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린생활시설 왜 시끄러울까

집은 집인데 집이 아니다. 전입신고는 가능하지만 취사시설을 붙여선 안 된다. 전입신고를 받아주는 지자체는 ‘살면 안 되는 곳’이라면서 취사시설을 떼내 원상복구하라고 명한다. 원상복구를 하지 않으면 매년 수백만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을 납부해야 한다. 흔히 ‘근생’이라 불리는 근린생활시설엔 이렇게 모순矛盾이 가득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고, 해결책은 없을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근생빌라에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봤다. 

근린생활시설에 취사시설을 만들어 주택처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분양 회사, 공인중개사나 공무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근린생활시설에 취사시설을 만들어 주택처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분양 회사, 공인중개사나 공무원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다주택자들에게는 근생 빌라가 좋은 재테크 수단일지 모르나 이 집 한 채 있는 서민들은 많이 힘이 드네요. 엉뚱하게 피해 보는 실거주 서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이 상태였는데 어떻게 원상복구를 하라는지 모르겠어요. 주거할 곳을 찾기 위해 부동산을 찾아갔고 거기서 소개받은 물건입니다.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더스쿠프(The SCOOP)가 지난 1월 초 보도한 ‘주택인 줄 알고 입주했더니… 집 아닌 집에 사는 청년들의 한숨(통권 422호)’이란 제목의 기사에 따라붙은 댓글들이다. ‘내집 마련’이란 꿈을 품고 주택을 샀는데 알고 보니 근린생활시설이어서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들의 한탄이었다. 

근린생활시설은 주거지역에서 상업 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물이다(1979년 도입). 근린생활시설이 탄생하기 전엔 세탁소용 건물에는 세탁소만 운영할 수 있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려면 허가를 새로 받아야 했다.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주거지역에 필요한 가게들을 한 종류로 묶어 입점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바로 근린생활시설이다. 주거지역에도 들어갈 수 있는 상업시설이다 보니 1층에는 상가나 근린생활시설이 들어가고 고층엔 공동주택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근린생활시설은 변질되기 시작했다. 경제 논리 때문이었다. 건축법에 따르면 공동주택은 1세대당 1대의 주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 1층에 2세대씩 4층짜리 공동주택을 만든다면 이 건물에는 총 8대의 주차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4층 중 1ㆍ2층을 근린생활시설로 만들면 사정이 달라진다. 근린생활시설은 면적 200㎡(약 60평)당 1대의 주차공간만 마련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1ㆍ2층을 근린생활시설, 3ㆍ4층을 공동주택으로 등록한다면 주차장이 모자라도 집을 지을 수 있는 셈이다. 물론 근린생활시설을 목적대로 가게로 활용한다면 상관없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람들은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처럼 만들고 취사시설을 붙여 집으로 팔기 시작했다. 눈속임을 하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가령, 4층짜리 건물을 지은 건축주는 취사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채로 지자체에 사용허가신청을 한다. 취사시설이 없다는 걸 확인한 지자체는 ‘사용허가’를 내준다. 건축주는 허가를 받고 1ㆍ2층의 근린생활시설에 취사시설을 설치하고 ‘분양 현수막’을 건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깔끔하게 설치된 주방과 욕실을 보고 ‘문제없는 집’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분양이 끝나면 건물 한쪽에 있던 ‘분양사무소’는 문을 닫고 사라진다. 그 이후 지자체 단속 과정에서 ‘위반건축물’이란 사실이 적발되면 이행강제금 부담은 건축주가 아닌 집주인이 떠안는다. 

