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칼날 무뎌졌나
반칙 용납 않겠다 했지만
실제 행보는 수동적

“언젠가부터 공정거래위원장이 보이지 않는다.” 일부에서 나오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을 향한 비판이다. 전임자였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비해 존재감이 약해서만은 아니다. 정책적 결단, 법ㆍ제도의 보완 등의 측면에서 “이게 조성욱호號의 DNA정책이다”고 부를 만한 게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칼날 무뎌진 공정위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의 행보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조성욱 공정위원장의 행보가 뚜렷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갑甲이 을乙에게 불공정 거래를 강요하는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다. 대기업의 갑질을 참지 못해 소송을 제기해도 계속된 대기업의 보복행위와 재판 지연 등으로 회사 문을 닫는 사례도 숱하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역할이 여전히 크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최근 공정위를 두고 다양한 뒷말이 나온다.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고 있느냐는 거다. 공정위의 칼날이 무뎌진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적지 않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으로선 억울할 수도 있다. 나름대로 한 일이 있어서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12월 우아한형제들과 딜리버리히어로(DH)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요기요’를 매각하도록 한 건 똑똑한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의 결합을 막아 독점의 폐해를 막아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에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전담팀을 만들고, 공룡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 규제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공정위가 네이버에 자사 오픈마켓 상품을 우대했다고 26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건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최근엔 구글의 갑질에도 메스를 대고 있다. 

그런데도 조 위원장을 두고 비판이 나오는 까닭은 뭘까. 시계추를 돌려 문재인 정부 초기인 2017년으로 가보자. 그해 6월 공정위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경제계가 들썩였다. 시민단체에서 재벌 지배구조, 오너 사익편취, 일감몰아주기 등을 강력하게 비판해온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당시 한성대 교수)이 공정위원장에 취임했기 때문이었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제도와 시스템 정비에 중점을 두겠다 했고 이를 현실화했다.[사진=뉴시스]
김상조 전 공정위원장은 제도와 시스템 정비에 중점을 두겠다 했고 이를 현실화했다.[사진=뉴시스]

물론 진보와 보수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공정위원장 시절 김 실장이 어떤 성과를 남겼는지는 따지기 어렵다. 다만, 김 실장이 공정위원장 취임 1년 만에 38년간 묵혀 있던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내놨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개정안에는 ▲경성담합의 경우 전속고발권 폐지 ▲위반 행위 유형별 과징금 부과 상한선 2배로 상향 조정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하는 자회사ㆍ손자회사의 지분율 상향 조정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되는 총수일가의 지분율을 상장사ㆍ비상장사 구분 없이 20%로 일원화 ▲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불공정 행위 피해 당사자가 불공정 행위의 즉각적인 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 등이 담겨 있었다.

[※참고 : 이 개정안은 201 9년 3월 국회에 제출됐다. 앞서 일부 개정을 통해 담합 사업자나 공정위에 신고한 자를 보복조치하는 사업자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도록 했다. 공정위가 직권으로 분쟁조정을 의뢰할 수 있는 법적근거도 마련했다.] 

문제는 2019년 9월 김 실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조 위원장이 전임자의 취지를 잘 이어가고 있느냐다.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더 많다. 무엇보다 김 실장이 내놨던 공정위 개정안은 2020년 12월(21대 국회)에야 국회의 문턱을 넘었는데, 가장 중요한 사안이던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 내용이 빠졌다. 

당초 개정안이 나왔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대로 ‘전면 폐지’를 내걸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일부 폐지조차 못한 거였다. 물론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후퇴한 게 조 위원장의 과오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조 위원장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을 밀어붙일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후보자 시절부터 조 위원장이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은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조 위원장이 공정위 출입기자단과 가진 서면 인터뷰 답변을 봐도 알 수 있다.[※참고 : 독자 편의를 위해 1문1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기자단 : “재벌의 시장지배력과 경제력 집중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 위원장 : “재벌의 불합리하고 불투명한 행태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자단 : “전속고발권 폐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 위원장 : “이미 정부의 입장이 정리돼 국회에 제출됐고, 국회 차원에서 충실히 논의할 것으로 기대한다.”

익명을 원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렇게 꼬집었다. “어려움이 있겠지만 각계각층의 의견을 경청해 합리적인 안을 준비해서 국회와 진정성 있게 논의해 나가겠다”고 했던 김 실장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공정거래법뿐만이 아니다. 조성욱號의 행보가 희미하다는 평가도 많다. 지난해 5월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조사를 받은 미래에셋그룹에 4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도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당시 공정위는 “법 위반 정도가 검찰에 고발할 만큼 중대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다만 “검찰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따라야 한다”면서 검찰에 공을 넘겼다. 공정위가 어려운 시기에 기업을 옥죈다는 비판을 피하려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같은 해 8월에는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한화S&C를 조사한 후 ‘심의절차 종료’라는 결론을 냈다. 사실상의 무혐의 결론인데, 당시 공정위는 “그룹 또는 특수관계인이 관여해 지시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시장의 통상적인 거래 관행도 고려했다”고 해명했다. 

그러자 경제개혁연대는 “공정거래법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제재하기 시작한 시점조차 ‘거래 관행’으로 봐서 제재하지 못한다는 건 의문”이라면서 “공정위 조사에서 한화 임직원의 조사방해 행위도 있었는데, 이 조사방해를 허용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일부에선 조 위원장이 한화의 사외이사를 역임했던 경력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공정위 활동을 모두 다 살펴보지 않은 상태에서 내놓는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원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조 위원장은 취임 당시 ‘반칙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고, ‘경제상황이 안 좋다고 후퇴하지도 않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가만 보면 선택적으로 반칙을 용납했고, 후퇴하기도 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자신의 실적이라 생각지 않아서 그런지 지키려는 노력도 한 것 같지 않다.” 

‘공정위원장이 안 보인다’는 지적이 과연 조 위원장의 인지도가 김 실장만큼 되지 않아서일까. 그 답을 조 위원장 스스로 찾아볼 때도 됐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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