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생과 다중주택의 함정

주택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상가다.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다. 주방이 있어서 계약했는데 불법이다. 단속에 걸리면 나가야 할 판인데 집주인은 태연하기만 하다. 전자는 개조한 원룸으로 대표되는 근린생활시설, 후자는 다중주택을 설명한 말이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1인 가구가 많이 거주하는 곳인데, 한계도 문제점도 많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두 건축물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일부 건축물은 주택으로 쓰이지만 상업 시설이다.[사진=연합뉴스]
일부 건축물은 주택으로 쓰이지만 상업 시설이다.[사진=연합뉴스]

# 청년 A씨는 최근 독립을 위해 부동산 매물을 찾았다. 저렴한 가격에 나온 원룸 매물을 발견하는 데까진 성공했지만 불안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 전입신고는 할 수 있었지만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저리의 전세 보증금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부동산 중개사에게 물어보니 해당 원룸은 근린생활시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겉모양은 원룸인데, 대출을 받을 수 없다니, A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 또다른 청년 B씨는 여러 호실이 있는 3층짜리 주택에 세입자로 들어가기로 했다. 주방이 있었으면 했는데, 제격이었다. 문제는 이 주택이 주방을 설치할 수 없는 다중주택이라는 점이었다. 건축물대장을 확인한 후에야 다중주택이란 걸 알아챈 B씨가 ‘단속에 걸리면 애먼 나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집주인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답은 너무도 태연했다. “조사해서 적발되는 경우는 없었어. 원상 복구 명령도 없을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주택을 불법으로 개조한 건 사실인데, 별문제가 없다니, B씨의 머리에선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중 1인 가구는 보통 저렴한 집을 찾는다. 이 조건을 만족하는 주택 중에는 ‘근린생활시설’이나 ‘다중주택’이 많다. 문제는 두곳의 문제점을 잘 모른 채 입주하는 1인 가구가 숱하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해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이 아니고 다중주택은 ‘주택’이긴 하지만 불법건축물일 가능성이 높다. 

■묘한 주택❶ 근린생활시설 = 흔히 ‘근생’이라 불리는 근린생활시설은 주거지역에서 필요한 ‘생활업종’을 입점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식품ㆍ의류ㆍ건축자재ㆍ의약품 등을 판매하는 소매점이나 500㎡(약 151평) 이하의 고시원이 대표적이다. 

당연히 근린생활시설의 법적 성격은 ‘상가’지만 ‘주거용’으로 사용할 순 있다. 주택은 아니지만 전입 신고가 가능하고 확정일자 받는 게 가능하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예외’다. 하지만 복잡한 성격 탓에 근린생활시설은 문제점이 많다. 


서류상 ‘상가’이기 때문에 국가가 지원하는 전세자금대출을 원칙적으로 받을 수 없다. 근린생활시설 세입자 대부분이 저소득 1인 가구나 사회 초년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근린생활시설을 무턱대고 주택으로 양성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주택 시스템이 붕괴할 수 있어서다. 

■묘한 주택❷ 다중주택 = 그럼 다중주택은 뭘까. 쉽게 말해, 작은 고시원이 근린생활시설이라면 다중주택은 소규모 기숙사다. 대학 기숙사보다 약간 작은 건물을 생각하면 된다. 다중주택으로 쓰이는 층은 3개 이하, 바닥 면적은 330㎡(약 100평) 이하여야 한다. ‘다중’이란 용어에서 보듯 여러 사람이 각각의 호실에 거주한다. 

근린생활시설과 다른 점은 법적으로 ‘주택’이란 거다. 이 때문에 대출을 받을 때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다. 다만, 경계해야 할 건 있다. 다중주택은 취사시설을 만들 수 없어 뭔가를 조리하고 싶다면 공동공간을 활용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불편함 때문에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다중주택 매물이 주방을 갖고 있는 이유다. 불법 개조에 해당한다. 적발되면 주방을 철거하고 원상 복구를 해야 하므로 세입자는 이사를 해야 한다. 

다중주택 임대인이나 부동산 중개인은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임대인을 유혹하지만 관련 규제는 강화되고 있다. 2020년 2월 국토교통부는 영리 목적으로 건물 원상 복구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우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을 기존보다 4배 수준으로 높였다. 부과 횟수도 1년에 2번으로 늘었다. 주방 있는 다중주택에 입주한 세입자는 졸지에 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불량 주택의 늪 = 이처럼 근린생활시설과 다중주택은 한계나 위험요인이 뚜렷하다. 건물주들이 이를 활용해 ‘편법의 기술’을 부릴 수도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언급했듯 근린생활시설은 서류상 상가다. 1가구 다주택자를 피하고 싶은 건물 소유주에게 이보다 좋은 상품이 없다. 실제로는 주택으로 임대하면서 서류상으로는 ‘상가’를 유지해 1가구 1주택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임차인에겐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근린생활시설은 상가이지만 설명한 대로 전입신고가 가능하다. 근린생활시설에서 전입신고를 하면 관할 지자체는 해당 건물을 ‘주거용’으로 집계한다. 그러면 건물 소유주가 1가구 1주택자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주거용’으로 쓰이는 주택을 하나 더 가지고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도세가 늘어나고 처음 매입할 때 면제받았던 세금을 다시 토해내는 경우도 생긴다. 근린생활시설에 종종 ‘전입신고 불가조건’이 따라붙는 이유다. 근린생활시설에 전입신고만 하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전입신고를 못하면 세입자는 사각지대에 놓인다.  

다중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주방이 단속에 걸리면 임대인은 꼼짝없이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근린생활시설이든 다중주택이든 해당 건축물이 법적 용도로 사용되는지를 외부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불법 개조를 확인하려면 내부에 들어가거나 사진이 있어야 한다. 주택 전수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적발이 쉽지 않다는 거다. 

물론 비주거용 주택에도 규제가 강화되면서 앞으로 만들어지는 건물은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행강제금의 규모가 커질 뿐만 아니라 원상 복구 전까지 계속 부과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하다. 세입자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전입신고’와 ‘대출문제’는 여전해서다. 근린생활시설과 다중주택 등 비주택의 문제들은 해소될 수 있을까. 대책은 나왔지만 늪은 아직 깊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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