다행히 2014년께 정부가 이 문제를 인지했다.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 위반건축물 딱지를 뗄 수 있도록 ‘양성화’ 과정을 밟았다. 대상은 2012년 12월 31일 이전에 준공된 주거용 건축물 중 전용면적 85㎡ 이하인 다세대 주택 등이었다. 2014년 1월 17일부터 2015년 1월 16일까지 신청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전국 2만6924건의 양성화가 이뤄졌다. 전체 적용 대상 중 94.8%였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었다. ‘위반건축물’의 퇴로를 열어줬던 정부가 입구를 틀어막지 않은 탓에 위반건축물은 또 생겨났다. 2015년 1월 16일 이후 근린생활시설은 계속해서 사용허가를 받았고, 주택으로 둔갑했으며, 그 집엔 또다시 입주자가 생겼다. 물이 새고 있는데 고여 있는 물만 퍼내고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결과였다. 근린생활시설에 사는 사람들이 더스쿠프의 기사에 강하게 반응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1월 24일 일요일 오전. 인천에서 실제 거주자만 가입할 수 있는 ‘다세대 근생빌라 피해자모임’ 회원 4명을 만났다. 이들은 2012년, 2015년, 2016년에 인천 남동구ㆍ미추홀구에서 ‘근생빌라’를 매입한 사람들이었다.[※참고 : 근생빌라를 매입한 계기와 과정이 4명 모두 비슷해 아래 1문1답에선 답변을 개인별로 구분하지 않았다.]

✚ 어떻게 근생 빌라를 사게 된 건가.
“알고 지내던 공인중개사가 소개하거나 빌라에 ‘분양 현수막’이 붙어 있어서 찾아갔다.”

✚ 근생이라는 사실을 몰랐나.
“공인중개사나 분양사무소 직원이 ‘근생’이란 설명 정도는 해줬다. 혹시 몰라 건축물대장도 확인했더니 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이라고 돼있었다.”

✚ 중개사나 분양사무소에서는 뭐라고 했나.
“오피스텔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다만, 취득세가 일반주택보다 비싸니 자신들이 같은 건물에 있는 공동주택보다 1000만원을 저렴하게 분양한다고도 했다. 어떤 근린생활시설은 그런 가격 할인마저 없었다. 같은 건물에 있는 공동주택과 가격이 같았고 큰 차이가 없다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피해자모임 회원들은 현재 살고 있는 근생빌라의 사진을 보여줬다. 7층이라는 것만 빼면 일반 다세대 주택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부도 일반주택과 다른 점을 찾기 어려웠다. 주방도, 거실도 다세대 주택과 똑같았다. 겉모습만으론 일반인이 근린생활시설과 다세대주택을 구분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근린생활시설은 어느 순간부터 ‘꼼수’ 주택이 됐다.[사진=연합뉴스]
근린생활시설은 어느 순간부터 ‘꼼수’ 주택이 됐다.[사진=연합뉴스]

✚ 의심은 안 했나.
“분양사무소 직원들이 이런 유형의 집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신축 빌라로 내집 마련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설명도 해줬다. 사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다.”

✚ 사는 데 이상이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다른 주택처럼 전입신고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중에 이사해야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다고 했다.”

✚ 전입신고는 문제없이 이뤄졌나.
“집을 사고 나서 주민센터에 가서 전입신고를 했다. 이상한 건 없었다. 정상적으로 전입신고가 됐다.”

✚ 공무원이 근린생활시설은 주택이 아니라고 다시 말해주지 않았나.
“아무 설명도 없었다. 누군가가 말해줬다면 근생빌라를 사지 않았을 거다.”

정부는 근린생활시설을 원칙적으로 ‘주거 용도’가 아니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전입신고는 가능하다. 모순矛盾이다. 전입신고는 누군가가 해당 건물을 ‘거주지’로 쓰겠다고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다. 근린생활시설에 누군가가 전입신고를 한다면 정부나 지자체는 반려해야 맞다. 세입자 등 실제 거주자를 보호하려는 조치였을지 모르지만 근생 빌라를 묵인하는 역효과가 발생한 셈이다. 

