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속 늙은 집, 그 어쩔 수 없는 이유
골목 속 늙은 집, 그 어쩔 수 없는 이유
  • 오상민 사진작가
  • 호수 421
  • 승인 2021.01.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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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걷수다 제6편
골목길의 고찰❷

아무도 살지 않던 곳에 어떤 이유로 사람들이 모인다. 사람들은 그곳에 하나둘씩 집을 짓는다. 집과 집 사이엔 사람이 다닐 만한 좁은 길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태어난 골목은 사람들과 성장하고 시대와 함께 번성하고 쇠퇴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골목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기존 골목은 해체·방치되고 있다. 건축법과 골목을 고찰해 본다.

해가 지자 가로등이 골목을 밝힌다. 골목을 자연스러운 도시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골목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해가 지자 가로등이 골목을 밝힌다. 골목을 자연스러운 도시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골목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1975년 개정된 건축법. 여기에 규정된 도로의 정의를 보자.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가능한 폭 4m 이상의 도로.”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이 내용은 중요하다. 폭이 4m 이상인 도로에 붙어 있는 땅에만 건물을 짓거나(신축) 넓힐 수(증축) 있어서다. 다시 말해 폭이 2m인 도로에 맞닿은 땅에선 신축도 증축도 못한다는 거다. 

이 이상한 법의 취지는 이렇다. 하나, 화재 시 소방 활동을 위한 소방차 진입도로를 확보한다. 둘, 자기 땅에 자기 차를 주차하도록 해 도시의 주차난을 막는다. 1975년 당시 도시 시민들의 안전과 편리를 고려한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실제로 1975년 건축법에 따라 만들어진 건물 대부분은 4m 이상의 차량 진출입로가 확보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소방안전과 편리를 보장받았다.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 입법이라 할 수 있다.

창신동 전경. 가까이 들어가면 실핏줄 같은 골목골목이 건물과 건물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신동 전경. 가까이 들어가면 실핏줄 같은 골목골목이 건물과 건물을,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좁은 골목에 붙어있는 집=하지만 1975년 건축법이 탄생한 이후 좁은 골목길에 접해 있는 집들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였다. 좁은 골목에 집을 신축하거나 증축하는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었다. 

첫번째, 골목의 폭을 4m로 넓힐 수 있도록 내 땅의 일부를 도로에 내주고 집을 짓는다. 가령, 골목의 원래 폭을 2m라고 가정했을 때 양쪽 집이 자기 땅을 1m씩 도로에 넘겨줘 4m 도로가 되면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골목에 맞닿아 있는 집의 주인들이 땅을 도로에 내줄 만큼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집을 처분할 수도 없다. 어차피 개발이 어려운 탓에 건물값은 고사하고 땅값도 제대로 받기 힘들다. 그냥 살던 집을 고쳐서 살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도로폭이 4m 미만이라면 건물을 짓거나 넓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단지 고쳐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사진=오상민 작가]
도로폭이 4m 미만이라면 건물을 짓거나 넓히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단지 고쳐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사진=오상민 작가]

두번째, 건축이 가능한 4m 도로가 붙어 있는 땅까지 토지를 사는 방법이다. 개발이 힘든 골목의 땅을 하나씩 사모아 땅을 연결하면서 넓혀간다는 거다. 그렇게 골목 주변의 땅을 모두 사고 다른 건축법상 도로에 맞닿은 땅까지 구입한다. 그러다 쓸모가 없어진 골목은 대지에 편입시켜 더 넓은 하나의 땅을 만든다. 그곳에 큰 건물을 올리거나 여러 동의 건물을 짓는다.

1975년 건축법, 그 50년도 안 된 법 때문에 골목은 이렇게 사라졌다. 수백년 전부터 사람들이 지나오던 그 길의 기억과 문화는 소멸됐고, 지금도 많은 골목이 해체의 위기에 처해있다.

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인 4m 도로에 붙어 있는 땅에서는 신축과 증축을 할 수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인 4m 도로에 붙어 있는 땅에서는 신축과 증축을 할 수 있다. [사진=오상민 작가]

■ 골목의 정상화= 골목을 자연스러운 도시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것이 골목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건축법상 도로의 정의를 바꿔 골목에 건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집을 짓고 싶은 사람들은 집을 짓고 팔고 싶은 사람들은 제값을 받고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단 거다. 

꼭 4m 도로가 있어야만 안전하거나 주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좁은 골목엔 다양한 소방시설과 소방기구를 먼저 배치하면 그만이다. 실내 소방시설을 확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방차가 문 앞에 오지 않아도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대비할 수 있으면 된다. 주차문제는 자연스럽게 집의 가치에 반영될 것이며, 지금도 잘 이용하고 있는 거주자우선주차나 공공주차 확대를 통해 주차난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2018년 서울시가 기울인 골목재생에 대한 관심은 반갑다. 골목의 가치를 탐구하고, 골목이 갖고 있는 문화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은 타당하다. 

창신동에는 폭이 1m 남짓한 골목길도 많다. 이제 이런 골목길은 도시에서 찾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신동에는 폭이 1m 남짓한 골목길도 많다. 이제 이런 골목길은 도시에서 찾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사진=오상민 작가]

■ 보존가치와 개발가치= 가치가 있는 것을 보존하는 건 도시의 발전을 이끄는 주요한 요소다. 그것은 문화가 되고, 거기에 담긴 ‘특색’은 도시의 자원이 된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골목을 선별하고, 보존·관리하는 게 옳은 과정인 이유다. 

보존할 가치가 없는 일반적인 골목길은 길의 원형을 적절히 유지·변형해 각자가 주어진 환경에서 자유롭게 집을 지을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해야 한다. 보존할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인프라가 열악한 골목은 마을의 경관을 존중하며 중대형 규모의 개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도시는 단 하루도 쉬지 않는다. 어딘가 공사하고 개발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골목은 45년 전 그날 멈췄다. 골목 속 주민들은 말한다. “내 땅에 내 집 짓고, 살고 싶다.”

글 = 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창에서 새어 나온 불빛과 가로등이 골목을 밝힌다. [사진=오상민 작가]
창에서 새어 나온 불빛과 가로등이 골목을 밝힌다. [사진=오상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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