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과 다르다” 낙관론의 근거
디지털화폐 뜬다고 비트코인 뜨랴

비트코인 상승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논조가 달라졌다. 2017년 투자 광풍이 불었을 땐 ‘기존 화폐를 대체할 혁신화폐’라더니 지금은 금을 대체하는 안전자산이 돼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트코인을 둘러싼 환경이 바뀐 건 사실이다. 기관투자자 일부가 비트코인 수집에 나섰고, 디지털자산을 만들겠다는 국가와 기업도 부쩍 늘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정말 금의 지위를 노릴 수 있게 된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펄펄 끓는 비트코인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분석했다. 

비트코인의 실제 가치를 두고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사진=연합뉴스]
비트코인의 실제 가치를 두고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사진=연합뉴스]

2020년 1월 1비트코인의 가치는 900만원 수준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한 3월엔 700만원대로 폭락했다. 하반기부턴 반전드라마를 썼다. 9월 1200만원을 돌파하더니 11월 말 2000만원선을 넘겼다. 12월 중엔 사상 최초로 3000만원을 넘어섰다. 올해 1월 들어선 4600만원까지 급등했다. 불과 1년 만에 5배나 가치가 오른 셈이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상승한 건 풍부한 유동성 덕분일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각국이 ‘돈 풀기’ 정책을 쓰면서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투자자산의 가치가 상승했다. 미국 온라인 결제업체 페이팔이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소식도 급등세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일반 대중은 고개를 갸웃한다. 현실에서 비트코인을 쓸 수 있는 곳은 여전히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2017년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을 때와 지금이 뭐가 다르냐는 지적도 숱하다. 실제로 2017년 9월 말 43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11월 말 2500만원까지 치솟았다. “화폐로서의 가치가 있냐 없냐”를 두고 사회적 담론까지 벌였지만, 비트코인은 끝내 대중에게 유효한 기능을 선보이지 못했다. 이듬해 비트코인 값이 300만원까지 급락했던 이유다. 

이후로도 비트코인은 매력적인 쓰임새를 드러내지 못했다. 이렇게만 보면 5000만원을 넘보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거품일 공산이 크다. 그런데도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약세장은 올지 몰라도 급격한 폭락장이 연출되진 않을 거다. 비트코인이 막연히 화폐를 대체할 거란 낙관론이 쏟아지던 2017년과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 투자자산으로서 다양한 역할이 부여되고 있다. 거품 낀 투기상품으로만 볼 게 아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다양한 역할’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하나는 비트코인이 투자자산으로서 ‘금’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됐다는 거다. 또 다른 하나는 비트코인이 디지털자산 혁명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주장이다. 알쏭달쏭한 두 가지 설명의 논거를 하나씩 살펴보자. 
 

■디지털골드 될까 = ‘비트코인=디지털골드.’ 요즘 비트코인의 미래를 일컬을 때 자주 회자되는 공식이다.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자 가치저장의 수단인 금의 지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인데, 가능한 이야기일까. 일단 비트코인과 금은 닮은 요소가 많다. 무엇보다 매장량과 발행량 한계가 뚜렷하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전세계 금보유 총량(2019년 2월 기준)은 17만8000톤(t)이다. 전세계 매장량은 7만t 수준에 불과하다. 비트코인 역시 발행량이 2100만개로 제한됐고, 채굴량은 4년마다 절반으로 줄어들도록 설계됐다. 현재 비트코인의 채굴량은 1860만개로, 2040년 정도가 되면 마지막 코인의 채굴이 끝날 전망이다. 둘 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은 적다는 거다.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금이든 비트코인이든 매장량은 한정돼 있고,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면서 “나라가 망하면 종잇조각으로 전락했던 화폐보다 금이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것처럼 지금은 비트코인이 가치저장 수단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비트코인이 디지털골드의 지위를 갖췄다고 단언하긴 일러 보인다. 희소하다고 금과 같은 자산이 되는 건 아니라서다. 인류는 먼 옛날부터 금을 자산이나 화폐로 사용해왔다. 투자자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기관, 개인 등으로 다양하다. 

반면 비트코인은 시장에 모습을 드러낸 지 십수년이 지났을 뿐이다. 비트코인 투자에 뛰어든 건 대부분이 개인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전세계에 흩어진 비트코인 중 기관투자자가 소유한 비중은 1%에 불과하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 중 비트코인을 보유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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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비트코인의 가치 흐름이 금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 것도 아니다. 금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성을 보인 8월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하면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코로나19 백신들이 잇따라 승인될 것으로 예상되던 하반기부턴 당연히 주춤했다. 안전자산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은 10월부터 본격 상승세를 탔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비트코인 가격은 국제 정세와 관련 없이 투기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면서 “안정적인 금융투자 자산의 지위를 갖기 위해선 변동성이 일정해야 하는데, 비트코인은 낙폭을 누구도 담보할 수 없는 상품”이라고 꼬집었다.

■디지털자산 아이콘 될까 = 그럼 두 번째 의문을 던져보자. 비트코인이 디지털자산 혁명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느냐다. 설득력이 없지는 않다. 중국 인민은행은 세계 중앙은행 최초로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앞두고 있다. 유럽중앙은행도 디지털유로 발행을 검토 중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역시 가상화폐 기술을 실험 중이다.

페이팔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라이트코인 등을 지원하는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드업체 비자는 미국 달러화와 연동하는 가상화폐 ‘USDC’의 결제 시스템을 갖출 계획을 수립했다. 모두 디지털자산이 실물경제에 한층 가까이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우는 소식들이다. 

디지털자산은 가상화폐를 포함해 디지털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 있는 물건 모두를 뜻한다. 디지털자산의 가치가 오르고 기술적 유용성이 입증되면, 디지털자산의 아이콘인 비트코인의 가치도 덩달아 오를 거라는 게 비트코인 낙관론자들의 주장이다. 대장주 삼성전자가 코스피의 추세를 결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화폐 기능을 못하는 비트코인을 투자자산으로 보는 시선이 늘었다.[사진=연합뉴스]
화폐 기능을 못하는 비트코인을 투자자산으로 보는 시선이 늘었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 주장의 논리는 허약하다. 디지털자산의 외연이 넓어지는 것과 비트코인 사이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어서다. 세계 각국과 기업이 디지털자산을 발행하는 게 비트코인을 발행하거나 비트코인을 제도권 내로 끌어들이는 게 아니란 얘기다. 비트코인과 무관한 자체 디지털자산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오히려 디지털자산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비트코인의 입지는 흔들릴 공산이 크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발행주체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게 뻔해서다. 비트코인은 이들의 경쟁자일 뿐 파트너가 아니다. 

홍기훈 홍익대(경영학) 교수는 “디지털화폐로 안착하는 데 실패한 비트코인이 ‘디지털자산’으로 겉포장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면서 “무엇보다 세계 각국과 글로벌 기업이 준비 중인 디지털자산은 ‘유용성’을 무기로 삼고 있는데, 비트코인은 많이 발행됐고 유명하다는 장점 외에 내세울 무기가 없다”고 꼬집었다. 디지털자산 시대에서 비트코인이 상징으로 거듭나려면 실물경제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는 얘기다. 가치가 시시각각 오르락내리락하는 지금의 비트코인에는 풀기 힘든 과제일지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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