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속 만난 대상의 소중함

# 차를 타고 출발할 때면 아이들이 항상 물어봅니다. “아빠 가는데 몇 분 걸려?” 10분 후에 또 물어봅니다. “아빠 얼마나 왔어?” 왜 자꾸 물어보느냐고 물으면 “기다리기 지루해서 그래”란 답이 돌아옵니다. 의자에 앉아있는 것 말곤 할 게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러다 얼마 후에 조용해져 돌아보면 잠들어 있습니다. 도착해서 깨우면 또 물어봅니다. “아빠 몇 분 걸렸어?”

# 사진을 찍는 것도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사진을 찍는 시간은 찰나지만 그 순간을 담아내려면 지루함을 감내해야 합니다. 풍경·야생동물 등을 찍는 많은 사진작가들에게 몇 달 때론 몇 년은 긴 시간이 아닐지 모릅니다. 저에게도 기다림의 결과물이 있습니다. 

#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무렵의 남한산성입니다. 성곽길을 돌며 한숨 돌리던 찰나, 건너편 산등성이를 보니 햇살에 성곽길이 반짝입니다. 머릿속에서 어떤 사진이 나올지 그려봅니다. 망원렌즈로 최대한 당겨 앵글을 잡습니다. 빛도 좋고, 구도도 좋습니다. 사람 한 명만 지나가면 금상첨화입니다. 주문을 외웁니다. ‘한명만 지나가라, 딱 한 명만.’ 

# 그렇게 20분, 또 30분이 흘러갑니다. ‘그만할까. 아니야. 기다린 게 아깝잖아. 평일 낮에 누가 저길 지나가겠어? 혹시 또 알아?’ 생각이 생각을 물고, 고뇌가 꼬리를 붙듭니다. ‘갈까? 기다릴까?’ 

# 40분이 지나고 1시간 가까이 될 무렵입니다. 우거진 나무 사이로 그림자가 올라옵니다. ‘사람인가?’ 카메라에 눈을 대고 재빨리 셔터를 누릅니다. 사람입니다. 왠지 저를 보는 듯 뒤를 한번 스윽 돌아봅니다. ‘이만하면 됐지?’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곤 어느샌가 나무 그림자 뒤로 사라졌습니다. 

# 시간은 상대적입니다. 1시간이 때론 10시간 같고, 때론 10분 같습니다. 정해져 있지 않은 기다림은 더 막막하고 더 길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기다림 끝에 마주한 대상은 소중하고 반갑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기다립니다. 평범한 일상을 말입니다. 간절히 기다린 만큼 일상은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겁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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