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혁신금융 58건 지정
끊이지 않는 중복 지정 논란

혁신금융서비스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변화시키겠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금융서비스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금융위원회가 2019년 2020년 135건의 금융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한 이유다. 하지만 중복 지정, 혁신성 부족 등 고질병은 2020년에도 이어졌다. 혁신금융서비스는 언제쯤 혁신을 품을까.

2020년 금융위원회가 58건의 금융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사진=뉴시스] 

“혁신금융사업자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겠다.” 금융위원회가 주요 정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혁신금융서비스’의 개념이다. 금융위는 2019년부터 총 18차례에 걸쳐 135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다.[※참고 : 혁신금융서비스는 정부가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를 테스트·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인가나 영업행위 등의 규제 를 최대 4년간(2년+2년) 유예·면제받는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된다.]

하지만 혁신금융서비스를 둘러싼 논란도 적지 않다. 2020년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기 정황이 밝혀진 ‘팝펀딩’이 대표적이다. 2019년 3월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이 회사는 2019년 11월 온라인쇼핑 판매자의 재고자산을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금을 대출해주는 서비스를 출시해 관심을 받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팝펀딩의 서비스를 동산금융의 혁신사례라며 극찬했지만 실상은 사기였다. 검찰의 수사 결과, 부실대출·돌려막기·자금유용 등이 낱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혁신금융서비스도 있다. 2019년 4월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서비스 ‘리브엠(Liiv M)’이다. 이 사업은 ‘알뜰폰 사업을 통한 금융·통신 융합 서비스’로 불리며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됐다. 하지만 KB국민은행 노동조합이 ‘알뜰폰 판매가 은행원의 실적 경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굳이 노조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시중은행의 알뜰폰 사업 진출이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이런 논란에도 금융위는 2020년 58개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다. 그렇다면 새로 지정된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의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2020년 혁신금융서비스의 현황부터 보자. 2020년 출시된 서비스는 58개 중 15개(25.9%)다. 전체의 4분의 1만이 소비자에게 선을 보인 셈이다.

그렇다고 내용이 참신한 것도 아니다. 비슷비슷한 서비스가 숱하다. 예를 들어보자. 금융위는 2020년 9월 24일 롯데카드·신한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KB국민카드 5개사가 각각 신청한 5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했는데, 내용은 모두 ‘비거주자·외국인 대상 카드사 해외송금 서비스’였다.

아울러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 실명확인 서비스(5건),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한 비대면 계좌개설 서비스(3건), 온라인 쇼핑 플랫폼을 활용한 보험 모바일 상품권 서비스(3건) 등 엇비슷한 내용의 서비스도 많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혁신금융서비스 선정은 서비스 기준이 아니라 이를 신청한 기업을 기준으로 선정된다”며 “비슷한 서비스가 혁신금융으로 중복 지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중복 지정은 기업에 분명 손해다.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소지가 커서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단계에서 배타적 운영권에 관한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혁신금융서비스 135건 지정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혁신금융서비스에 지정되더라도 배타적 운영권이 없다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면서 “특히 지정대상자가 스타트업이라면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에 아이디어를 빼앗길 가능성도 높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양한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혁신적인 서비스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비슷한 금융서비스를 중복해서 지정하면 기업으로선 고객의 편의성과 혁신성이 높은 서비스보다 돈이 되는 서비스를 내놓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기업에서 핀테크 벤처기업의 수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시장의 우려를 사고 있다.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를 발굴하는 데 기여해야 할 혁신금융서비스가 대형 금융사와 빅테크(대형 핀테크 기업)의 새로운 수익 창출 창구로 전락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2020년 지정된 58건의 혁신금융서비스 중 중소 핀테크 기업의 서비스는 14건(24.1%)에 불과했다. 2019년 혁신금융서비스 77건 가운데 절반이 넘은 40건(51.9%)이 중소 핀테크 기업의 서비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같은 기간 은행의 비중은 5.2%에서 12.1%, 보험사는 3.9%에서 18.9%로 가파르게 커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할 때 기업의 규모를 기준으로 삼고 있지는 않다”며 “기업이 신청한 서비스 중 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다”고 말했다. 이 말을 역으로 돌려보면, 중소 핀테크 기업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줄어든 것은 아예 신청이 감소했기 때문이란 거다.

그러나 이것 자체로도 문제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으로 얻어가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중소 핀테크 업체가 많다는 방증일 수 있어서다. 남주하 서강대(경제학) 교수는 “혁신금융서비스 중 혁신 금융의 발전과 금융 소비자 보호 부분이 미흡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정부 주도의 금융 혁신이 대형금융사의 시장지배력을 인정하는 제한적인 혁신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혁신금융서비스 중복 지정 논란 여전

중소 핀테크 기업이 금융규제 샌드박스 이후에도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금융소비자학과) 교수는 “대형 금융사에서도 얼마든지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면서도 “금융시장의 혁신을 위해서는 중소 핀테크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대 4년이라는 금융규제 샌드박스 기간이 끝나면 사업을 중단해야 하는 중소 핀테크 기업이 적지 않다”며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관련법 개정을 통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2019년 금융위가 혁신금융서비스를 지정한 이후 기존에는 없던 다양한 서비스들이 시장에 출시됐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꿀 혁신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제는 혁신금융서비스의 문제점을 찾고 이를 보완할 정책이 필요한 때다. 혁신은 양보다 질이 중요한 법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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