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 왜 저평가 받나
분할과 합병에 숨은 꼼수
오너리스크 줄여야 정상 평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주식시장에서 기업들의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할인된다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자는 남북 대치상황이 원인이라고 꼬집기도 하지만, 사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바로 오너 리스크다. 오너의 기업 분할이나 합병 결정으로 순식간에 주가가 떨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바로잡을 방법은 없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기업 분할·합병에 숨은 오너리스크를 취재했다. 

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확대하거나 승계할 목적으로 분할과 합병이 이뤄지는 경우는 흔하다.[사진=뉴시스]
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확대하거나 승계할 목적으로 분할과 합병이 이뤄지는 경우는 흔하다.[사진=뉴시스]

국내 주식시장이 저평가됐다는 건 어제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다. 국내 주식시장은 주가수익비율(PERㆍ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수치)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PER이 높으면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의미이고, PER이 낮으면 그 반대란 얘기다. 올해 초 한국거래소의 ‘G20 주요국의 증시 평가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12개월 선행 PER은 15.4배였다. 미국 23.7배, 일본 23.6배, 중국 16.4배, 독일 16.3배보다 낮다. 

주당순자산가치(PBR)가 1배도 되지 않는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참고 : PBR은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수치다. 주가가 순자산(자본금+자본잉여금+이익잉여금)보다 몇배로 거래되는지를 보여준다. PBR이 1배 이하이면 기업이 보유한 자산보다도 주가가 낮다는 의미다.] 물론 적자기업이거나 사양산업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익을 잘 내는 알짜기업들조차 PBR이 낮은 건 이해하기 힘들다.

일부에선 이런 저평가가 남북 대치상황에 따른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오너 경영’에 따른 리스크다. 내가 투자한 기업의 가치가 오너의 결정으로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주식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란 거다. 그 수단은 바로 분할과 합병이다. 

분할은 물적분할과 인적분할로 나뉜다. 물적분할은 모기업이 특정 사업부를 신설기업으로 떼어내고, 그 지분의 100%를 모기업이 소유하는 거다. 이로써 모기업과 신설기업은 수직적인 관계가 된다. 모기업이 지분을 100% 갖기 때문에 기업가치에는 큰 변화가 없다. 모기업 주주들에게도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반 주주들이 물적분할을 반대하는 경우가 꽤 많다. 모기업의 핵심 사업을 물적분할해서 상장하거나 증자하면 핵심 사업이 모기업에 있을 때와는 달리 기존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서다. 신설기업의 주주가 바뀌기 때문이다. 지난해 LG화학이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분할했을 때 주주들이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인적분할은 신설기업의 지분을 모기업의 지분 비율에 따라 일정하게 나눠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주주의 구성원은 바뀌지 않고, 신설기업만 수평적으로 나눠진다. 인적분할이 이뤄지면 신설기업은 별도 기업이 되기 때문에 곧바로 상장할 수 있다. 오너는 신설기업의 주식을 모기업의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전체적인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어 지주회사로 전환할 때 유용하다. 

합병은 말 그대로 두 개의 기업을 합치는 거다. 전혀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인수한 후, 모기업의 사업부를 분할해 합칠 수도 있고, 모기업을 인수한 기업과 합칠 수도 있다. 방법은 다양하다. 

사실 기업의 분할이나 합병은 다반사다. 시장 환경이 바뀌어서 사업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으면 정리해야 한다. 사업 분야가 너무 방대하다면 분할해서 전문성을 높이거나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신규 사업에 빠르게 진출하려면 인수도 하고 합병도 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가치가 올라가고, 주주에게도 좋다. 

문제는 기업가치 상승에 별 도움을 주지 않고, 오로지 경영권 강화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업 분할이나 합병이 많다는 점이다. 이유 없이 기업을 분할해 일감을 몰아주고 경영권 승계의 발판으로 삼는가 하면 오너의 소유 지분이 더 많은 기업으로 합병을 진행해 돈 한 푼 안 들이고 지배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중요한 건 이런 분할이나 합병이 때로는 일반 주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는 점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삼성물산 주주들이 크게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기업 승계를 위해 오너들이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 여기거나 경영의 한 기법으로 받아들인다. 대기업의 전유물도 아니다. 중견ㆍ중소기업도 대기업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써 먹기 때문이다. 

필자가 애널리스트로 있을 때 겪은 일화가 있다. 코스닥에 상장한 소형 IT업체 얘기다. 그 기업에 탐방을 가면 담당 임원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오너의 지분이 너무 낮아 안정적인 경영이 어렵다. 오너의 지분을 늘려야겠는데 좋은 방법이 없겠는가.” 이 기업 오너의 지분은 10%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너는 자신의 돈을 한 푼도 안 들이고, 지분을 40%까지 늘렸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재편한 덕분이었다. 당연히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오너의 지배력이 크게 강화된 만큼 일반 주주들의 지배력은 크게 약화됐다. 

이처럼 오너의 이해관계에 따라 내가 가진 주식이 언제든지 저평가될 수 있다면 기업의 주가는 결코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분할과 합병이 당초의 목적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들 방법은 없을까. 

구글이나 애플 등은 모기업이든 자회사든 한곳만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사진=뉴시스]
구글이나 애플 등은 모기업이든 자회사든 한곳만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다.[사진=뉴시스]

우선 법으로 지주회사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의 지분율을 크게 높여야 한다. 그래야 무분별하게 회사를 분할하고 합병하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높이는 꼼수를 막을 수 있다. 자회사를 책임감 있게 경영하도록 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지난해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상장 자회사는 20%, 비상장 자회사는 30%의 지분을 보유하도록 했지만 좀 더 높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또 하나는 모기업이든 자회사든 한 기업만 주식시장 상장을 허용하는 거다. 이렇게 하면 오너가 분할과 합병을 경영권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다. 혹자는 이런 게 현실화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해외에선 흔한 일이다. 우리가 잘 아는 기업인 알파벳(구글 지주회사), 애플 등은 한 회사만 상장돼 있고, 대부분 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상장은 한군데만 허용해야

결국 자회사의 모든 기업가치가 상장사 한곳으로 집중되고, 따라서 자회사 가치가 깎일 이유가 없다. 주가를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거다. 무분별하고 필요 없는 유상증자도 줄일 수 있다. 자회사에 자금이 필요하면 증시에 상장된 모기업의 증자를 통해 지원하면 그만이다. 

오너가 상장회사 지분만 보유하면 핵심사업을 분리하는 경우도 줄어든다. 핵심사업을 분리하면 주가가 하락해 경영권도 타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오히려 중요한 사업이나 자산을 상장사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오너와 주주들의 목적도 같아질 수 있을 것이다.  

글=정우철 바른투자자문 대표
www.barunib.com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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