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1편 | 창신동 평범한 계단
길은 연결해야 이용된다. 그래야 길 위에서 사람들이 기억을 남기고,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는 길에도 잔잔한 역사가 깔려 있는 이유다. 우리는 이번에 창신동 높다란 언덕에 숨은 ‘평범한 계단’을 걸었다.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길인데, 여기엔 사실 골목이 있었다.
계단: 사람이 오르내리기 위해 건물이나 비탈에 만든 층층대.
국어사전에서 찾아본 계단의 정의다. 이용주체(사람), 목적(오르내리기), 위치(건물·비탈), 형태(층층대層層臺)를 간결하게 설명하고 있다. 뭔가 다른 정의가 있나 찾아보고 생각해 봤지만 이 설명만으로도 충분해 보인다. 계단은 사람이 생활하는 곳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우리가 매일 밟고 체험하는 것이까…. 이번 편의 주제는 창신동 마을 속 아주 평범한 ‘계단’이다.
창신동과 숭인동 사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지봉로라 한다. 이 도로 북쪽으로는 보문동과 창신숭인동을 잇는 동망봉터널이 있다. 그 터널 바로 위 경사진 산비탈에 아파트 단지가 둥지를 틀고 있고, 그 사이에 ‘일一’자 모양으로 쭉 뻗은 계단이 있다. 주민들은 이를 ‘천국의 계단’이라 부른다.
계단 바로 아래에 서서 위쪽을 보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가파르다. 계단 끝부분엔 현대적으로 근사하게 지은 교회가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십자가 아래로 발길을 이끄는 것 같아 자연스럽게 ‘교회 가는 계단’ ‘천국 가는 계단’으로 불린 게 아닌가 추측해 본다. 그 높다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죽을 것 같다는 이유로 ‘천국’이란 이름이 붙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 계단을 올라보면 양쪽에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 속 화단’ 말곤 볼거리가 없어 지루한 감이 있다. 마을 속 계단이라면 뛰노는 아이들, 작은 가게,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여야 눈이 갈 텐데 그런 걸 보는 재미가 전혀 없다.
하지만 계단을 완전히 올라선 다음엔 달라진다. 계단 아래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셔다. 대단한 풍경은 아니지만, 계단에서 2㎞가량 떨어진 신당역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가로풍경이 일품이다. 길을 중심으로 보이는 스카이라인과 야경은 평범한 아파트 단지에서 보이는 조망치곤 무척 시원하다. 볼 만한 전망을 갖고 있음에도 찾는 사람이 드문 이 계단은 1990년께 계단 서측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조성됐다.
서측 아파트는 처음부터 계단과 연결하지 않고 거리를 둔 채 단절시켰다. 그 후에 지어진 동측 아파트는 계단과 연결하였지만 문을 열어놓은 걸 본 적이 없다. 계단에 면한 양쪽 아파트 주민들이 이 계단을 통행하지 않으니 이용자가 많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하다.
게다가 이곳은 경사가 심한 동네 특성상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주민이 많아 계단을 이용하는 빈도가 적을 수밖에 없다. 출근길에 계단을 이용하는 산 너머에 사는 주민들, 저녁시간 산책과 가벼운 운동을 하는 사람들 정도가 이 계단의 주 사용자인 이유다.
그럼 이곳의 옛 모습은 어땠을까. 1973년께 항공사진을 보니 현재 아파트 단지는 건물과 골목이 어지럽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곳이었다. 마치 지금 창신동 산비탈에 있는 개발되지 않은 골목과 흡사해 보인다. 지금 계단의 정확한 선형을 옛 사진과 대조해 봤다. 1973년 사진에는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던 걸로 확인된다. 1989년께 사진을 보면 서쪽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재 폭의 계단이 만들어졌고, 2008년 동쪽 아파트가 들어서며 현재 모습이 됐다.
모세혈관처럼 퍼져있던 골목 속 계단과 경사로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전부 사라지고 그 모든 게 ‘통로식 계단’으로 수렴한 것이다. 이렇게 생긴 길은 아파트단지가 생기면 만들어지는 아주 전형적인 도로다. 하지만 경사가 심한 이곳의 특성상 차도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단을 통해 주변과 연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천국의 계단이 동네의 소소한 역사이자 이야기보따리인 셈이다. 그래서 더 많은 주민이 이 계단을 두루두루 사용하면 좋겠다. 길은 연결해야 이용된다. 그래야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기억을 남기고 또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다음편에 계속>
글 = 박용준 보통사람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opa.lab.02064@gmail.com
사진 =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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