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산 TV ‘찐가격’ 아는가
프로모션 비용 포함된 판매가
정상가격 가늠할 기준 있어야

국내 시장에선 유독 가전제품의 정상가를 알기 어렵다. 매장에 진열된 제품엔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실제로 그 가격에 판매되는 경우는 드물어서다. 각종 할인 혜택과 캐시백, 사은품을 감안하면 실제 판매가격은 뚝 떨어진다. 문제는 정상가를 알기 어렵다 보니 실제 판매가격이 할인된 금액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게 어렵다는 거다. 이는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소비를 막고 혼란을 야기할 공산이 크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오픈프라이스 제도의 잃어버린 20년을 취재했다.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된 제품엔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실제 그 가격에 팔리는 경우는 드물다.[사진=연합뉴스]
가전제품 매장에 전시된 제품엔 가격표가 붙어 있지만 실제 그 가격에 팔리는 경우는 드물다.[사진=연합뉴스]

“판매가는 1억6770만원입니다. 하지만 선착순 1명에겐 특가 1억원에 드립니다.” 지난해 10월 21일. 전날 출시된 LG전자 롤러블TV(제품명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의 판매가격을 문의하자, 돌아온 LG전자 베스트샵 판매사원의 대답이었다.

의아했다. LG전자가 롤러블TV 출시를 밝히며 공개한 출하가는 1억원. 그에 비해 1억6770만원이란 판매가는 너무 높았다. 물론 출하가는 제조사가 매긴 제품의 가치일 뿐, 실제 판매가를 정하는 건 유통사(최종 판매자)의 몫이다. 이를 감안하면 LG전자 베스트샵이 롤러블TV를 얼마에 팔든 문제될 건 없었다.[※참고 : LG전자 베스트샵은 LG전자의 자회사(지분 100%) 하이프라자가 운영하는 판매점이다.]

그로부터 석달이 흐른 올해 1월, 다시 찾은 LG전자 베스트샵에서 판매하고 있는 롤러블TV의 가격은 1억원으로 내려가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최첨단 기술의 총아로 꼽히며 세계의 이목을 끈 롤러블TV의 가치가 3개월 만에 뚝 떨어진 걸까. 그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상품엔 저마다 가격이 있고, 약간은 유동적이다. 신제품이 나오거나 할인행사를 하면 가격은 떨어진다. 같은 상품이라도 어디서 파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도 있다. 이런 가격의 변화와 차이를 소비자에게 알려주는 게 ‘가격표’다. 소비자들은 이를 합리적 소비의 지표로 삼는다.

그런데 가격표가 무용지물이라면 어떨까. 가령, 상품에 붙어 있는 가격표와 실제 판매가격이 판이하게 다르거나 판매가격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면 어떨까. 소비자의 선택이 합리적인 판단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국내 가전제품 시장이 그렇다. 

두가지 실제 사례를 보자. 지난 17일 서울에 있는 한 삼성디지털프라자 영업점을 찾은 김명희(가명ㆍ35)씨는 ▲TV(65인치)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등 4가지 제품을 선택해 가격을 확인했다. 상품에 붙어 있는 가격표대로라면 지불할 금액은 총 1392만원이었다. 하지만 판매사원이 내준 견적은 전혀 달랐다. 가격표보다 무려 360만원 낮은 1032만원이었다. 여기에 200만원이 훌쩍 넘는 의류관리기와 60만원 상당의 미니 냉장고까지 사은품으로 딸려왔다. 

심지어 판매사원이 추천한 대로 65인치 ‘QLED TV’를 75인치 ‘더 프레임 TV’로 바꾸면 가격표의 값은 1532만원으로 높아지지만 실제 판매가격은 1024만원으로 되레 떨어졌다.[※참고 : 삼성디지털프라자는 삼성전자의 자회사(지분 100%) 삼성전자판매㈜가 운영하는 판매점이다.]

