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 왜 생겼나
이질노동 차별임금이 시작
임금 격차 줄이는 게 핵심
‘이질노동’ 다시 뜯어봐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상 그 원인이 같다.[사진=연합뉴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상 그 원인이 같다.[사진=연합뉴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원청과 하청. 이 분절적 개념이 생겨난 이유는 뭘까. 답은 경영자의 탐욕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경영자는 임금을 덜 주기 위해 비정규직과 하청이란 하위개념을 만들어냈고, 그들에겐 ‘조금 다른’ 업무를 부여했다. 이를 전문용어로 이질異質노동이라 부른다. 

흥미롭게도 이질노동 직군은 한국경제의 DNA가 완전히 바뀐 IMF 외환위기 이후에 급격히 늘어났다. 기업들은 위험하고, 어렵고, 더러운 일을 비정규직과 하청으로 넘기면서 자유로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임금을 낮추기 위해 ‘당신들은 정규직과 다른 일을  한다’면서 이질노동이란 올가미를 씌웠고, 조금씩 고착화했다. 

이는 심각한 문제를 동반했다. 애초에는 정규직이 하던 일을 ‘이질노동’이란 낯선 용어로 규정하고 ‘차별임금’을 지급하다 보니 정규직과 다를 바 없는 일(혹은 더 힘들고 위험한 일)을 하는데도 임금은 낮은 비정규직이 속출했다. 정규직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면서도 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다 숨지는 비정규직이 생겨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어쩌면 한국경제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노동시장의 분절은 ‘이질노동 차별임금’에서 시작됐다는 얘기다. 

이 문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더스쿠프가 ‘이질노동 차별임금’과 대척점에 있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에 접근해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말하고자 하는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는 한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보자. 

“동일가치노동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노동계의 이런 주장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는 일이 같은데, 임금을 달리 책정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아서다. 문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전제인 ‘동일가치노동’이 무엇이냐는 거다. 

사람을 일렬로 세워놓고 제품을 만드는 시스템이 아니라면 동일가치노동을 비교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숙련공과 비숙련공의 노동이 같을 수도 없다. [※참고 : 노동계나 언론에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임금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는 원청 정규직의 업무가 외주화하면서 임금 차별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동일임금에 관한 주장도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다. 따라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아니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관련법마저 오락가락한다는 거다. 대법원이 ‘동일가치노동과 동일임금의 원칙’을 상황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경우도 숱하다. 그래서인지 소송도 끊이지 않는다. 2020년 10월 법무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법무부가 정규직에만 가족수당ㆍ교통수당ㆍ명절 휴가비 등을 차별 지급하고 있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건 단적인 사례다. 

그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좀 더 명확하게 짚어볼 수는 없을까. 아울러 이 원칙이 실현 가능하긴 한 걸까. 김성희 고려대(노동문제연구소) 교수의 의견을 들어봤다. 

✚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란 뭔가.
“원래는 여성노동자의 차별적 임금 문제 때문에 이 원칙이 생겼다. 남녀고용평등법(제6조의2)에 이 원칙이 들어가 있는 이유다. 문제는 노동의 형태를 쉽게 단정할 수 없는 현실에선 이 원칙을 여성노동자에게만 한정할 수 없다는 거다.”

✚ 동일한 가치의 노동력을 제공하면 동일한 임금을 줘야 한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걸 다시 하나 짚고 가야 하는데, 그건 바로 ‘이질노동과 차별임금’이다.”

✚ 그게 무슨 말인가.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1987년 금융권의 예를 들어보자. 막상 법을 만들고 보니, 여직원이 가장 많은 곳이 은행이었다. 그러자 은행들은 창구를 분리했다. 말하자면 ‘이질노동’이 생겨난 거다. 금융권뿐만이 아니다. 제조업에선 사내 하청과 같은 간접고용이 생겨났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부터 정규직과 다른 코스의 ‘이질노동’ 직종과 직군이 급격히 늘어났다. 당연히 임금도 달라졌다.” 

✚ 기업들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지 않도록 노동 형태를 분리했다는 건가.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노동 형태를 분리한 건 사실이다. 차별임금을 지급하기 위해선 노동의 가치가 ‘이질적’이어야 하지 않았겠나. 그 이후 직군이 굉장히 복잡해졌고, ‘동일가치노동’의 기준도 보이지 않게 됐다.” 

✚ 기준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이 원칙이 나온 배경을 잘 따져보면 그렇다.”

✚ 자세히 말해 달라.
“애초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고 해도 차별은 있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숙련공과 비숙련공이 같은 일을 한다고 해서 같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면 누가 인정하겠는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문제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차별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관점에서 풀어봐야 한다. 받아들일 수준의 차별이라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논란도 나오지 않는다.”

김성희 교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노동계의 반성이 없이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김성희 교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노동계의 반성이 없이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 차별을 받아들이려면 그 기준이 명확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다. 독일의 노조를 예로 들어보겠다. 독일의 노조는 산별노조가 기본이다. 노사간 임금교섭 결과는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그런데 임금 결정 체계가 독특하다.”

✚ 어떻게 독특한가. 
“통합 서비스 노조에 속하는 독일의 ‘베르디(Ver.di)’의 경우, 교섭을 통해 임금 체계를 15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1등급으로 갈수록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비숙련 노동자이고, 15등급은 최고경영자(CEO)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동자들을 각각의 등급에 모두 끼워 넣고, 각 등급에 속한 이들은 거의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각 등급엔 비정규직이든 뭐든 구분하지 않는다.”

✚ 등급별 임금 격차가 크면 불만이 생길 텐데.
“그렇다. 하지만 격차가 크지 않다. 1등급 노동자라 할지라도 숙련공이 되면 최소한 7~8등급의 최저임금 수준에 오를 수 있다. 1등급 노동자와 15등급 CEO의 임금격차가 급격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독일인들이 굳이 대학을 가지 않고 숙련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독일에서도 민간기업은 다르다. 민간기업 CEO의 경우, 스톡옵션 등을 통해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독일의 민간기업에도 이른바 ‘베르디의 기조’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독일의 금속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중 육체노동자와 사무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거의 없다.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 간 임금 최대 격차도 1.6배 수준이다.

✚ 산별노조 교섭 결과가 개별기업에 확장 적용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적용하기 힘든 것 아닌가.
“전제조건이 있다. 등급으로 묶은 것처럼 동일가치노동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산별노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비정규직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노동계의 반성부터 필요하다는 건가.
“정규직 노조의 전향적인 역할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전제조건임에는 틀림없다.”

✚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당연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는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 아닌가. ‘동일가치노동’을 정교하게 차별화했기 때문에 한눈에 잘 안 들어온 것일 뿐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는 게 결코 다르지 않다.”

✚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정립하기 위해 필요한 건 뭐라고 보나. 
“무엇보다 외주화를 제한하고, 과도한 격차를 막을 임금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기간제법이나 파견법 등에 있는 ‘차별금지’ 원칙을 직종분리에 따른 ‘이질노동’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모든 ‘일하는 이들’이 직업별ㆍ산업별 노조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앞서 말한 ‘효력확장제도’도 도입해야 한다.”

✚ ‘이질노동’을 당연시할 게 아니라 ‘동일가치노동’인지 그렇지 않은지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렇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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