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논란 IoT 시대의 난제
CRFID와 트리피드 프로젝트

“IoT 시장이 직면한 문제는 ‘사물을 무엇으로 구동할 것인가’다.” 제임스 마이어스 Arm 수석 엔지니어의 설명이다. 곧 모든 사물에 센서가 달릴 텐데, 센서마다 배터리를 탑재하면 전력 소모 부담이 큰 데다 디자인까지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배터리 없이도 구동할 수 있는 칩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다. Arm은 배터리 없이도 독립적으로 구동하는 칩을 개발하고 있다.

IoT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배터리 없이 구동되는 센서가 필요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IoT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배터리 없이 구동되는 센서가 필요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반도체 설계업체 Arm의 칩은 30년간 세계 곳곳에서 쓰였다. 센서, 스마트폰, 슈퍼컴퓨터 등에 1800억개의 칩을 공급했다. Arm의 칩은 효율성(와트당 성능)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지난해 초 Arm이 발표한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의 사례를 보자. 미국 국방성 연구소(DARPA)가 주도하는 저전력 센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개발된 MCU는 대기 상태에서 소모되는 전력이 10나노와트(nWㆍ10억 분의 1W)에 불과하다. 

앱을 활성화해도 20~60밀리와트(mW)만 소모할 뿐이다. 이렇게 Arm 등 반도체 설계업체들은 초저전력 센서기술을 상당한 수준까지 발전시켰다. 30밀리암페어시(mAHr) 용량의 작은 단추형 배터리 하나로 시스템 반도체에 340년 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 정도다.

사물인터넷(IoT)을 설계할 때 핵심 요소 중 하나가 ‘저전력’이란 점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발전이다. 사물과 사물을 연결할 때 전력 소비량을 줄여야 IoT를 제대로 구동할 수 있다. 그런데도 Arm 등 반도체 설계업체들엔 고민이 있었다. 센서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배터리였다. 아무리 초전력 센서를 만들어도 배터리가 놓인 환경에 따라 전력 소비량이 달라졌다. 

배터리의 성능과 크기가 제각각이라는 점도 문제였다. 배터리가 탑재되는 제품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도 부담이다. 소재에 사용되는 광물 가격 일부도 상승하는 추세다. 

Arm을 비롯한 반도체 설계업체들이 ‘배터리 없이 구동되는 센서’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rm이 추진 중인 실험의 이름은 ‘프로젝트 트리피드’인데, 골자는 배터리로부터 자유로운 칩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시중엔 배터리 없이 구동되는 센서가 출시돼 있다. 태양광 저전력 블루투스 비콘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개당 가격이 20달러 안팎으로 지나치게 비싸다. Arm이 ‘프로젝트 트리피드’를 추진하면서 값이 저렴한 전자태그(RFID)에 주목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RFID 기술 작동방식은 다음과 같다. RFID 태그에 입력된 가격, 요리법, 의료기록 등 정보를 무선주파수를 통해 판독기가 읽어낸다. 가령, 버스카드를 대기만 하면 판독기가 읽어내는 식이다. 

당연히 RFID는 배터리가 필요 없다. RFID 태그를 인식하는 판독기를 통해 전력을 얻을 수 있어서다. 버스카드에 배터리가 없다는 걸 떠올리면 쉽다. 관건은 판독기 없이도 RFID를 구동할 수 있느냐였다. 그래서 Arm은 판독기 없어도 자체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배터리 없는 ‘컴퓨테이셔널 RFID(CRFID)’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Arm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배터리 없는 CRFID가 구동되려면 너무 작아서 무시되거나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서 전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가령 판독기에서 자연적으로 방출되는 미세한 무선 주파수 에너지를 활용하는 식이다. 이 에너지를 CR FID가 흡수해 전력으로 만들면 배터리와 전선 없이도 작동할 수 있다.” 

다만, 이 기술을 현실에 옮기기 위해선 CRFID의 소모전력이 현저히 적어야 한다. Arm 트리피드 개발진이 1마이크로와트(uW)의 전력으로도 구동이 가능한 CRFID를 개발 중인 이유다. 1마이크로와트는 100만분의 1와트에 불과하다. 아울러 개발진은 인터미턴트 컴퓨팅(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를 유지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 분야에서 수년간 경험을 쌓아온 사우샘프턴 대학교와 함께 협업하고 있다.

자, 배터리 없이도 구동되는 CRFID가 곳곳에 깔린 미래를 상상해보자. 부패하기 쉬운 식품을 포장할 때 빛과 온도를 책정할 수 있는 CRFID를 탑재하면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줄어든다. 식품 보관을 잘못하다가 탈이 날 정도로 제품이 썩으면 바로 알람을 울려주기 때문이다. 

‘스마트 운동화’도 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깔창에 내장된 CRFID를 통해 얻은 데이터로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걸음걸이를 조언하는 똑똑한 운동화다. 내가 오늘 얼마큼 움직였고, 또 얼마나 더 뛰면 체중을 뺄 수 있는지를 알려줄 수도 있다. 스마트 운동화를 버릴 때, 깔창에 있는 CRFID만 빼서 다른 운동화에 넣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배터리 없는 IoT 기기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Arm 트리피드 프로젝트가 선사할 흥미로운 미래를 기대해보자.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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