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노선 의존도 부메랑
LCC의 복잡한 추락 이유

한없이 성장할 것만 같았던 항공업이 최악의 위기 ‘코로나19’를 맞았다. 그나마 대형항공사(FSC)는 화물운송으로 버텼는데, 저비용항공사(LCC)는 유동성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걷힌다고 다시 회복세를 타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국내 LCC의 체질이 워낙 허약하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벼랑 끝 LCC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국내 LCC 업계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은 불투명한 상황이다.[사진=뉴시스]
국내 LCC 업계의 포스트 코로나 전략은 불투명한 상황이다.[사진=뉴시스]

“지난해 초 회사가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몸집을 줄일 때만 해도 ‘지나가는 비’라고 생각했다. 유급휴가를 받고 쉴 때도 큰 걱정은 없었다. 그렇게 1년이 허망하게 흘렀다. 중국으로 갔던 기장들도 해고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갈 길을 못 찾더라. 코로나19가 백신으로 진정된다고 해도 걱정이다. 항공업, 특히 몸집이 작은 LCC의 정상화를 기대하는 건 쉽지 않다.”

국내 LCC의 3년차 부기장의 한탄이다. 해외 조종학교에 들어가 조종사 면허를 따고서 취업한 그는 유독 LCC 업계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이유가 뭘까. 일단 각 회사의 상황을 따져보자. 


LCC 선두업체 제주항공은 지난해 3358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328억원을 기록했던 2019년보다 적자폭이 커졌다. 돈 벌어들일 구석이 국내선뿐인데, 출혈경쟁이 워낙 심해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매달 300억~400억원 상당의 운영자금을 메우는 것도 버거웠던 탓인지 지난해 8월엔 유상증자로 신규자금을 조달했고, 기간산업안정기금에도 손을 뻗었다.

진에어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847억원으로, 전년(488억원) 대비 큰 폭으로 늘었다. 에어부산은 2020년 1970억원의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37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던 2019년보다 손실폭이 4배나 커졌다.

제주항공이 인수를 포기한 이스타항공은 존폐기로에 섰다. 재매각에도 실패하면서 지난 1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플라이강원, 에어로케이, 에어프레미아 등 신생 LCC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3사 중 비행기를 띄운 곳은 플라이강원뿐이다. 에어프레미아는 비행 한번 못하고 면허 취소 위기에 내몰렸다. 3월 5일까지 취항을 마쳐야 면허를 유지할 수 있지만 항공기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그야말로 날개도 못 펴고 사업을 접을 판이다.

그럼에도 LCC 업계의 부활을 점치는 목소리는 작지 않다. 부실 원인인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여객 수요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수 있어서다. 지난 몇년간 저성장 기조에도 해외 여행객이 매년 증가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호황기를 맞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더구나 국내 LCC 업계는 대변혁을 앞두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으로 계열사인 진에어ㆍ에어부산ㆍ에어서울은 하나로 뭉칠 공산이 크다. 3사가 통합할 경우 LCC 국제선 시장의 38.5%(2019년 기준)를 차지한다. 여기에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이스타항공의 점유율(11.3%) 일부까지 흡수한다면 점유율은 절반에 육박한다. 3사의 보유 항공기 숫자도 59대로, 업계 1위인 제주항공(44대)보다 많게 돼 경쟁 우위가 점쳐진다.

일본 여행 불매 운동 여파로 지난해 3분기 일제히 적자로 전환한 건 국내 LCC의 허약한 체질을 잘 나타내는 사건이었다.[사진=뉴시스]
일본 여행 불매 운동 여파로 지난해 3분기 일제히 적자로 전환한 건 국내 LCC의 허약한 체질을 잘 나타내는 사건이었다.[사진=뉴시스]

항공산업이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하는 시장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통합 LCC’는 ‘실적 회복’의 발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통합 LCC가 선두로 치고 나서는 가운데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 등이 견제하는 새 경쟁 구도가 짜일 전망이다. 시장의 기대도 비슷하다. 지난해 3월 8000원대로 곤두박질쳤던 제주항공의 주가는 올해 들어 2만원대를 회복했다. 지난해 3월 4000원에 머물렀던 진에어의 주가도 현재는 1만6000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LCC가 코로나19 백신 보급이 본격화할 때까지 화물 수송ㆍ무착륙 비행 등으로 버티기에 돌입했다”면서 “코로나19로 실적이 곤두박질쳤으니, 감염병이 사라지고 여객수요가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면 다시 호실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정반대의 분석도 있다. 코로나19는 방아쇠였을 뿐 부실의 불씨는 이전부터 타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다른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내 LCC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도 어이없는 안전사고를 잇따라 냈다. 항공기를 점검하고 유지하는 정비인력과 산업도 열악했다. 항공기정비(MRO) 대부분은 해외에 맡겼다.이스타항공의 사례를 보면 경영 관리도 부실했다. 점유율만 늘렸지 뚜렷한 혁신전략을 내세우질 못했다. 지금도 인공호흡기를 낀 채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인데, 코로나19가 잠잠해진다고 상황이 바뀔 것 같진 않다.” 

코로나19란 외생변수가 없었더라도 LCC 업계는 전략적 실패를 맛봤을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국내 LCC는 2019년 2분기에 이미 허약한 체질을 드러낸 적이 있다. 모든 LCC 항공사가 일시에 분기 적자를 냈는데, 이유는 ‘일본여행 보이콧’이었다. 

당시 LCC 국제선 노선에서 일본 노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42.7%(2019년 6월 기준)나 됐다. ‘특정 노선 편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는데도 ‘공급이 많더라도 수요만 받쳐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논리로 대응하다 큰코다친 셈이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경영학) 교수는 “조금만 잘된다 싶으면 해당 노선을 우후죽순 늘리는 국내 LCC의 영업 방식은 불황의 파고를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라면서 “호황일 때 호황이 계속되리라 믿었고, 호황일 때 불황을 대비하는 LCC는 많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노선 다변화를 꾀하기도 어렵다. 국내 LCC는 노선이 대부분 겹친다. 업계가 투입할 수 있는 항공기는 항속거리가 짧아 장거리 노선을 운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LCC 대다수가 보잉사의 ‘B737-800’ 기종을 운용 중인데, 이 기종의 항속거리는 5000㎞ 수준이다. 갈 수 있는 지역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정도뿐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정된 영역을 놓고 여러 업체가 영업을 해온 탓에 극심한 출혈 경쟁이 벌어졌다”면서 “새롭게 개척할 만한 단거리 노선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LCC 업계에도 장거리 노선 취항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문제는 장거리 진출이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멀리 가고, 많이 태울 수 있는 큰 비행기는 비용 부담이 크다. LCC 특유의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내세우기가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이는 감염병이 진정돼도 바뀌지 않는 LCC 업계의 리스크다. 인기 단거리 노선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게 뻔하고, 이는 경쟁적 가격 인하와 영업이익의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코로나19 위기는 LCC 업계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지 모른다. LCC 업계의 섣부른 부활론이 우려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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