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펀드 현주소
특색없는 어린이펀드

자녀에게 쌈짓돈이 생기는 설이 지나면 어린이펀드에 투자하는 부모들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허투루 돈을 쓰는 것보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게 낫다고 여겨서다. 어려서부터 경제관념과 투자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하지만 어린이펀드가 정말 좋은 상품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른 펀드와 비교해 수익률이 높은 것도, 펀드의 취지에 맞는 장기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어린이펀드의 현주소를 분석했다.

어린이펀드의 장기수익률은 국내주식형 펀드에 비해 높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오랜만에 아이들의 용돈 지갑이 두둑해진 설이 지나면 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지는 금융상품이 있다. 바로 어린이펀드다. 어린이펀드의 목적은 펀드 투자를 통해 자녀에게 경제와 금융을 가르치고,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를 대비해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거다. 펀드의 취지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품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투자에 나서라는 투자전문가의 조언에도 부합한다.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다. 초저금리 시대, 이율이 낮은 적금에 돈을 묵혀두느니 어린이펀드에 투자하겠다는 부모가 부쩍 늘어난 이유다.


어린이펀드가 투자자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적립식펀드의 인기가 높아지면서다. 2005년 13조9454억원을 기록했던 적립식펀드의 판매 규모는 2006년 28조524억원, 2007년 58조2445억원 등으로 매년 두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적은 돈으로 투자할 수 있는 데다 어린이를 위한 투자상품이었던 어린이펀드(적립식펀드의 일종)가 인기를 끌었다.

어린이펀드의 인기는 새로 출시한 펀드의 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04년 1개가 출시됐던 어린이펀드(신규 설정 기준)는 2005년 9개로 치솟았다. 이후에도 2006년 2개, 2007년 4개, 2008년 4개 등 꾸준히 새로운 펀드가 등장했다. 설날이나 어린이날이 다가오면 관련 뉴스가 회자할 정도였다.

이랬던 어린이펀드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7개가 출시된 2014년을 끝으로 새로운 상품이 눈에 띄게 줄었다. 2015~2016년 새로 출시된 어린이펀드는 없었다. 2017년 4개의 어린이펀드가 출시되면서 관심이 살아나는 듯했지만 2018년 다시 ‘제로’로 떨어졌다. 2019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2개, 1개의 펀드가 출시되는 데 그쳤다. 투자 전문가들은 어린이펀드의 인기가 고꾸라진 이유를 ‘신통치 않은 수익률’에서 찾는다.

사실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설정액 10억원 이상인 어린이펀드 46개의 수익률을 분석했다.[※참고 :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어린이펀드로 분류할 수 있는 펀드는 1월 27일 기준 120개였다. 설정액이 10억원 이상인 펀드는 47개다. 이중 장기투자 성과인 5년 수익률을 분석할 수 있는 펀드 46개를 추렸다. 46개 어린이펀드 중 국내주식형펀드는 41개였다. 나머지는 해외주식형(3개)과 국내혼합형(2개)이었다.]

1월 27일 기준 46개 어린이펀드의 5년 수익률은 평균 76.1%였다. 나쁘지 않은 성적표라고 여길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른 펀드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 아니어서다. 실제로 같은 기간 설정액 2000억원 이상 국내주식형 펀드 50개의 5년 수익률은 평균 81.2%를 기록했다. 어린이펀드보다 5.1%포인트 높다.

장기투자를 지향해야 하는 어린이펀드가 취지와 다르게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린이펀드의 매매 회전율이 높아서다. 펀드의 매매 회전율은 펀드를 구성하고 있는 투자종목을 얼마나 자주 사고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매매 회전율이 높다는 건 공격적이고 단기적인 투자가 이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매 회전율은 223.9%(연환산 기준)를 기록했다. 1년에 2번 이상 투자종목을 매매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린이펀드의 회전율은 어느 정도일까. 46개 펀드의 평균 매매 회전율은 154.1%를 기록했다. 전체 펀드 평균보다는 낮지만 1년에 한번 이상은 투자종목을 사고판다는 것이다. 매매 회전율이 299.2%를 기록하는 등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매 회전률보다 높은 어린이펀드도 적지 않았다.

조경만 엉클조 아카데미 대표는 “펀드 매매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단기적인 시각에서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방증”이라며 “장기적인 투자관점에서 펀드를 운용해야 하는 어린이펀드의 취지에 매우 어긋나는 운용방식”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또 있다. 어린이펀드는 펀드를 운영할 때 들어가는 운용보수가 높다. 운용보수는 거래수수료·증권거래세 등을 포함한 금액을 말한다. 46개 어린이펀드의 평균 운용보수는 1.54%였다. 주식형펀드의 평균 운용보수인 0.87%의 두배에 달한다. 평균 운용보수가 가장 높은 혼합주식형 펀드의 1.28%와 비교해도 높다. 수익률은 다른 펀드에 비해 낮은데 운용보수만 높다는 거다.


인기 시들해진 어린이펀드

그렇다고 어린이펀드에 담긴 투자종목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46개의 어린이펀드 중 해외주식형 펀드에 투자하는 3개 펀드를 제외한 43개 펀드의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가장 높은 투자 비중을 차지한 종목은 삼성전자·LG화학·SK하이닉스 등이었다. 43개 펀드 모두 세 종목에 투자하고 있었고, 이 종목들의 투자 비중을 합하면 30%를 웃돌았다.

특히 삼성전자는 모든 펀드에서 투자 비중 1위를 차지했다. 43개 펀드 모두 삼성전자의 투자 비중이 20%를 넘었고, 투자 비중이 32%를 넘는 펀드도 있었다. 시가총액이 큰 순서대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주식형펀드와 다른 게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펀드에 어린이란 이름만 붙여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펀드의 장점으로 꼽히는 금융교육 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일부 자산운용사는 어린이펀드에 가입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체험학습·해외탐방·경제교육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펀드에 가입한 모든 청소년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아니다. 추첨을 통해 선발한 일부 인원만 참가할 수 있다. 또다른 장점으로 알려진 증여세 절감 효과도 의문스럽다.

은행이나 자산운용사는 “어린이펀드에 가입하면 미성년인 자녀에게 10년에 1000만원씩 최대 2000만원을 증여세 없이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말로 투자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이는 어린이펀드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적금이든 주식계좌든 어떤 걸 선택해도 증여세 없이 10년에 1000만원씩 증여할 수 있다.

수익률 낮은데 운용보수는 높아


김은미 한국투자자보호재단 전임연구원은 “펀드의 수익률이나 포트폴리오를 따져봤을 때 어린이펀드가 가진 장점은 거의 없다”며 “펀드가 어린이펀드의 취지에 맞게 장기적인 투자관점에서 운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린이펀드라는 이름만 보고 상품에 가입하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며 “수익률이 부진한 어린이펀드보다는 장기수익률이 높고 평균보수가 저렴한 펀드 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어린이펀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산운용사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경만 대표는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어린이펀드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게 맞다”며 “어린이펀드만의 차별성을 찾지 못하면 이름만 어린이펀드인 그저 그런 상품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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