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과 첨단기술

“스마트 건설기술 선도국 반열에 진입하고, 건설산업의 생산성을 50% 이상 향상시키겠다.” 정부가 2025년까지 건설현장을 스마트하게 바꾸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2D다. 정부는 이상을 꿈꾸지만 현장은 수십년 전에 머물러있다. 이 간극은 좁혀질 수 있을까. 

건설산업에도 첨단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건설산업에도 첨단기술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8년 1월 24일 일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미국 스타트업인 카테라(Katerra)에 8억6500만 달러(약 9600억원)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카테라는 창업한 지 3년밖에 안 된 공동주택 전문 건설기업이었다. 그런 카테라의 어떤 점을 보고 소프트뱅크는 거액의 투자를 결정한 것일까.

카테라는 테슬라의 공동창업자 중 한명인 마이클 마크스가 2015년 설립한 콘테크(Con-Tech) 스타트업이다. 콘테크는 건설(Construction)과 기술(Technology)을 합친 말로, 4차 산업기술을 활용해 건설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을 뜻한다. 업계 최초로 설계·자재 생산·시공 등 각 공정을 수직통합한 카테라는 빠르게 성장해 창업 2년 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등극했다.
 
카테라는 미국과 중국에 첨단시설을 갖춘 자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별도의 물류센터를 갖춰 적기에 납품할 수 있는 시스템도 완비했다. 사전에 ‘벽’ ‘문’ 단위의 반조립품 형태를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만 하면 되는 공정으로 공기工期와 비용을 3분의 2 수준으로 줄인 게 카테라의 가장 큰 경쟁력이다. 이런 방식으로 2019년엔 공동주택 총 5675채를 지어 미국 톱5 건설사에 선정되기도 했다. 독보적인 모델로 업계에 파란을 일으킨 카테라의 기업가치는 30억 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카테라에 거액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카테라 같은 혁신기업이 탄생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기 위해선 건설업계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내놨다. 카테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설계부터 준공까지 모든 건설 과정을 통합한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이 “업종을 자잘하게 분류(대분류 5개·소분류 25개)해 놓고 각각의 영업 범위를 제한해 놓은 우리나라에 카테라가 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중엔 박승국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있었다. 

그는 지난 5월 ‘스마트 건설기술 보급 및 활성화 방안’ 보고서를 통해 스마트 건설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해 “지난 20년간 경제성장률과 경제규모에 대비 건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41개국 중 40위를 차지했다”며 “다른 산업에 비해 매우 뒤처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설산업의 생산성은 왜 이토록 뒤처진 걸까. 박 연구위원은 “다른 산업은 지난 수십년간 자동화 또는 IT기술을 발판으로 생산성을 가파르게 키워왔지만 건설산업은 기존 생산방식을 버리지 못했다”면서 “여기엔 복합한 생산방식, 기술인력의 노령화, 표준화된 지식체계 구축의 어려움 등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첨단기술을 개발·적용해도 단기 프로젝트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점, 설계·시공·자재·장비 등 각 영역 간 협력이 어려운 조달 구조, 보수적인 문화까지…, 건설산업의 생산성이 증가하지 않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건설산업 생산성 낮은 이유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앉은자리에서 불구경’만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2018년 우리 정부도 스마트 건설기술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낡은 전통산업에 머물러 있는 건설업에 자동화·고객맞춤·정보공유 등의 기술을 접목할 경우, 산업패러다임이 전환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2025년까지 스마트 건설기술 활용 기반을 구축하고, 2030년까지 건설 자동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정부는 건설장비 자동화 등 핵심기술 개발사업에 6년간 총 2000억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지난해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201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향후 스마트 건설기술을 도입할 계획이 있느냐”고 물어본 결과, 전체의 60.0%가 ‘없다’고 답했다. ‘5년 이내 도입할 계획’이란 답도 30.0%에 머물렀다. 심각한 건 전문건설기업일수록 스마트 건설기술을 도입할 의지가 약하다는 점이다. 현장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답은 목표와 현실의 간극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예컨대, 정부가 스마트 건설기술을 추진하기 위해 ‘BIM 적용 표준’ ‘BIM 설계 자동화 기술’ ‘BIM 기반 공사관리’ 등을 제시했다.[※참고 : BIM은 건물의 생애주기에 걸쳐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통합해 정보로 표현한 디지털 모형이다. BIM 기술을 활용하면 기획·설계·시공·유지관리 단계의 정보를 통합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건설사는 현재로썬 BIM 기술력을 활용할 일이 별로 없다. BIM 설계를 한들 정부와 지자체 등의 건설행정은 여전히 2D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건설소프트웨어를 개발·공급하고 있는 유현오 ㈜하우코스트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정부는 BIM을 활용해 설계를 하면 100억원이라도 지원해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지금처럼 이원화된 체계에서 BIM을 어떻게 활용하겠는가.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 

사실 혁신을 가로막는 건설산업의 문제는 또 있다. 저작권 문제로 정보는 폐쇄돼 있고, 자치단체의 정보는 분산돼 있다. 데이터도 잘 호환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스타트업 ㈜하우코스트가 개발한 건설통합내역프로그램 XCOST(엑스코스트)의 질주는 함의含意가 크다. XCOST는 설계와 적산積算(한꺼번에 계산)을 통합하고, 현장과 오피스 사이에서 오가는 문서 등을 표준화한 프로그램인데, 현재 사용자가 4만2000명에 이른다. 


카테라가 그랬듯 설계부터 준공까지 모든 건설 과정을 통합한 서비스를 원하는 건설인력이 숱하단 방증이다. 이를 통해 2D 형식의 작업 방식이 개선된다면 우리나라에 ‘스마트 건설’ 시대가 활짝 열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유현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데이터만 범용적으로 소통돼도 기존의 원시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플랫폼 형태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더 많은 건설현장에서 건설IT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겠다.” 스타트업의 질문에 이젠 정부·지자체 등 공공이 답할 차례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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