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두명 중 한명은 ‘이음카드’
이음카드 활용한 확장형 플랫폼

지역화폐 발행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그만큼 제대로 된 정책 평가가 필요하다. 인천시가 운영 중인 지역화폐 ‘이음카드’는 평가 대상으로 적합하다. 전국에 있는 지역화폐 중 가장 높은 실적을 기록했고, 이 때문에 많은 지자체가 이음카드를 롤모델로 삼고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인천의 작은 골목에서 피어나는 ‘이음카드 생태계’를 들여다봤다.

인천지역 곳곳에선 이음카드 가맹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인천지역 곳곳에선 이음카드 가맹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인천 2호선 검단사거리역 1번 출구 앞, 인천광역시 서구 마전동 일대. 동네를 대표하는 먹자골목이다. 지하철 출구와 종합병원, 종다리공원에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상권이 형성돼 있다. 검단사거리역은 환승역이 아닌데도 인천 2호선의 전체 수요 2위(2019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주거밀집 지역이다. 

1월 25일 오후 5시, 상권은 ‘저녁장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매장 대부분은 출입구와 쇼윈도에 생소한 스티커를 붙여놨다. ‘서로이음 10% 캐시백+연말소득공제 30%’. 이음카드의 가맹점임을 알리는 홍보물이다. 

이음카드는 인천시가 운영하는 직불카드 형태의 지역화폐다. 2018년 8월 처음 출범했는데, 사용방법은 간단하다. 스마트폰에 이음카드 전용앱을 설치한 뒤, 현금을 충전하면 일반 체크카드처럼 사용할 수 있다. 충전도 앱에서 한다. 은행계좌와 연동돼 그때그때 충전해도 되고, 매달 정해진 날짜에 일정 금액을 충전해도 된다. 일정 금액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충전하는 방식도 있다. 가입자가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 

먹자골목 상점 대부분이 ‘이음카드 가맹점’인 건 지자체가 정책사업을 밀어붙였기 때문은 아니다. 2020년 말 기준 이음카드의 가입자는 138만명이다. 인천시 전체 인구가 294만여명이니, 시민 2명 중 1명은 이음카드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은 지역 골목상권엔 지역화폐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코로나19로 고통을 겪은 지역 골목상권엔 지역화폐가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전국에서 발행 중인 지역화폐 중 최대의 성과다. 결제액도 몰라보게 늘어났다. 이음카드 결제액은 지난해 기준 총 2조8620억원이다. 2019년 결제액(1조5461억원)보다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음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검단사거리 상권에서 이음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디저트카페에서 손님이 분홍색 이음카드를 꺼내자, 직원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 결제했다. 카페 직원의 말을 들어보자. “고객 10명 중 3명은 이음카드를 건네는 것 같다. 처음엔 카드사에서 만든 것 같지 않은 아기자기한 디자인 때문에 낯설었다. 하지만 2019년부터 이음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가 부쩍 늘더니 지금은 대중적인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음카드가 대중성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인천지역 청소년들 사이에선 이음카드의 줄임말인 ‘이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관官이 주도하는 정책이면 청소년은 시큰둥하기 마련인데, 호응도가 높다. 인천시가 교육청과 협업을 통해 지역 내 중ㆍ고등학생 학생증을 이음카드로 대체한 덕분이다. 

김이수(가명ㆍ15) 학생은 “부모님이 직접 앱으로 관리할 수 있어 용돈카드로 쓰기에도 좋고, 교통카드 기능도 탑재돼 지역 내 많은 학생이 쓰고 있다”면서 “혜택이 많다 보니 PC방을 가거나 간식을 먹을 땐 주로 ‘이카’로 결제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음카드의 최대 무기는 막대한 캐시백 혜택이다. 인천시는 2019년 4월부터 이음카드에 6.0%의 캐시백 혜택을 적용했다. 1만원을 결제했다면 600원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돌려준 셈이다. 여기에 자치구별로 캐시백 혜택을 추가했다. 가령, 서구의 경우 4.0%포인트를 더 얹었다. 서구 시민이 서구 식당에서 결제할 경우, 결제액의 10.0%를 돌려받았다는 얘기다.

캐시백 규모는 코로나19 국면을 거치면서 더 커졌다. 침체한 지역소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지자체가 혜택을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부턴 인천의 모든 지역에 10.0%(월 결제액 50만원 이하 기준)의 캐시백이 적용됐고, ‘혜택이 쏠쏠하다’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가입자가 늘어났다. 놀라운 선순환이었다. 

이 때문인지 이음카드는 긁을 곳도 많다. 17만5000여개 점포가 가맹점인데, 인천시 전체 점포의 99.8%를 차지한다. 거의 모든 매장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인천에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아울렛 등은 가맹점이 될 수 없다. 소상공인 업종으로 소비를 유도해 ‘지역경제의 모세혈관’으로 꼽히는 골목상권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한 장치다. 

인천 지역의 공무원인 장현식(가명ㆍ38)씨의 설명을 들어보자. “몇년 전 윗선에서 온누리상품권을 구매하라고 장려해 산 적이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뜻에는 공감했지만 막상 사고 나니 쓸 기회가 없어 현금으로 바꿔 소비했다. 종이 상품권은 ‘깡’이 수월했기 때문이다. 이음카드가 처음 나왔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던 이유다. 카드를 받아두곤 안 쓸 줄 알았는데, 10% 캐시백 혜택이 궁금해 한번은 쓰게 되더라. 이후론 1대 1 비중으로 신용카드와 섞어서 결제하게 됐다. 지역 커뮤니티에선 가계부를 알뜰하게 관리하는 묘수로 꼽히고 있다.”

이음카드 정책을 자문했던 양준호 인천대(경제학) 교수는 이음카드의 성장 비결로 ‘확장성’을 꼽았다. “이음카드를 신청하고 내려 받은 앱에선 지역화폐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이를 매개로 숱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음카드는 지역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인천이음’ 앱은 이음카드의 실적과 캐시백 혜택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었다. ‘배달서구(공공배달 서비스)’ ‘서로도움(이음 활용 기부 플랫폼)’ ‘인천e몰(인천시 전용 온라인 쇼핑몰)’ ‘냠냠서구몰(인천 서구 식료품 쇼핑몰)’ ‘공유경제몰(인천지역 사회적기업 전용 쇼핑몰)’ 등이다. 

특히 ‘배달서구’의 경우 매달 5만~8만건의 주문을 접수받고 있다. 인천시 서구 지역에서 발생하는 전체 배달주문 건수가 60만건임을 감안하면 이 서비스의 점유율은 10% 내외인 셈이다. 공공 배달서비스가 민간 배달사업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얘기다. 배달 수수료가 민간기업보다 적은 반면 캐시백 혜택은 그대로 적용한 덕분이다. 

물론 이음카드의 승승장구가 계속되리라 장담하긴 어렵다. 언급했듯 이음카드의 가장 큰 무기는 캐시백 혜택인데, 정부와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지속가능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음카드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캐시백 혜택이 줄어들면 계속 쓸지 의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양준호 교수는 “결제액과 가입자가 늘어났다곤 하지만 지역화폐 생태계는 아직 불완전하고 단점도 명확하다”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세금 지원 없이도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대안 화폐로 진화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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