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활용하는 건설사
콘텐츠가 된 주민들의 삶

어느 산업에서건 데이터는 귀중한 자료다. 사업계획을 세워 경쟁할 때나 시장 반응을 파악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 때도 필수적이다. 보수적으로 정평이 나 있는 건설사들도 모아뒀던 데이터를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 속도를 높이는 한편 맞춤형 주거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건설사들이 열고 있는 데이터 시대를 취재했다.  

자신들이 수집해 온 데이터를 주택 내부를 바꾸는 데 활용하는 건설사가 부쩍 늘어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신들이 수집해 온 데이터를 주택 내부를 바꾸는 데 활용하는 건설사가 부쩍 늘어났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아파트를 지으려는 건설사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업을 시작하기 전 고려해야 할 정보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토지 매입과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뿐만 아니라 주변 인프라로 얻을 이익도 생각해야 한다. 학군, 교통, 생활 인프라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하고 인근에서 분양했던 다른 주택의 가격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분양가를 책정하는 데는 통상 6개월이 걸린다. 그러나 대우건설은 새로운 부동산정보시스템을 개발해 이 기간을 2개월 이하로 단축했다. 탄탄히 쌓여있던 데이터를 활용한 결과였다. 

# 지난해 DL이앤씨(옛 대림산업 건설부문)는 수십년간 ‘지면으로부터 86㎝’에 고정돼 있던 싱크대의 높이를 새롭게 설정했다. 싱크대를 주로 이용하는 여성의 평균 신장이 커지고, 남성이 이전보다 주방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현실을 십분 반영했다. 이 역시 데이터가 밑단에 깔려 있지 않다면 불가능했을 혁신이다. 형태만 변했을 뿐 ‘데이터’는 모든 사업에서
필수다. 

건설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업전략 수립부터 입주민의 여가생활까지 건설사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부문은 다양하다. 대우건설은 그간 모아왔던 데이터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용하기 위해 2020년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와 손을 잡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부동산정보시스템(DW-RIS)’은 올해 1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목적은 적정한 분양가를 산정하기 위함이다. 부동산114가 갖고 있는 시세ㆍ학군 등 인프라 데이터, 대우건설이 보유 중인 분양 조건 등 숱한 데이터가 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전에도 대우건설은 다양한 정보를 분석해 적정 분양가를 산정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지만 부동산114와 손을 잡고 빅데이터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정확성이 향상되고 데이터 추출속도가 몰라보게 빨라졌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데이터를 이용해 적정 분양가를 산정했던 건 이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노하우”라며 “이번 시스템 도입으로 분양가 산정기간을 더 단축하고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시스템의 효율성만을 위해 데이터가 사용되고 있는 건 아니다. 

데이터로 맞춤형 주거 상품을 만드는 건설사도 있다. 데이터에서 주택 내부 설비를 향상할 수 있는 힌트를 찾아낸 DL이앤씨가 대표적이다. 2019년 빅데이터센터를 설립한 이 회사는 총 1200만명에 이르는 사용자 정보를 수집ㆍ분석했다. 이를 근거로 내부 벽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설계를 만들었다. 인체 치수의 변화에 따라 내부 설비의 크기도 바꿨는데, 대표적인 예가 싱크대의 높이다. 

한국인 인체치수조사에 따르면 1992년 우리나라 30~34세 여성의 평균 신장은 156.5㎝였고, 2015년에는 160.2㎝로 3.7㎝ 커졌다. 가사 노동에 참여하는 남성이 가파르게 늘고, 이들 남성의 키가 여성보다 크다는 데이터도 분석해 86㎝였던 싱크대 높이를 3㎝ 더 높였다. [※참고 :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 중 부부가 가사노동을 공평하게 분담하는 비중은 2008년 11.8%에서 2020년 22.4%로 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입주민들이 가장 민감한 불편 요소로 ‘소음’을 꼽았다는 정보를 분석해낸 DL이앤씨가 기존 제품보다 소음을 최대 13㏈ 낮춘 저소음 고성능 레인지 후드를 개발한 것도 빅데이터의 성과다. 

데이터는 ‘집’을 바꾸는 데만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데이터를 활용해 눈에 보이는 시설을 만드는 대신 맞춤형 콘텐츠를 생산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GS건설은 지난 1월 11일 브랜드 웹 매거진 ‘비욘드 아파트먼트(BEYOND APARTMENT)’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탓에 주택이나 공동주택 단지 내에서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변화에 초점을 맞춰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전국 24만 세대가 공급된 GS건설 자이에 살고 있는 주민의 삶이 데이터를 거쳐 콘텐츠가 된 셈이다. 

콘텐츠가 된 주민들의 삶

예컨대,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률이 낮다는 데이터를 소개하면서 주거 공간 내에서 밀레니얼 세대가 식물 기르기에 열중하고 있다는 트렌드를 소개하는 식이다. 이밖에도 ‘비욘드 아파트먼트’는 자이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아이돌봄 서비스 운영자, 직접 아파트 디자인 설계에 참여한 스튜디오 대표, 실제 입주민의 인터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최근엔 입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비대면 교육 서비스나 생활 편의를 위한 SNS 챗봇 서비스까지 도입했다. 아파트를 단순 주거공간이 아닌 삶의 플랫폼으로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GS건설 측은 “아직 론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뚜렷하게 쌓인 데이터는 없지만 입주민들의 반응을 축적하고 있는 단계”라며 “앞으로 피드백 등을 수집해 더 나은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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