업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지난해부터 개업 준비를 했기 때문에 더 미룰 수가 없었어요. 가게는 처음 해봐요. 원래는 내내 다른 일을 했었어요. 개업 준비를 하다 보니까 코로나19라고 해서 중간에 그만두고 또 다른 일을 벌일 수가 없더라고요. 계속 타이밍을 보다가 더 미룰 수 없어서 문을 열었죠.” 

“개업 준비해온 탓에”

불황 한복판에서 개업한 탓인지 임대료가 부담이다. 면적이 작으니 아주 비싼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게 들어온 것도 아니어서다. 최근 개업했기에 대출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쌓아둔 돈을 계속 까먹는 상황’이다. 최선의 상황은 돈이 바닥나기 전에 코로나19가 진정되는 거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안고 을지로를 지나 명동의 남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흔히 명동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명동길’이 가까워졌다. 외국인 관광객으로 들어찼던 넓은 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명동길의 중심부엔 불을 밝힌 상가가 그나마 많았지만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랐다. 상가 한두곳을 뺀 나머지 점포가 텅 비어있는 건물도 있었다. 그중에서 문이 닫힌 ‘중국’ 카페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한국을 찾는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줄면서 폐점한 듯했다. 하지만 쉽게 문을 닫는 해외 프랜차이즈와 달리 국내 자영업자들은 버티는 게 상책이다. 폐업 결정도 쉽지 않아서다.

명동길을 빠져나와 퇴계로를 건넜다. 퇴계로 대로변에 있는 신사업창업사관학교의 체험 점포인 ‘꿈이룸’에도 ‘코로나19로 당분간 휴업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많이 늘어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쉬운 폐업도 없다” 

‘꿈이룸’ 상가를 지나 남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언덕길에는 올해 문을 연 일반음식점 한 곳이 있었다. 올해 5월 창업한 육회집 사장은 원래 두바이에서 무역업을 오래 했다고 말했다. 

“요식업은 처음이지만 요리에 소질이 있었거든요. 요리를 더 전문적으로 배워서 개업 준비를 했어요. 코로나19가 해소되기를 계속 기다리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문을 연 거예요. 그런데 상황이 정말 안 좋네요. 하루에 두세 그릇도 못 팔 때도 있어요.” 손님은 뜸하지만 그나마 임대료가 부담이 적어 괜찮다고 그는 말했다. 

대로변이 아닌 데다 오르막길에 있어 명동의 다른 상가보다는 임대료가 낮은 편이라서다. 그래도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문 여는 순간부터 적자가 쌓이는 셈이에요. 벌써부터 문을 닫으면 뭘 해야 하나란 고민도 들어요. 고향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하고 있고요.”

임대료에 따라 상황이 조금 달랐지만 명동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었다. 홀로 버틸 수 있는 자영업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