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많은 건설업에 무용지물
진짜 위험한 현장은 배제
공무원 처벌 특례도 삭제 

신설된 중대재해법의 규제를 받는 건설업체는 100곳 중 고작 2곳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
신설된 중대재해법의 규제를 받는 건설업체는 100곳 중 고작 2곳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됐다. 심의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큼 제정 후에도 논란이 거세다. 한쪽에선 너무 과하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다른 한쪽에선 누더기가 돼버렸다면서 한탄한다. 어느 주장에 더 설득력이 있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중대재해처벌법을 ‘산업재해 1위 업종’인 건설업에 적용해봤다. 

“누더기가 된 법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을 두고 나오는 지적이다.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법이다. 법인이나 기관도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법인이나 중대재해사업주에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릴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사업주가 처벌이 무서워서라도 안전조치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려는 게 중대재해법의 목적이다.[※참고 :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업재해로 ▲1명 이상이 사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거나 ▲직업성 질병자가 1년 내에 3명 이상 발생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이나 공중교통수단의 설계ㆍ제조ㆍ설치ㆍ관리상 결함으로 인한 재해를 의미한다. 이 경우엔 ▲1명 이상 사망하거나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혹은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가 10명 이상 발생해야 중대재해법이 적용된다.]

기존엔 없던 안전 관련법이 생기면 실효성에 의문이 있더라도 ‘제정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예외다.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다. 대체 어느 정도일까. 건설업을 통해 이 법의 허술함을 분석해보자. 

건설업은 산업재해 수, 사망재해 수 모두 1위(단일업종 기준)다. 2018년 기준 전체 산업재해 10만2305건 중 2만7686건(27.1%)이 건설업에서 일어났다. 전체 사망재해는 214 2건인데, 570건(26.6%)이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과연 중대재해법으로 건설업계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을 막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중대재해법의 가장 큰 맹점으로 거론되는 건 ‘5인 미만 사업장’을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간 법 적용을 유예했다는 점이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대부분의 건설업체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업체 대부분은 소규모 사업체다. 통계청의 경제총조사(2015년 기준)에 따르면 건설업체 13만3797개 가운데 5인 미만 사업체는 8만451개로 60.1%다. 50인 미만 사업체는 13만362개(97.4%)에 달한다. 이에 따르면 중대재해법을 건설업에 적용하더라도 97.4%가 제외된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건설업 산업재해의 82.3%(2만2785건ㆍ이하 2018년 기준)가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어났다. 40.1%(1만1091건)는 5인 미만 사업체에서 일어났다. 사망재해 역시 마찬가지다. 사망재해의 72.1%(411건)는 50인 미만 사업체에서, 31. 6%(180건)는 5인 미만 사업체에서 발생했다. 대부분의 중대재해가 50인 미만의 사업체에서 터진 셈이다.

작은 업체일수록 소규모 공사를 맡을 가능성이 높고, 소규모 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서울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서울의 건설 현장 사망자는 154명이었는데, 이중 92명(59.7%)이 공사비 50억원 미만 현장에서 사망했다. 결국 소규모 오피스텔 공사 현장이나 하수도 공사 현장에서 툭하면 발생하는 사망사고엔 중대재해법이 적용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대표이사 외에 별도의 처벌 대상을 둘 수 있도록 한 것도 맹점으로 꼽힌다. 중대재해법이 규정한 처벌 대상은 대표이사 또는 안전담당 이사로 돼 있다. 회사나 대표이사가 안전담당 이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중대재해법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우杞憂가 아니다. 공사 현장에서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정규직 안전관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건 건설업계의 관행에 가깝다. 2018년 10대 건설사 중 특정 건설사에서만 유독 사망사고가 많았는데(10건 중 4건), 이 건설사에 속한 안전관리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82.2%에 달했다. 

중대재해법은 정작 중대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사진=연합뉴스]
중대재해법은 정작 중대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소규모 건설 현장에서는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빠져버린 중요한 내용도 숱하다. 대표적인 게 공무원 처벌 특례 규정 삭제다. 중대재해법 원안엔 이런 규정이 있었다. “공무원(중앙행정기관장과 지방자치단체장 포함)이 그 권한과 관련된 주의의무를 위반해 중대재해를 야기하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3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규정은 논의 과정에서 사라졌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공기업에서도 큰 사고가 나면 해당업체가 인허가권자로서 책임을 지는데, 공무원들이 책임을 안 진다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논의 과정에서 ‘누더기’가 돼버린 중대재해법은 실효성이 약해졌다. ‘산재 1위’ 건설업에서도 별다른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게 뻔하다. 법망이 촘촘하지 않은 데다 구멍까지 숭숭 뚫려 있어서다. 중대재해법의 중대결함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