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기 당했는데…” 왜 내가 신청한 계좌만 정지 안 됐을까
“나도 사기 당했는데…” 왜 내가 신청한 계좌만 정지 안 됐을까
  • 강서구 기자
  • 호수 425
  • 승인 2021.01.27 1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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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지급정지 제도의 맹점
오락가락하는 계좌지급정지

최근 유행하는 신종 피싱인 레버리지 사기를 당한 두 사람이 있다. 사기를 당한 업체도 피해금을 입금한 은행도 같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피해금액을 돌려받기 위해 계좌지급정지까지 똑같이 신청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계좌지급정지에 성공한 사람은 운 좋게 돈을 돌려받았지만 지급정지에 실패한 사람은 돈을 떼일 상황에 처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계좌지급정지 제도의 허점을 살펴봤다.

피싱 범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계좌지급정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현숙(가명·52)씨와 이서정(가명·48)씨. 사는 곳도 나이도 다른 두 사람은 최근 같은 일로 곤욕을 치렀다. ‘레버리지 사기’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사기는 주식 투자를 빌미로 피해자의 돈을 편취하는 사기 행위를 말한다. 사기꾼들은 “투자금의 1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제공한다”는 말로 피해자를 유인해 유령법인 통장으로 돈을 받은 뒤 빼돌리는 수법을 쓴다. 먼저 정씨의 피해사례를 들어보자.

# 지난해 주식시장에 뛰어든 정씨는 10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스탁’ 팀장이라며 신원을 밝힌 사기꾼은 자신들을 정씨가 증권계좌를 개설한 A증권사의 협력업체라고 소개하면서 ‘설’을 풀어댔다. “우리 업체를 이용하면 투자금의 10배에 이르는 투자금을 빌려줍니다.” 자신이 가입한 증권사의 협력업체라는 말에 깜빡 속은 정씨는 5000만원을 ‘○○스탁’이 알려준 법인 통장으로 입금했다. 정씨가 돈을 보내는 데 사용한 계좌는 B은행의 것이었다.


# 이씨는 급등 종목을 추천해 준다는 명목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주식 리딩방’에 참여했다가 레버리지 사기를 당했다. 지난해 8월 이씨는 리딩방을 운영하는 ‘○○투자’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수법은 같았다. 증권사보다 조금 높은 0.3%의 수수료만 내면 투자금의 10배에 달하는 레버리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에 혹한 이씨는 ‘○○투자’가 가르쳐준 법인 통장으로 3000만원을 입금했다. 이씨가 돈을 보낼 때 이용한 계좌는 B은행의 것으로 정씨와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돈을 입금한 곳은 유령법인의 계좌였다. 경찰 수사 결과, 정씨가 돈을 입금한 ‘○○스탁’과 이씨가 돈을 건넨 ‘○○투자’는 한몸이었다. 그제야 레버리지 사기라는 사실을 눈치챈 정씨와 이씨는 돈을 돌려받기 위해 업체에 연락을 취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두 사람은 경찰에 신고하는 한편 은행 측엔 보이스피싱 범죄에 사용한 계좌의 지급을 정지하는 ‘계좌지급정지’를 신청했다.

기승 부리는 신종 피싱 범죄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계좌지급정지에 성공한 정씨는 5000만원을 돌려받았다. 레버리지 사기꾼으로부터 지급정지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돌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씨는 계좌지급정지에 실패했다. 그는 “경찰에서 관련 서류까지 받았지만 지급정지에 실패했다”며 “B은행은 투자사기는 지급정지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당국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내놓았다”고 털어놨다. 레버리지 사기를 당한 두 사람은 똑같이 B은행을 이용하고 있었는 데, 왜 결과가 달랐을까.