사실 이게 근린생활시설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는 ‘위반건축물’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대표적인 게 2019년까지 존재했던 ‘이행강제금 5년 관행’이었다. 가령, 전용면적 85㎡(약 25평) 이하 주거용 건물에 위법사항이 발견돼 원상복구 명령이 떨어졌다고 치자. 2019년 4월 건축법 개정 전까지 이 건축물의 주인은 이행강제금을 내면서 5년만 버티면 됐다. 5년만 지나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적 이유로 ‘위반건축물’을 모두 철거할 수 없다 보니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건축법 개정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전용면적 85㎡ 이하 주거용 건물에 적용되던 이행강제금 부과횟수 제한이 사라졌다. 근생 빌라로 내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꼼짝없이 수백만원의 이행 강제금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눈속임으로 근린생활시설을 주택으로 만들어 분양한 ‘사업자’나 안전한 매물이라고 소개한 ‘공인중개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 이행강제금을 얼마나 내야 하나.
“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연 400만원에서 70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 매년 부담해야 하나.
“그렇다. 월세 대신 내집 마련을 하고 싶어 아파트보다 저렴한 주택을 찾았던 건데, 매년 수백만원을 계속해서 내야 한다. 우리는 1주택자다. 이사를 하려면 이 집이 팔려야 가는데 이런 상황에서 집을 팔 수도 없고 집을 옮길 돈도 없다.”

피해자들은 2020년 11월 구청에서 발송한 공문을 보여줬다. ‘화재안전 100년 대계’ 수립을 위해 추진 중인 화재안전특별조사에서 위반건축물로 적발됐다는 통지였다. 오는 2월 12일까지 ‘원상복구’를 하지 않는다면 이행강제금을 내거나 집을 떠나야 한다.

✚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강제금을 낼 돈이 없어서 전입신고만이라도 다른 곳에 해두려고 친지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다른 집을 살 수도 없고 전세를 구하기도 힘들다. 우리 이웃집엔 초등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가 있는데 거리로 나앉게 생겼다. 그래서 정부에도 우리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원론적인 답만 돌아오고 있다.”

✚ 대답이 어떻게 왔나.
“국토부에서 이행강제금을 절반쯤 경감해 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1억4000만원대 빌라를 분양받아 은행 이자도 간신히 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행강제금을 몇백만원씩 매년 내는가. 건물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속인 공인중개사는 벌을 받지 않는데, 실거주자만 처벌을 받는 상황 아닌가.”

✚ 근생빌라를 지은 건축주나 부동산중개사의 연락처가 있을 것 아닌가. 
“중개사 없이 분양사무소에서 계약했는데 그 직원들과는 연락이 안 된다. 공인중개사에게 소개받은 피해자들도 있지만 중개사가 동네를 떠나고 없는 경우가 많다.”

✚ 정부에 요구한 것은 어떤 것들인가.
“양성화다. 법안은 이미 발의돼 있다. ‘특별조치법’이다. 이득을 보기 위한 임대사업자도 아닌 정말 집 한채가 전부인 실거주자들을 위해 법안이 빨리 통과됐으면 한다.” 

이들이 말한 특별조치법은 윤영찬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11월 20일 대표 발의한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특별조치법)’을 말한다. 2020년 6월 30일 이전에 준공한 특정건축물 중 전용면적 85㎡ 이하인 주택 등에 적용하는 특별법안이다. 골자는 2014년 때와 마찬가지로 1년간 ‘양성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위법 행위를 계속 양성화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할 수 있다. 하지만 위반건축물은 2014년에도 구제된 사례가 있고 지금도 정부는 주거안정을 꾀하기 위해 일부 규제를 완화했다. 

✚ 형평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특수한 사례를 우리에게만 적용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선례가 있지 않나. 임대 사업자들은 호텔이나 다른 건물을 주거용으로 쓸 수 있도록 해줬다. 그 사업자들도 공동주택에 필요한 주차장 규제는 면제받았다. 서민 주거문제 해결이란 관점에서 ‘특별조치법’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 이미 집을 마련한 서민들이 이행강제금을 내지 못해 떠나게 되는 일을 막아줬으면 좋겠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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