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사 지연 배송도 판매자 탓
“판매자는 없고 고객만 있다” 지적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실효성 있을까

반품이 들어왔다. ‘옷 사이즈가 작다’는 이유였는데, 엉뚱하게도 그 제품을 판매한 오픈마켓 입점업체의 점수가 깎였다. 점수가 쌓이면 제품을 팔지 못하거나 영업을 할 수 없는 등 페널티를 받는다. 최근 들어 고객도, 오픈마켓도 무섭다고 하소연하는 입점업체가 부쩍 늘어난 이유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커머스 성장에 가려진 그림자를 취재했다. 

날로 높아지는 이커머스의 우월적 지위에 입점업체들의 근심이 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날로 높아지는 이커머스의 우월적 지위에 입점업체들의 근심이 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커머스 시장이 해마다 커지고 있다. 무선통신 기술이 발전하고 스마트폰 보급량이 가파르게 늘어난 결과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94조1857억원이었던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19년 135조3640억원으로 급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훌쩍 늘어난 지난해엔 거래액이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소셜커머스로 출발한 쿠팡·위메프·티몬의 몸집도 불어났다. 2019년 기준 쿠팡은 매출 7조1530억원, 위메프는 4653억원, 티몬 1787억원을 기록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 

이렇게 갈수록 커지는 시장이 소비자들 입장에선 흥미롭기만 하다. 비교할 수 있는 이커머스 플랫폼과 제품이 늘어날수록 더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면 판매자도 그럴까. 이커머스 입점업체의 실제 사례를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2년째 오픈마켓에서 제품을 판매 중인 정수호(가명)씨는 지인의 권유로 전자상거래 사업을 시작했다. 별도 온라인몰을 내기엔 경험이 부족하고, 여력도 되지 않아 오픈마켓에 입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정씨는 중국에서 헤어 액세서리를 수입해 쿠팡·티몬·네이버스토어 등에서 판매한다. 시스템에 따라 제품만 등록하면 되는 일이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매출이 늘어나는 만큼 스트레스도 쌓인다는 점이다. “사업을 하기 전엔 온라인으로 구매한 물건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왕복배송비가 아까워 그냥 사용하곤 했다.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봉투에 왕복배송비를 넣어 반품을 하곤 했는데, 사업을 해보니 나는 무척 훌륭한 소비자였더라.”

무슨 말일까. 정씨가 그간 겪은 일들을 들어보자. 얼마 전 소비자 A씨가 쿠팡에서 정씨가 판매 중인 헤어 액세서리를 2개 구매했다. 2개는 같은 제품이었는데, 며칠 후 해당 제품의 반품이 접수됐다. ‘소개자료와 다르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정택배업체를 통해 되돌아온 택배상자엔 헤어 액세서리 1개만 담겨 있었다.

정씨는 환불을 보류하고 쿠팡 판매자센터에 문의했다. “같은 제품 2개를 구매한 고객 A씨가 1개만 반품했다. ‘소개자료와 설명과 다르다’는 이유로 반품을 신청했는데, 1개만 반품한 걸 보면 ‘제품에 하자가 없었다’는 뜻이다. ‘설명이 다르다’는 건 환불 사유가 아니다. 이럴 때도 판매자가 왕복택배비를 부담하고 환불을 해줘야 하나.” 

한참 후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고객이 1개는 사용하길 원한다. 1개만 반품해줘라.” 정씨는 고객이 원하는 대로 환불을 해줬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환불을 신속하게 진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씨는 페널티를 받고 ‘판매자점수’도 깎였다. 

판매자점수는 쿠팡이 판매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쿠팡은 ‘주문이행’ ‘정시배송완료’ ‘24시간 내 답변’ 3가지 항목으로 판매자점수를 산정한다. 지난 7일 동안의 주문이행 여부, 지난 30일 동안의 정시배송 여부, 24시간 이내 고객문의 여부를 측정해 점수를 환산한다. 각 항목의 점수가 일정 기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주의 또는 경고 조치를 한다. 그런데 일정 기준이라는 게 주문이행 99점, 정시배송완료 99점, 24시간 내 답변 95점이다. 사실상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정씨의 경우처럼 주문이 취소되거나 환불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판매자점수가 깎인다. 정씨는 한번은 주문이행률이 목표보다 낮다는 이유로 ‘주의’ 메일을 받기도 했다. “쿠팡의 목표 주문이행률이 99.0%인데 내 주문이행률은 97.7%라고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계속 목표 수준에 미달할 경우 경고 단계로 변경될 수 있고, 이후 판매자격이 정지될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참고 : 주문이행률은 전체 주문 건 중 취소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배송을 완료한 주문의 비율을 뜻한다.] 

이런 판매자점수 탓에 실제로 판매 자격이 중지된 사례도 있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일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이 중지됐다. “정씨가 설정한 출고소요기간을 준수하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정씨는 억울했다. “원칙적으로 오후 4시 이전에 주문이 접수되면 당일 출고한다. 하지만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때라 택배사 물량이 많았는지 택배가 하루 늦게 도착했나 보더라. ‘2일’이라고 설정해놓은 기한을 지키지 못했다고 제품 판매 자격이 중지됐다.” 정씨는 배송이 늦어 판매중지에 걸린 해당 제품을 2주 동안 판매하지 못했다. 판매자가 제때 출고해도 택배사의 사정으로 배송이 지연되면 그 역시 판매자의 귀책사유라는 얘기다. 

쿠팡 관계자는 “출고소요기간은 판매자 스스로 정하게 돼 있다”며 “배송지연까지 예상해 기간을 정하면 된다”면서 현재의 시스템이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판매자들 입장은 다르다. 출고소요기간을 하루만 늘려도 매출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소연한다. 소비자들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배송되는 제품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오픈마켓 판매자들 사이에선 “어쩔 수 없다” “그냥 소비자가 해달라는 대로 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기정사실화돼 있다. 한 판매자는 “고객이 사이즈가 안 맞아 반품을 했는데도 판매자점수가 깎였다”며 “소비자에겐 최고의 서비스일진 모르겠지만 판매자 입장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책임으로 돌아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입법예고 했다.[사진=뉴시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입법예고 했다.[사진=뉴시스]

정씨도 점점 그런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다. “처음엔 이의 제기도 해봤다. 하지만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나보다 오래 이 일을 해왔고, 나보다 훨씬 많은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자에게 물어봐도 ‘그냥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의를 제기해봤자 득 될 게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런 문제점을 방지할 방법은 없을까.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가 강화되면서 입점업체에 대한 불공정행위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정책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업체 간 거래관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는 것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진 의문이다. 갑질을 당하는 건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을이기 때문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