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필순의 易之思之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은 지식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해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경제체제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 비해 그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산업의 뿌리를 약하게 만들고 비효율적 나눠먹기 구조를 심화시킨다.

▲ 서비스산업 발전을 등한시한 일본경제의 추락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정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을 국회에 요청했다. 별 반응이 없자 올 5월에 재청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12월 대선에 묻혀 이 정책은 힘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다. 법을 개정해 새로운 정책을 펴려 해도 국회에서 발목이 잡힌다. 정치권의 관심이 모두 대선에 쏠려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의료민영화 등 복잡한 문제가 있는 탓도 있지만 요즘 정치판을 보면 온통 인기 위주의 표심 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제시하는 경제정책은 색다르지 않다. 지엽적이고 위험하기만 하다.

반복적으로 주장하지만 지금의 산업경제 정책으로는 향후 우리나라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는 불가능하다. 자동차ㆍ반도체ㆍ조선ㆍ화학 등 제조업에서 수용 가능한 노동인력은 자동화와 고도화된 경영기법으로 한계점에 도달했다.

국내 제조업은 생산성 증가와 중국을 비롯한 후발국의 공급능력 확충에 따라 제조업 종사인구가 감소하고 있어,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보편화되고 있다. 반면 전 세계적으로 서비스 경제화가 진전되면서 서비스 산업의 고용 비중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광범위하고 막연한 서비스 산업을 거론하기 전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서 세탁소ㆍ요식업 등 자영업자 위주의 소비성 산업에 주력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가능한 기존의 경쟁력(제조ㆍ건설 등)에 기초를 두되 수출로 이어질 수 있는 종목을 발굴해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5년 우리나라를 방문해 “한국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한 서비스 분야를 개척해야 한다”며 “향후 한국 산업의 경쟁력은 서비스와 지식 수출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식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지식서비스 시장은 한미FTA를 계기로 완전히 개방됐다.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스스로의 경영판단 아래 국내진출을 할 수 있다.

한때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은 지식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해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경제체제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 비해 그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산업의 뿌리를 약하게 만들고 비효율적 나눠먹기 구조를 심화시킨다. 그토록 강했던 일본의 제조업이 서서히 몰락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로 풀이된다.

일본의 제조업 발달은 다른 선진국을 흉내 내는 데서 출발했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모양새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창조적 발전의 기회를 엿봐야 한다. 서비스산업의 발전이 그것이다.

특히 지식서비스 산업은 고학력 취업자 비율이 높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한 산업이다. 일례로 서비스 산업에서 사무전문직의 비율을 보면 교육서비스ㆍ사업서비스ㆍ보건 및 사회복지ㆍ오락문화ㆍ금융 및 보험 등 지식서비스 부문에서 지식인력의 비중이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제조업을 버리고 지식서비스업만육성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과거 성장경로는 제조업이었고,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 한필순 더 스쿠프 편집위원
우리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을 충분히 살려 제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또 하나의 성장동력인 지식서비스업을 통해 제조업과 동반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제조업의 성장을 기반으로 한 지식서비스업의 발전은 장기적으로 쌍두마차로 경제를 견인하는 구조로 과거에 비해 균형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됐다고 모든 문제가 한번에 풀리진 않을 것이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해서도 안 된다. 이제 제조ㆍ건설ㆍ유통 등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에게 국가의 장래를 맡길 수 없다. 지금 시점에서 경제시스템 개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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