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도수 자꾸 내리는 업체들
홈술, 혼술 등으로 저도주 트렌트 이어져
실패 사례 볼 땐 16도가 마지노선

소주 도수가 또 내려갔다. 1960년대 30도였던 소주는 1998년 참이슬이 등장하며 23도로 도수가 낮아졌고, 2006년엔 처음처럼이 ‘20도 도수’로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도수가 더 낮아질까’ 싶은데, 얼마 전엔 16.5도짜리 소주도 나왔다. 소주 도수는 왜 자꾸 내려가는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약해져야 사는 소주의 아이러니를 취재했다. 

저도주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소주 도수도 내려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저도주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소주 도수도 내려가고 있다.[사진=뉴시스]

16.9도를 유지하던 희석식 소주 도수가 더 낮아진다. 지난 11일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의 알코올 도수를 16.9도에서 16.5도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순한 소주를 원하는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도수와 디자인을 전면 리뉴얼했다”며 “소주 본연의 맛은 살리면서 목넘김을 더욱 부드럽게 했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처음처럼의 도수를 0.4도 내리면서 디자인도 대폭 바꿨다. 산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모티브로 라벨 디자인을 변경했다. ‘부드러운 소주 트렌드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국내 소주업계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처음처럼이 대대적인 리뉴얼을 통해 알코올 도수를 내리자 시장의 시선은 또하나의 축인 참이슬로 향하고 있다. 하이트진로 측은 “(참이슬) 알코올 도수를 내릴지 말지 결정된 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두 업체의 행보를 보면 참이슬도 도수를 하향조정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롯데칠성음료의 처음처럼은 해마다 도수 낮추기 경쟁을 해왔다. 1998년 참이슬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소주=25도’라는 공식이 성립돼 있었다. 하지만 23도의 참이슬이 출시되면서 조금씩 도수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2004년엔 21도까지 내려왔다.

그러다 2006년 롯데칠성음료(당시 두산주류BG)에서 ‘부드러운 소주’를 콘셉트로 20도의 처음처럼을 선보이면서 1도 더 낮아졌다. 그러자 그해 하이트진로가 참이슬의 순한 버전인 19.8도의 ‘참이슬 후레쉬’를 출시했다. 20도 벽마저 허물어진 거다. 19도 경쟁을 하던 소주 시장에 무학이 16.9도의 파격적인 도수의 소주를 선보이긴 했지만, 두 업체는 이듬해 7월과 8월에 19.5도까지 도수를 끌어내리는 수준으로 시장을 정리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도수 내리기 전쟁은 2012년 다시 불붙었다. 1월에 참이슬 후레쉬가 먼저 19도로 도수를 내렸고, 6월엔 처음처럼도 19도에 맞췄다. 2014년엔 각각 두차례씩 도수를 조정했다. 하이트진로는 2월에 참이슬 후레쉬를 19도에서 18.5도로 한번 내린 후 11월에 또 한번 17.8도까지 내렸고, 롯데칠성음료는 2월에 18도로 내린 처음처럼을 12월에 17.5도로 리뉴얼했다. 2014년 19도로 끌어내린 도수를 4년 만에 17도 선으로 더 떨어뜨린 거다.

2019년엔 하이트진로가 16.9도 소주 ‘진로이즈백’을 론칭하면서 16도대 소주의 포문을 열었고 처음처럼도 이에 발맞춰 도수를 16.9도로 내렸다. 참이슬 후레쉬 역시 2020년 5월 16.9도로 낮췄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지만 처음처럼이 다시 도수 전쟁을 선포한 거다. 언급했듯 이번엔 16.5도다.


소주는 왜 자꾸 도수가 낮아지는 걸까. 업계 관계자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소주 출고량은 해마다 줄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 95만8000kL였던 소주 출고량은 5년 만인 2019년 91만7000kL로 감소했다. 주류업체의 수익성이 그만큼 악화했다는 건데, 원인은 ‘독주毒酒’를 꺼리는 경향에 있다.

최근엔 코로나19로 홈술과 혼술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저도주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독주의 대명사로 알려진 위스키 시장에서 ‘40도 벽을 깬 제품’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다른 이유론 TV광고가 꼽힌다. 17도 미만의 주류만 TV 광고가 가능해서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르면 17도가 넘는 술은 광고 방송을 할 수 없다. TV뿐만 아니라 라디오에서도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엔 광고를 못한다. 도수가 17도 아래로 내려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후 10시 이후부턴 광고가 가능하다. 업체들 입장에선 도수를 내리면 톱스타를 내세워 TV광고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것만큼 확실한 마케팅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소주 도수는 어디까지 내려갈까. 주류산업협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업체의 제조기술이나 레시피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까지 떨어질지를 판단하는 건 어렵다. 소주라는 술의 특성이 있는데 계속 도수를 내리다 보면 그런 특성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마냥 내려가진 않을 것이다.”


이는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하이트진로는 2010년 12월 저도주 트렌드에 맞춰 소주 도수를 15.5도까지 낮춘 ‘즐겨찾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즐겨찾기는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쓴맛만 본 채 시장에서 사라졌다. 즐겨찾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소비자가 느끼는 소주 맛의 마지노선은 16도 선으로 짐작할 수 있다. 처음처럼이 던진 승부수 16.5도, 과연 여기가 끝일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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