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업체서 사람 뽑던데…” 직장 내 비물리적 괴롭힘 아시나요?
“경쟁업체서 사람 뽑던데…” 직장 내 비물리적 괴롭힘 아시나요?
  •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이지원 기자
  • 호수 428
  • 승인 2021.02.19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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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호 변호사의 記錄
직장 내 괴롭힘의 무서운 진화

갈등관계에 있는 직장 상사가 머리카락이 많이 떨어졌다면서 업무 도중 청소기를 돌리라고 한다면…. 한발 더 나아가 ‘경쟁사에 채용공고 났던데’라면서 은근히 퇴사를 종용했다면 어떨까. 항의하거나 따져 묻기는 애매하고 그대로 따르자니 속은 까맣게 탈지 모른다. 최근 이런 방식의 ‘교묘한’ 직장 내 괴롭힘이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비물리적 괴롭힘이다.

폭언 · 욕설뿐만 아니라 은근한 퇴사 종용이나 업무 배제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폭언 · 욕설뿐만 아니라 은근한 퇴사 종용이나 업무 배제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2019년)되면서 폭언, 막말, 폭행, 성희롱 등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여기는 인식이 부쩍 높아졌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중요한 성과다. 그렇다고 직장 내 괴롭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앞서 언급한 폭언이나 막말 등이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괴롭힘이라면 최근 직장 내에선 ‘비물리적’ 괴롭힘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가해 근로자들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비물리적 괴롭힘을 더 많이 벌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직장 내 비물리적 괴롭힘은 어떤 것일까. 대표적 유형이 퇴사 종용, 허드렛일 부과, 업무 배제 등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회사 대표나 직장 상사와 갈등이 생긴다. 혹은 직장 내 정치적인 이유로 가해 근로자가 피해 근로자에게 퇴사를 종용한다. 그럼에도 피해 근로자가 회사를 관두지 않으면 그때부터 피해 근로자의 본래 업무가 아닌 허드렛일을 하도록 지시한다. 쓰레기 분리수거나 직급에 맞지 않는 업무를 시키는 식이다. 

나아가 피해 근로자를 본래 업무에서 배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업무에서 배제당한 피해 근로자는 출근을 해도 할 일이 없어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다. 동료들과 업무 관련 대화도 할 수 없으니 직장에서 겉돌게 된다. 게다가 피해 근로자가 맡아야 할 업무를 다른 근로자가 떠안으면서 업무 과중의 화살이 피해 근로자에게 쏠리기도 한다. 동료에게까지 뜻하지 않은 피해를 끼치게 된 피해 근로자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겪는 경우가 숱하다. 

그렇다면 직장 내 괴롭힘의 일종인 ‘업무 배제’의 사례를 살펴보자. 노동청과 법원이 업무 배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 사건은 직원 20여명 남짓의 소규모 회사에서 발생했다. 업무가 많다고 느낀 피해 근로자는 회사 측에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회사의 대표와 이사는 어찌 된 일인지 이 요청을 거부했다.

피해 근로자가 항의하자 괴롭힘이 시작됐다. 다른 회사에서 채용공고가 났다며 피해 근로자에게 문자를 보내 퇴사를 종용했다. 급기야 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해 업무에서 빼 버렸다. 

참다못한 피해 근로자는 노동청에 대표와 이사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노동청은 이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하고 해당 회사에 ‘개선지도’ 공문을 보냈다. 피해 근로자는 대표와 이사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법원 역시 피해 근로자의 편을 들어줬다.

해당 사건을 맡은 대구지방법원은 해당 대표와 이사의 행위는 정당한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사내 네트워크 접속을 차단하는 건 부당하게 피해 근로자의 업무 수행을 방해한 것으로 보고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이처럼 피해를 구제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는 훨씬 더 많다. 피해 근로자가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서지 않는 한 직장 내 괴롭힘은 정당한 처벌이나 피해보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기존 관행대로 했을 뿐이다” “업무상 불가피했다” “더 높은 직장상사 사업주가 시켜서 했던 것이지 내가 결정한 것은 아니다” 등등 가해 근로자의 변명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필자는 묻고 싶다. 관행대로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 따돌린 것이라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닐까. 

필자는 독일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를 들고자 한다. 나치 친위대 일원으로 유대인 대량학살을 집행했던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스스로 무죄를 주장했다.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의무에 충실했고, 명령을 잘 지켰을 뿐이다.” 정말 그럴까.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고 기록한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같이 밝혔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악한 의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책임’을 강조한 셈이다. ‘관행’이나 ‘명령’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서 책임을 회피하는 가해 근로자나 직장이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시행 1년 7개월을 맞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분명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여전히 법망을 피해 사각지대에서 괴롭힘을 저지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7월 현행 법제의 한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극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선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거다. 

인권위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권고한 내용은 ▲4명 이하 사업장 적용 확대 ▲가해자 처벌 규정 도입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의무화 ▲제3자에 의한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 보호 등이다. 필자는 하루빨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개정돼 사각지대가 해소되길 바란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 더스쿠프


정리=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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