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과열될 수밖에 없는 이유
불안 때문에 매수하는 사람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됐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쉽게 꺼질 상황도 아니다. 다주택자를 옭아매는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빠져나간 매물들은 다시 다주택자의 품 안으로 가라앉았다. 시장에 뛰어든 수요자들은 ‘지금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다.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공포 때문이다. 정부가 공급 대책으로 내놓은 대규모 주택 공급을 빠르게 시행해야 하는 이유다.

전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자금이 넘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전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자금이 넘치고 있다.[사진=뉴시스]

‘2008년 이후 최저치.’ 미국 재고 주택 이야기다. 세계 최대 부동산 프랜차이즈 업체 리맥스(RE/MAX)의 월별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1월 미국 주택 재고량은 2008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가격도 오름세다. 주택 중위 가격은 1년 전인 2019년 11월 대비 13.8% 올랐고 전체 주택 판매 금액도 같은 기간 20.0% 증가했다. 

리맥스는 “낮은 금리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모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주택 시장의 문제가 있다면 시장에 나올 주택이 너무 적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2021년에도 주택 수요가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포브스도 2021년 미국 주택 시장에 신규 수요가 지속적으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로 건축 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고 노동력도 찾기 어려워서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리는 낮고 수요는 늘고 있다. 2020년 3월 처음으로 기준 금리가 0.75%로 떨어지면서 0%대 금리 시대가 시작됐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인 코픽스(COFIX)는 2020년 9월 0.80%(신규취급액 기준)라는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해 12월 다시 0.90%까지 올랐지만 최근 5년 평균(1.68%)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다. 주택 거래도 정점을 찍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월 전국 주택 거래는 22만3118건으로 2006년 집계 이래로 가장 많은 주택이 거래됐다. 

2020년 11월에는 17만4634건으로 7월과 비교하면 21.7% 감소했지만 2018년 거래량(13만214건), 2019년 11월 거래량(15만6846건)을 감안하면 적은 수가 아니었다. 주택 시장의 가격 안정을 막는 요소가 여전히 많다는 건데, 이유가 뭘까. 

 

■이유❶ 다주택자의 증여 = 주택 시장이 계속 팽창할 것이라는 전망은 규제를 아랑곳하지 않는 매물이 발생한다는 데서 나온다. 일반적으로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면 매물로 나오는 부동산이 늘어나고, 시장에 공급 효과가 발생한다. 그러나 최근 양상을 보면 보유 주택을 시장에 내놓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1주택자가 되는 비중이 늘었다. 다름 아닌 증여를 통해서다. 

서울 주택의 증여 비중은 최근 5년간 5.0 ~10.0% 구간을 오갔지만 2020년 8월 18.5%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15% 선을 넘겼고 같은 해 11월에는 최고치인 19.7%를 기록했다. 전체 거래된 주택 5채 중 1채는 매매가 아닌 증여인 셈이다.

같은 기간 4~5% 안에서 움직이던 전국 주택 증여 비중도 2020년 8월 10.0%를 기록한 후 9월 8.2%, 10월 7.7%, 11월 8.8%로 움직였다. 다주택 부담을 느끼고 주택을 처분할 때 다른 이에게 파는 것보다 차라리 증여세를 내고 친족이나 가까운 사이에게 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이는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방증이다. 시장에 나와야 할 매물이 다른 길로 새고 있다는 건데, 증여의 증가는 주택의 시장 공급을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유❷ 무주택 공포 = 부동산은 본질적으로 다른 자산들과 특성이 다르다. 생존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투자를 잘못해 경제적으로 손해를 입는 것도 삶에 영향을 주지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삶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가령, 빚에 기대 집을 마련하면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높은 집값 탓에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긴 통근 시간으로 삶의 질이 추락해 버린다. 안정된 주거대책이 없다면 소득이 줄어드는 노년이 불안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대출을 억제하고 세율을 끌어올려도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집을 살 수 없다’며 집을 사는 사람들은 막기 어렵다. 지금이 내집 마련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가구는 대부분 1주택자이기 때문에 다주택자에게 적용되는 규제는 사실상 효과를 발휘하기도 어렵다. 수요가 떠받치고 있으니 주택 가격이 계속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유❸ 조급함 부추기는 지표 = ‘지금이 아니라면…’이란 공포를 입증하는 수치는 숱하다. 2008년 집계 이래 최고치인 소득 대비 집값(Price to Income RatioㆍPIR)을 먼저 보자.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2020년 9월 평균주택가격을 기준으로 소득 3분위 가구가 모든 소득을 저축해 서울 주택(3분위)을 매입하려면 15.6년이 필요하다. 

대출 없이 현금 구매를 한다는 가정이지만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택담보대출을 절반 정도 받는다고 가정하면 소득의 절반은 저축해야 15.6년 안에 주택을 살 수 있어서다. 2019년 9월 같은 기준에서 전국 평균 PIR은 4.9에서 2020년 9월 5.5로 소폭 증가했지만 서울은 같은 기간 12.8에서 15.6으로 급상승했다.

 

주택 구매 부담이 커졌다는 또 다른 지표도 있다. 주택구매력지수(HAI)다. 중위가구 소득을 대출상환이 가능한 소득으로 나눠서 구하는 지표인데 기준치는 100이다. 100을 넘으면 주택 구매 부담이 낮고, 100 아래로 떨어지면 반대다. 최근 5년간 서울 HAI는 90.5 (2015년), 87.3(2016년), 79.5(2017년), 65. 9(2018년), 63.3(2019년)으로 점차 하락했다. 

주택 구매 부담이 갈수록 커졌다는 건데, 이렇다 보니 수요자로선 ‘집을 사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3분기 기준 HAI가 65.5로 살짝 반등하긴 했지만 기준치가 100이란 점을 감안하면 주택 구매 부담은 여전히 크다. 

문제는 이렇게 가격 부담이 커질수록 더 오른 부담을 떠안을 수요층이 점점 줄어든다는 거다. 임대 시장에 머무르기도 어렵고 주택을 구매하기도 어렵다. 돈이 없으면 시장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건데, 결국 오른 주택을 팔아 돈을 번 사람들 사이에서 집이 돌고 시장은 과열된다. 악순환이다. 강력한 대책만큼 빠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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