 

1억6770만원이었던 롤러블TV 판매가는 어느새 1억원으로 조정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억6770만원이었던 롤러블TV 판매가는 어느새 1억원으로 조정됐다.[사진=더스쿠프 포토]

LG전자 베스트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품목은 같다. 가격표에 기재된 가격은 1285만원, 실제 판매금액은 918만원이었다. 367만원 더 저렴했다. 여기에 40만원만 더 내면 254만원 상당의 의류관리기도 함께 살 수 있었다.

왜 가격표와 실제 판매가격이 다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부적으로 운용되는 상시 프로모션 때문이다. 여기엔 제휴카드 할인과 혜택은 물론, 판매가의 일부를 되돌려 받는 캐시백 혜택도 제품별ㆍ품목별로 있다. 총 구매 금액대별로 받는 캐시백도 다르다. 이사를 하거나, 혼수라면 할인율이 더 붙는다. 그밖에도 각종 명목으로 붙는 할인과 캐시백, 사은품, 포인트 지급 프로모션이 숱하다. 

일반적인 할인행사와 다른 건 견적을 받기 전까진 어느 제품에 어떤 혜택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는 거다. 더구나 판매점은 견적서의 외부 유출을 일절 막고 있어 가격표와 실제 판매가격의 차이를 일반 소비자가 알긴 어렵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프로모션으로 제품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에겐 득이 아닌가. 수백만원 상당의 제품을 무료로 준다는 걸 마다할 소비자가 어디 있겠는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그렇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하지만 혹자의 주장대로 ‘소비자에게 득이 되려면’ 프로모션을 통해 가격이 ‘진짜’로 낮아졌어야 한다. 

그러려면 제품의 정상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걸 알려주는 판매업체는 없다.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는 가격표인데, 이 역시 비교 근거가 되지 못한다. 상시적으로 프로모션이 운영된다면 가격표는 소비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판매가의 의미를 갖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상시 진행되는 프로모션 때문에 판매가도 수시로 변동된다. LG전자 베스트샵 판매사원은 “제품 가격은 3일에 한번꼴로 바뀔 정도”라면서 “매주ㆍ매월 세부내용이 변경된 프로모션이 새로 진행되는 데다, 지점별 적용 기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오늘 견적가가 1000만원이었지만 다음주엔 1100만원으로 오를 수도, 900만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가 내린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일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이는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1999년 없어진 ‘권장소비자가격’의 폐단과 양상이 비슷해서다. 권장소비자가격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제조사가 제품에 표기한 가격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 판매가격에 비해 권장소비자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표기됐고, 판매자가 할인율을 대폭 높인 것처럼 소비자를 오도한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 대신에 도입된 제도가 ‘판매가격표시(오픈프라이스)’ 제도다. 오픈프라이스 제도에선 제조사가 아닌 유통사(최종판매자)가 가격을 정한다. 자율 경쟁을 유도하면 제품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을 거란 취지에서다. 

그런데도 제품의 정상가격을 알지 못한다면 오픈프라이스 역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이정희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오픈프라이스라고 해도 유통사가 정한 가격은 사실상 (권장소비자가격과 같은) 레퍼런스 프라이스가 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처음부터 레퍼런스 프라이스를 높게 책정해놓고 싸게 파는 것처럼 세일하는 건 권장소비자가격이나 마찬가지다. 레퍼런스 프라이스가 합리적인 가격이냐를 두고는 늘 의문이 따른다. 특히 가전제품처럼 과점 우려가 있는 시장에선 이런 부작용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애초에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할인해주면 소비자는 결국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이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가격에 한번 거품이 끼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당장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은 소비자가 지불한 금액은 제값일지 몰라도 한번 올라간 기준(권장) 가격에 시장은 금세 적응할 공산이 크다. 결국 가격은 더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짜’ 가격의 폐해를 막을 순 없을까. 이정희 교수는 “외국에선 제품의 정상가를 가늠할 수 있는 가격 비교 사이트나 블로그, 책자 등이 많은데 우리나라도 이런 체계가 잡혀야 한다”면서 “한국소비자원이나 공공기관에서 그런 역할을 맡아주면 좋은데,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가격 횡포와 소비자 기만을 막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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