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의문도 못 푼 화재 스캔들
대중화 앞둔 전기차의 연쇄 화재

전기차 시장에서 화재 이슈는 민감한 사안이 됐다.[사진=뉴시스]
전기차 시장에서 화재 이슈는 민감한 사안이 됐다.[사진=뉴시스]

전기차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연쇄 화재 사고가 일어나고 있는데, 원인이 오리무중이라서다. 부품 문제인지 설계 문제인지로 책임공방이 갈리는데, 자동차 메이커도 배터리 제조업체도 ‘두루뭉술한’ 답변만 내놓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네 탓’이라며 공방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번만은 조용하다. 마치 ‘불을 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이들이 ‘강 건너 불구경’을 함께 하고 있는 꼴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전기차 화재 스캔들에 숨은 문제점을 취재했다. 

전기차가 또 불탔다. 피해차는 ‘코나EV(현대차)’다. 지난 1월 23일 대구에서 충전 중이던 차에 불이 붙었다. 현대차는 코나EV 고객에게 “고객님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리며, 앞으로도 안전하게 차량을 이용하실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콧대 높은 제조사가 고개를 숙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불에 탄 차는 화재 위험으로 리콜(시정조치)을 받은 차였기 때문이다. 

전기차 화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테슬라를 비롯한 여러 브랜드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다만 코나EV는 연쇄 화재란 점에서 특별하다. 2018년 이후 20여건의 화재 사고가 터졌다. 연쇄 화재로 구설에 오른 모델은 코나EV만이 아니다. GM의 쉐보레 ‘볼트EV’도 세계시장에서 5번이나 화재가 났다. 

두 모델은 지난해 말 리콜 조처됐다. 현대차는 총 7만7000대 규모의 코나EV(2017년 9월~2020년 3월 생산분)에 리콜을 통보했고, 글로벌 GM 역시 6만9000여대의 볼트EV(2017~2019년형)를 리콜했다. 각 제조사는 신속하게 움직였지만 안전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리콜을 거친 코나EV가 불에 탔기 때문이다. 대체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화재의 원인을 명확하게 가리지 않은 채 리콜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두 회사는 리콜을 통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실시했고, 배터리 충전 한도를 낮췄다. ‘배터리 과열이 화재의 원인 중 하나’라는 걸 의식해 100% 충전할 수 있는 배터리를 덜 충전하고 있다는 거다. 

문제는 ‘배터리를 100% 이상 충전해서 불이 났는지’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란 점이다. 그저 전기차의 핵심부품인 ‘배터리가 문제가 아닐까’라는 것만 추정됐을 뿐이다. 어떤 문제 때문에 전기차에서 계속 불이 나고 있는지 검증하지 않은 상태에서 리콜이 진행되고 있으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의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3년간 20여대 가까운 차가 불탔는데도 왜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느냐다. ‘열심히 조사를 하고 있는 가운데 찾지 못했거나’ ‘확인되면 문제가 커질까봐 열심히 조사를 안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일단 제조사들은 “열심히 조사를 진행 중인데,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게 쉽지 않다”고 항변한다. 이 알쏭달쏭한 얘기를 풀어내기 위해선 일단 배터리가 전기차에 얹어지는 과정부터 봐야 한다. 

코나EV의 사례다. 먼저 LG화학(현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셀을 만들어서 에이치엘그린파워(LG화학-현대모비스의 합작사)에 공급한다. 에이치엘그린파워는 개별 단위의 배터리셀을 모아 배터리팩을 조립한다. 이를 다시 현대모비스가 납품받아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각종 보호ㆍ제어시스템을 장착해 배터리시스템어셈블리(BSA)를 만든다. BSA가 최종적으로 코나EV 새시에 얹어지는 구조다. 

이 복잡한 단계 중 어디에서 불씨를 만들어졌는지가 관건이다. 책임은 자동차 제조사(설계 문제), 배터리 제조사(부품 문제) 둘 중 하나다. 코나EV는 현대차, 볼트EV는 GM, 공교롭게도 두 모델의 배터리 납품업체가 LG화학이란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 vs LG화학’ ‘GM vs LG화학’의 양상이다. 

코나EV의 경우 원인이 일부 드러나긴 했다. 국토부는 지난해 10월 현대차의 리콜 조치를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산하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결함 조사 결과, 배터리셀 내부의 양극판과 음극판 사이에 있는 분리막이 손상돼 내부 합선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확인됐다.” 

배터리셀이 문제로 보인다는 건데, 이렇게만 보면 LG화학이 용의자다. 그런데 ‘가능성’을 언급했다. 진짜 원인이 뭔지는 아직 모르겠다는 뜻이다. 이렇다 보니 국토부가 밝힌 리콜의 목적도 애매모호하다. ‘유력하게 추정한 화재 원인을 시정하기 위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화재 원인을 두고 다양한 각도에서 조사가 진행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조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GM 역시 화재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다. “화재가 난 차량은 완전 충전 상태이거나 거의 충전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사고원인은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제조사의 피해보상 책임과 직결된 민감한 사안이다. 누구의 결함인가에 따라 상황이 180도 바뀐다. 예컨대, 차 제조사의 설계 문제라면 현대차그룹과 GM의 미래 전략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두 회사는 전기차에 상당한 규모로 투자해 왔다. 완성차 판매시장의 성장세가 이미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기차 시장이 새 대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LG화학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한 선두권 업체다. 점유율은 23.5%로 1위 사업자 CATL(24.0%)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LG화학의 기술 결함으로 최종 결론이 날 경우 치명적인 이미지 손상을 입게 된다. 

당연히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제조업체는 큰 타격 없이 사건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할 공산이 크다. 정확한 화재 원인을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책임을 통감하는 제조사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참고 : 앞서 언급했듯 전기차 화재 이슈는 각 기업의 명운이 걸린 이슈다. 비판의 날을 세울 법한데도 ‘치열한 책임 공방’이 벌어지진 않고 있다. 마치 여러 명의 용의자가 불구경을 함께 하는 형국이다.] 

전기차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LG화학과의 협업사를 보유하고 있고, GM도 조인트벤처를 통한 협업을 꾀하는 중”이라면서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완성차 업계가 배터리 시장의 선두업체인 LG화학과 정면충돌하긴 쉽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또 있다는 거다. 바로 정부다. 업계 관계자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해가면서 친환경차인 전기차의 시장 파이를 키워왔는데 화재 사건으로 혈세를 낭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고개를 드는 상황”이라면서 “코나EV뿐만 아니라 전기차 전반의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싶어 하는 눈치”라고 설명했다. 

답답한 건 국민들이다. 차량 화재는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건 물론이고 주변의 차량과 시설물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은 “정부와 제조사는 추가 화재 가능성을 둘러싼 원인 분석과 설명, 리콜 확대 적용 여부를 속히 결정해줘야 한다”면서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면 전기차 시장의 발전도 없다”고 꼬집었다. 화재 스캔들을 둘러싼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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