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바꿀 전환점 필요
대주주 거수기 문화 없애야
원안서 후퇴한 내용도 많아

공정경제 3법이 공포됐다. 이중엔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를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도 포함돼 있다. 재계는 울상을 짓고 있다. 소송 남발, 헤지펀드 공격 가능성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란 지적도 나온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2020년 12월 29일 공포됐다.[사진=뉴시스] 
감사위원 분리선출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2020년 12월 29일 공포됐다.[사진=뉴시스] 

2020년 12월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날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관련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게 2012년이라는 걸 감안하면 8년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셈이다. 어렵게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2020년 12월 29일 공포됐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크게 2가지다. 감사위원의 분리선출과 다중대표소송제의 도입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던 기존 방식이 아닌 감사위원을 담당할 이사를 처음부터 분리해 뽑겠다는 것이다. 기존 방식으론 독립적인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감사위원 후보가 되는 이사를 선출할 땐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받지 않아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해 왔다. 상법 개정안이 감사위원회 위원 중 1명 이상을 분리해 선출하라는 규정을 신설한 이유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경영진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은 경우 모회사의 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소액주주가 대주주의 ‘자회사를 통한 경영’을 감독할 수단이 마련된 셈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든 다중대표소송제든 재계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는 게 취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재계를 대표하는 6개 경제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산업연합포럼·코스닥협회)가 상법 개정안을 포함한 ‘공정경제 3법(상법 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 감독법 제정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법이 통과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2020년 12월 23일 “공정경제 3법의 경우 내용뿐만 아니라 처리 과정도 서운했다”며 “대다수 성실한 기업을 생각하면 과잉입법이 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보다 앞서 12월 9일 경총은 보도자료를 통해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등 기업 경영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며 “모든 경영계가 끈질기게 요청한 사항이 거의 반영되지 않아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 기업의 고질병인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기업 저평가)를 털어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최대주주의 입김에 좌우되는 이사회일수록 상속·승계 등을 결정할 때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업의 인수합병·기업분할·지주회사 전환 등 주주의 이해가 엇갈리는 결정을 대주주와 지배주주가 선임한 이사들이 주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연히 누려야 할 일반주주의 이익은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상법 개정안은 관행적 병폐를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을 해온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의 변화를 위해서라도 법이 필요했다는 의견도 많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 266개사의 이사회 안건 가결 비중은 99.5%에 달했다. 6271개의 안건 중 부결된 건 8건으로 0.1%에 불과했다. 감사위원회의 원안 가결률은 99.6%로 2019년 99.4%보다 0.2%포인트 상승했다. 기존 법으론 기업 견제라는 감사위원의 취지가 무색했다는 얘기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효과는 미지수

재계는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걱정한다. 헤지펀드가 추천한 감사위원이 선임되면 기업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으로 관련 소송이 증가하면 경영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지나친 기우란 지적도 많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상법 개정안의 힘이 약화했기 때문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에선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한다는 법안의 내용이 ‘개별 3%’로 변경됐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과정에 영향을 미칠 대주주의 영향력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비중은 21.21%(2020년 3분기 기준)이다. 이른바 ‘대주주 3%룰’이 정부 원안대로 통과했다면 삼성전자 대주주의 의결권은 3.0%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법안이 개별 3%룰로 변경되면서 의결권 비중은 12.52%로 높아졌다.

[※참고 :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중 의결권 제한 기준인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4.18%), 삼성물산(5.01%), 삼성생명보험(8.51%) 등이다. 상법 개정안을 적용하면 세 주주가 감사위원 분리선출 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9.0% (각각 3.0%)다. 여기에 나머지 13명의 특수관계인(계열사 포함)이 보유한 지분 3.52%를 합하면 12.52%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더구나 국내 상장사의 평균 감사위원 수가 3.3명이라는 걸 감안하면 감사위원 1명을 분리 선출하는 것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헤지펀드의 공격이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원은 “2019년 현대차와 엘리엇의 주주총회 대결에서 고액의 배당과 사외이사 진입을 노렸던 엘리엇이 패배했다”며 “엘리엇의 주장이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법 개정안으로 헤지펀드의 공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는 과도한 측면이 있는 데다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도 찾기 힘들다”며 “허무맹랑한 헤지펀드의 요구를 다른 주주들이 수용할 가능성도 낮다”고 설명했다.

다중대표소송제도 마찬가지다. 소액주주가 모회사(상장사)의 지분 0.01% 이상을 보유하고 있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요건을 0.5%로 50배나 높였다. 국내 2242개 상장사(코스피+코스닥)의 평균 시가총액이 8305억원(2020년 10월 기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41억5000만원(8305억원×0.5%)어치의 주식을 보유해야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주주대표소송 등 소액주주의 주주권 행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업공시대상 기업의 소액주주들이 ‘회계장부 열람’ ‘주주대표 소송제기’ 등의 권한을 행사한 건수는 47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주주대표소송이 제기된 건 2019년과 2020년 각 1건이 전부다. 재계의 우려와 달리 소송이 급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는 “소액주주가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지분 보유 규정이 높은 데다 기업이 뭘 하는지에 관심을 갖는 주주도 많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분을 많이 보유한 해외자본이나 국내 기관투자자만이 다중대표소송제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법정 공방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소송이 급격하게 늘어나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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