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중고거래 뜨는데
폐업 매물 사는 이 없어

코로나19로 한국 자영업자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보조금으로도 속수무책입니다. 이런 자영업자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은 곳이 바로 중고거래의 메카인 황학동 중고거리입니다. 폐업 가게가 늘어서인지 이곳엔 ‘새것 같은 중고 매물’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문제는 중고시장에서 알짜로 불리는 매물마저 팔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휑한 황학동 중고거리를 가봤습니다.

황학동 중고거리에 주인을 기다리는 중고들이 쌓여있다.[사진=뉴시스]
황학동 중고거리에 주인을 기다리는 중고들이 쌓여있다.[사진=뉴시스]

서울 중구 신당역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뒤편으로 몇걸음만 옮기면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냉장고부터 대형 라디에이터, 스테인리스 선반에 횟집 수족관까지 갖가지 전자제품과 가구들이 골목마다 즐비합니다.

그 뒤쪽 블록은 주방거리인데, 이곳에도 볼거리가 많습니다. 가게마다 스테인리스 냄비가 켜켜이 쌓여있고, 음식점에서 볼 법한 은색 수저통과 국자가 줄줄이 진열돼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새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이곳은 중고물품의 ‘성지’로 꼽히는 황학동 중고거리입니다.

골동품부터 최신 전자기기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기자가 찾은 곳은 주방거리와 가구거리입니다. 두 거리가 전체 중고거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거리는 가구와 주방기구를 잔뜩 쌓아놓은 가게들로 빼곡합니다.

이들 가게는 ‘폐업철거 전문업체’로, 폐업한 식당의 물건을 싼값에 매입한 뒤 예비 창업자들에게 되파는 식으로 이윤을 남깁니다. 황학동 중고거리에 가보면 요식업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그런데 1월 25일 오후 2시에 찾은 황학동 가구거리는 한산했습니다. 골목마다 가구가 가득 차 있었지만 찾는 손님은 드물었습니다. 전시 공간이 부족했는지, 길가에 스테인리스 선반을 쌓아놓은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20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명희(가명·52)씨는 “폐업한 가게 30곳을 얼마 전에 돌고 왔다”면서 “그때 받아놨던 물건들이 아직 안 나가고 이렇게 쌓여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가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냉장고·싱크대를 산처럼 쌓아놓은 가게를 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루에 10곳이 넘는 폐업 가게를 방문한 적도 있다는 김학수(가명·62)씨는 “더 이상 물건 들여놓을 공간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새는 평소보다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매물을 받아요. 폐업하는 가게가 너무 많거든요. 가게가 10곳이 생기면 그중 9곳은 망하는 것 같아요. 요즘 같은 때 누가 음식점을 차리려고 하겠어요.”

김씨의 말대로 최근 문을 닫는 음식점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에 휘말린 탓일 겁니다. 그 때문인지 관련 요식업 종사자도 감소했습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숙박 및 음식점업’ 취업자는 202만7000명(2020년 12월 기준)으로 전년 동기(234만명) 대비 13.4%나 줄었습니다.

매물이 넘치자 중고 가격도 뚝 떨어졌습니다. 카페용 중고품을 유통하는 황시환(가명·52)씨는 “100만원짜리 중고 커피머신이 8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면서 “예전 같았으면 앞다퉈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섰을 텐데 지금은 파리만 날린다”고 말했습니다. 황씨의 창고엔 커피콩을 가는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추출기기 등 새것처럼 보이는 기기들이 가득했습니다. 황씨는 “창업 1년도 안 돼서 폐업하는 카페가 많아 전부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답했습니다.

휑한 중고거리

냉난방기를 주로 판매하는 이승주(가명·60)씨는 월 200만원이 넘는 임차료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2층 창고에 에어컨이 빼곡하게 들어찬 탓에 매장 크기를 줄이는 게 여의치 않은 탓입니다.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이씨 가게를 찾는 손님은 하루에 많아야 1~2명 정도입니다. 건너편 가게의 한 사장님은 “2년 전만 해도 황학동 거리가 지금 같지 않았다”면서 “그땐 물건을 실어가려는 용달차로 골목길이 꽉 막혔는데 지금은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거리를 나와 중앙시장에서 꽈배기를 팔고 있는 한 가게를 찾았습니다. 폐업철거 전문업체 사장님들과 친분이 두텁다는 김미희(가명·42)씨는 “요새 대부분의 점포들이 그렇듯 중고거리의 가게들도 월세만 내면서 버티고 있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중고거리 사장님들도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엔 주방거리를 찾았습니다. 업소용 주방기기를 판매하는 박항선(가명·59)씨는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요새 잘나간다는 중고거래 앱에 물건을 올려보기도 했지만, 연락은 한통도 오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박씨가 사용했다는 앱은 온라인 중고거래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당근마켓’입니다. 한달에 1075만명(아이지에이웍스· 2020년 9월 기준)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가 압도적입니다. [※참고 : 번개장터의 이용자 수는 월 207만명입니다. 당근마켓의 인기를 실감케 하는 통계입니다.]

당근마켓의 인기로도 알 수 있듯 온라인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최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업계 추정치에 따르면 2010년 5조원에 불과했던 중고거래 시장 규모가 지난해 20조원에 달했을 정도입니다(중고차 시장 제외).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중고거래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침체된 황학동 중고거리의 풍경과는 사뭇 대조적입니다.

이젠 황학동 중고거리도 온라인 중고거래 앱과 경쟁해야 할 판입니다. 일부 폐업한 자영업자들이 한푼이라도 더 비싼 값에 물건을 팔기 위해 중고거래 앱에 물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중고거래 앱에 접속해 보면 ‘폐업합니다’는 제목과 함께 헬스기기부터 주방기기, 가구 등 다양한 업소용품을 올리는 판매자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업소용 중고제품의 판매량은 신통치 않습니다. 중고거래 앱 헬로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3·4분기에 ‘폐업’ ‘가게정리’ 키워드로 등록된 중고제품은 전년 동기 대비 115%나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등록된 폐업 중고제품 중 실제 판매가 완료된 제품은 전체의 18%에 불과했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업소용 제품의 수요가 높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온라인 중고거래는 뜨는데…

다시 황학동 중고거리로 돌아가 볼까요? 골목을 돌아본 지 2시간 만에 값을 흥정하고 있는 구매자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업소용 수저통 가격을 알아보러 왔다는 구매자는 “음식점 창업을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모를까 당장 가게를 열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오후 5시.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7시가 넘어도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다”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가게 사장님들마저 자리를 뜨자 안 그래도 손님이 없던 황학동 중고거리가 더 적막해졌습니다. 중고거리를 나오기 전, 용달차에 시동을 거는 한 사장님에게 행선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철거 요청을 한 횟집에 가는 길”이라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빈 차로 올 가능성이 높아요. 폐업 가게 사장님은 물건값이라도 비싸게 받고 싶은 심정일 텐데 우린 조금이라도 더 싸게 매물을 사야 하니까요. 요새 이런 식으로 허탕을 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어쩌겠어요. 그래도 가 봐야죠.”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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