먼저 계좌지급정지 제도를 살펴보자. 계좌지급정지 제도는 보이스피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2011년 도입됐다. 그해 3월 정부는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자의 재산상 손실을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제정했다. 보이스피싱범이 돈을 인출하는 것을 막고 피해자를 신속하게 구제하겠다는 취지에서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효과는 의미가 있다. 계좌지급정지 건수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1년 1만7357건이었던 지급정지 건수는 2019년 7만8302건으로 4.5배가 됐다. 계좌지급정지는 피싱 피해를 막아주는 효과적인 도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계좌지급정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줄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정씨와 이씨의 사례처럼 같은 피해를 당해도 계좌지급정지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어떻게 된 일일까. 

첫째 문제는 계좌지급정지를 받아들이는 주체다. 먼저 법적 근거인 통신사기피해환급법 4조 1항의 내용을 보자. “금융회사는 계좌가 전기통신금융사기의 사기이용계좌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인정되면 즉시 해당 사기이용계좌의 전부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의심할 만한 사정’을 판단하는 주체가 은행·증권사 등 금융회사다. 계좌지급정지 신청을 받은 금융회사 직원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처리 결과가 달라진다는 얘기다.

계좌지급정지 제외 요건

실제로 이씨는 계좌지급정지를 신청할 때 “같은 B은행의 다른 지점을 이용해온 정씨는 똑같은 사건으로 계좌지급정지를 받았다”고 항변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씨가 거래해온 B은행 ○○지점장은 “정씨의 계좌지급정지를 받아들인 지점이 업무를 잘못 처리한 것”이라며 “투자사기는 계좌지급정지 대상이 아니라는 금융당국의 지침을 따라 지급정지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둘째 문제는 협소한 계좌지급정지 대상이다. 이 법에 따르면 ‘재화의 공급 또는 용역의 제공 등을 가장한 행위’는 계좌지급정지의 대상이 아니다. 예컨대, 중고거래를 가장한 물품(재화) 사기나 주식정보·레버리지 등을 제공하는 레버리지 사기는 이 법의 대상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한다. 레버리지 사기도 일종의 대출(10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적용대상이지 않느냐는 거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2조 제2항은 “대출의 제공·알선·중개를 가장한 행위는 계좌지급정지의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돈을 10배 부풀려서 빌려주겠다는 걸로 피해자를 속였다면 지급정지 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며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도 비슷한 논란이 발생해 대출 빙자 사기를 지급정지 대상으로 포함했다”며 “결국 법을 개정해 애매한 규정을 보완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레버리지를 용역으로 보느냐 대출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계좌지급정지 대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애매한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예외조항(다만, 재화를 공급하거나 용역을 제외하는 경우는 제외한다)을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박용철 서강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기통신금융사기범죄의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지금의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으로는 피해 구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과 금융업계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계좌지급 정지요건을 확대할 경우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017년 금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2016년 금융회사에 신청한 계좌지급정지 신청 중 허위로 신청한 건수는 6922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계좌지급정지 건수 17만672건의 4.0%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도박사이트를 이용하다 잃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계좌지급정지 제도를 악용한 사례도 있었다.

현행법상 재화의 공급이나 용역의 제공을 가장한 행위는 계좌지급정지 대상에서 제외된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허위 신고자의 처벌을 강화하면 이런 문제점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조새한 법무법인 자산 변호사는 “지급정지 신청을 허위로 했을 때 이를 처벌하는 규정을 강화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며 “허위로 지급정지를 신청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악용될 것을 우려해 지급정지 요건을 보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피싱 범죄의 피해를 키우는 일”이라며 “처벌 가능성을 알고도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할 일반인이 얼마나 되겠냐”고 꼬집었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 필요해

다행히 계좌지급정지 요건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월 23일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계좌지급정지 요건으로 ‘재화의 공급과 용역의 제공을 가장한 행위’를 포함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을 발의한 건 대표적 사례다. 최정미 레버리지박멸단장은 “신속한 계좌 지급정지는 레버리지 사기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사기꾼이 돈을 빼가고 나면 피해 구제가 어렵기 때문에 관련법을 빨리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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