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소비의 놀라운 파급효과
독일ㆍ일본도 발행하는 지역화폐

지역 경계선을 넘어가면 쓸 수 없다. 대형마트에서도 못 긁는다. 발행비용엔 세금이 투입된다. 이렇게만 보면 지역화폐는 비효율의 끝판왕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지역화폐의 경제성을 지적한 이유다. 그런데도 지역화폐의 발행액은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이유가 뭘까. 양준호 인천대(경영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양 교수는 지역화폐 성공사례로 꼽히는 인천시 ‘이음’의 설계에도 참여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양 교수를 만나봤다. 

양준호 교수는 관점을 바꾸면 지역화폐의 경제효과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양준호 교수는 관점을 바꾸면 지역화폐의 경제효과가 드러난다고 말했다.

✚ 지난해 9월 발표된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의 ‘지역화폐 효과’ 요약본을 두고 SNS를 통해 ‘한심하다’고 평가했다. 조세연이 최근 보고서를 보완해 다시 게재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가. 
“조세연은 통계를 바탕으로 실증 분석을 했다. 결과가 잘못됐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역화폐의 경제효과를 드러내기가 어렵다.”

✚ 무슨 시각인가.
“지역화폐를 법정화폐와 단순하게 비교하는 시각이다. ‘지역 내에서만 소비가 가능하고 대형마트에선 쓸 수 없어 불편하기까지 한 데다 발행과 관리에 막대한 세금까지 든다.’ 이렇게만 보면 지역화폐는 비효율의 끝판왕이다.”

✚ 이 논리가 잘못됐다는 건가.
“지역화폐를 통한 거래행위에만 중점을 뒀다. ‘동네슈퍼에서 지역화폐를 쓴다’에서 분석을 끝냈으니, 무슨 경제효과를 찾을 수 있나. 하지만 ‘대형마트에서 쓰일 돈이 동네의 작은 소매업체에서 대신 쓰였다’는 관점에서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 어떻게 달라지나.
“‘소비 이후’를 쫓아가 보자. 소매업계의 매출 증대는 도매업계에도 이익이고, 지역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에도 이익이다. 지역경제 생태계에 자극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총생산(GDP)에 영향이 없을 순 있지만, 시민들의 소비구조를 바꿀 수 있다. 그간의 어떤 경제정책 중 이런 효과를 낸 건 없다.”

✚ 반대로 대기업 유통업계의 매출이 줄지 않는가. 
“한국 유통산업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조원을 버는 유통 대기업을 걱정해야 할 때인가.”

✚ 조세연이 주장한 ‘게임이론’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각각의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서로의 소비를 빼앗는 ‘제로섬’이라는 거다. 실제로 국내에선 지역화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A 지역화폐의 경쟁재는 B 지역화폐가 아니다. A 지역화폐를 B 지역에선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화폐의 경쟁재는 현금 또는 신용카드다. 다른 지역의 소비감소를 걱정하는 건 기우다.”

✚ 정부든 지자체든 전시ㆍ과시 행정을 펼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경쟁하듯 지역화폐를 발행할 우려도 있다. 
“국내에선 인천과 부천, 시흥이 지역화폐 활성화에 성공한 지자체로 꼽힌다. 세 지자체의 지역화폐 정책을 자문한 적이 있다. 이들 지역은 각각 면이 맞닿아 있는데도, 서로가 잘되고 있는 점을 본받는 데 집중하더라. 요즘엔 시스템이 ‘지역화폐 남발’ 우려를 줄이기도 한다.”

✚ 어떤 시스템인가.
“종이형 상품권 대신 카드형 간편결제 플랫폼으로 바뀌고 있다. 지자체가 원한다고 발행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민이 카드를 신청해야 받는 구조다. 덕분에 발행 비용과 관리 비용이 감소했고, ‘깡’ 우려도 줄었다.”

✚ 어찌 됐든 지역화폐는 지역 내로 소비를 묶는다. 다른 지역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제로(0)’일 순 없는데.
“그렇다 한들 그게 지역화폐를 멀리할 이유가 될 순 없다. 지방의 국민도 서울에서 주로 돈을 쓰는 시대다. 이 때문에 지역경제가 곡소리를 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각 지자체가 수많은 ‘지역경제 활성화’ 정책을 쏟았지만 그 효과가 어땠나. 지역화폐는 훌륭한 대안이 될 거다. 일본엔 200여개의 지역화폐가 있지만 다른 지자체의 소비 감소를 우려하진 않는다.”

✚ 일본에도 지역화폐가 있나. 해외 사례가 궁금하다.
“지역화폐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미국과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불황 극복 수단으로 도입했지만 중앙은행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금세 폐지됐다. 최근 들어선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재생을 목적으로 여러 국가에서 지역화폐 정책을 실험하고 있다.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전략이 많다.”

✚ 사례를 들어 달라.
“캐나다 지역화폐 ‘토론토달러(Toronto dollar)’는 사용자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진 않는다. 캐시백이나 할인발행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결제를 할 경우, 금액의 10%가 자동으로 기부된다. 마을가꾸기 활동 등 지역재생에 쓰인다. 토론토달러는 소비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을 꾀하고 싶은 시민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무미건조한 숫자에 불과한 화폐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다.”

✚ 또 어떤 게 있나.
“소비 촉진을 목표로 나온 지역화폐도 있다. 독일의 킴가우어(Chiemgauer)는 발행 후 3개월마다 화폐가치가 2%씩 줄어든다. 쓰지 않으면 값이 내려가기 때문에 지역민의 적극적인 소비를 유도했다.”

✚ 국내 지역화폐 구조는 단조롭다. 캐시백 혜택을 주는 대신 사용처에 제한을 뒀다.
“한국의 지역화폐 생태계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다. 경제효과 논란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다만 ‘사용처 제한’이 있음에도 시민들이 지역화폐를 쓰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어떤 시사점이 있나.
“지역화폐를 처음 도입할 땐 ‘실패할 게 뻔한 포퓰리즘’이란 비난을 받았다. 온누리상품권과 다를 게 뭐냐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화폐는 비즈니스 관점에서 카드사와 겨뤄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도입이 빨랐던 온누리상품권보다 누적 발행액이 많다. 결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시민인데, 이들이 지역화폐를 선택했다는 얘기다.”

✚ 순전히 캐시백 혜택 때문 아닌가.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10% 할인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의 실패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 지역화폐를 잘 운영 중인 지자체는 이 정책을 소비 행위에서 끝내지 않는다. 배달, 온라인 쇼핑몰 등과도 잘 연계하고 있다. 지역경제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다.”

✚ 캐시백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혜택인데.
“애초에 관官 주도 정책으론 성장에 한계가 있다. 지금은 아무리 잘 써도 지자체가 발행하는 상품권에 불과하다. 지역시민이 기획하고 지자체가 조력하는 방식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거다.”

✚ 쉽지 않은 과제다. 당장 개선할 점은 무엇인가.
“활용범위를 넓혀야 한다. 지금은 유통시장에서만 쓰이고 있다. B2B(기업대 기업간 거래)에도 지역화폐가 쓰인다면 지역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방세 감면 등 지자체에서 혜택을 주면 지금이라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