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파워로 유지되는 PEF의 세계
‘운용의 묘’ 살리는 다양한 전략

코로나19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시장까지 바꿔놓고 있다. 무서운 바이러스의 여파로 쏟아져 나올 구조조정 매물이 숱하게 많아서다. 하지만 PEF를 둘러싼 시각은 여전히 극단으로 나뉜다. ‘저평가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준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기업 사냥꾼일 뿐’이라면서 얕잡는 시각도 있다. 지금 PEF에 필요한 건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PEF 전ㆍ현직 운용역을 만났다. 

사모펀드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사진=뉴시스]
사모펀드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사진=뉴시스]

2004년 말, 국내에 등록된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의 수는 2개뿐이었다. 2019년 말엔 721개로 늘었다. 같은 기간 약정액은 4000억원에서 84조3000억원으로 급증했다. 2019년 투자 집행 금액은 16조원, 투자대상기업은 500개에 달했다. 

PEF가 “수익만 좇는 무모한 투기자본”이라고 비난받던 건 이제 옛말이다.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막대한 매각차익을 누리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PEF를 보는 시선도 크게 달라졌다. 이런 변화를 끌어낸 건 PEF 운용사의 투자인력들이다. 순전히 ‘맨파워’로 승부하는 PEF 업계는 국내외 최고 스펙의 인재 집합소로도 꼽힌다.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 PEF 시장의 현주소는 어떨까.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영권을 확보가 주요 전략인 PEF 운용역 A씨와 전직 PEF 운용역 B씨의 얘기를 들어봤다. 금융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이들과의 인터뷰를 좌담 형식으로 엮었다. 

✚ 사모펀드 시장을 향한 정책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라임ㆍ옵티머스 사태의 파급 효과로 보인다. 
현직 운용역 A씨(이하 A씨) :
“지난해 부실 사태를 계기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무엇보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인 라임ㆍ옵티머스와 PEF를 똑같이 취급하는 혼선이 줄었다. ‘사모펀드가 뭐길래’란 대중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덕분이다.”
전직 운용역 B씨(이하 B씨) : “라임ㆍ옵티머스 사태 이후 정책 제안도 늘어났다. 주로 ‘투트랙’으로 진행되고 있다.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펀드는 투자자 보호 규제를 대폭 강화하고, 반대로 기관 위주의 펀드는 규제를 확 풀어 모험자본의 순기능을 살리자는 거다.”

✚ PEF는 모험자본으로 분류된다. 이번 기회에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가 풀릴까.
B씨 :
“규제를 완화한다면 감독체계도 강화했으면 좋겠다. PEF라고 허튼짓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또다시 문제에 휘말려 업계에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 건 싫다. 충분히 곤욕을 치렀다.”
A씨 : “대출이나 지분 확보에서 토종 PEF가 받는 운용상의 규제가 몇개 있다. 이 때문에 글로벌 PEF 중심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는데,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큰 기대는 없다. 국내 PEF의 경쟁상대는 글로벌 PEF만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도 경쟁자 중 하나다.”

✚ 대기업과 PEF의 협력 사례가 많다. 사업 재편ㆍ신사업 발굴의 핵심 파트너로 꼽히고 있는데, 왜 대기업이 경쟁 상대인가.
A씨 :
“정작 빅딜에선 PEF가 대출업자 취급을 받고 있지 않나. PEF가 몸집이 큰 매물을 삼키려고 하면 미디어에서 난리를 친다. 노하우가 없고 시너지를 내기도 어려우니 금세 기업을 망칠 거란 우려가 작동한 결과로 본다.” 

B씨 : “우리나라 경제 전반이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게 좋든 싫든 PEF도 이들과 손을 잡고 우호관계를 맺어야 실적이 쌓이고 큰돈이 벌리는 구조다. M&A 시장에서도 말만 파트너일 뿐 전략적투자자(SI)와 재무적투자자(FI)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는 시장이라고 보긴 어렵다.”

✚ 그래도 과거보단 PEF의 위상이 많이 강화했다. OB맥주나 버거킹 같은 엑시트 사례가 등장하면서다.
B씨 :
“저평가 기업을 골라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도, 안목과 능력만으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허황된 얘기다. 부침 없이 꾸준히 성장하면서 최종 엑시트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사례는 사실상 없다. PEF는 투자와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

글로벌 사모펀드 KKR와 어피니티는 2009년 AB인베브로부터 OB맥주를 2조300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만 해도 국내 시장 점유율 50.0%를 밑돌던 OB맥주는 2011년 점유율 51.8%로 업계 1위에 올랐다. 이후로도 실적을 꾸준히 끌어올리며 6조1000억원에 재매각됐다. VIG 역시 버거킹을 1100억원에 인수한 뒤 3년간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2016년 어피니티에 2100억원에 매각했다. 

✚ 왜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을까.
B씨 :
“운용역에 몸담고 있을 땐 수익률 기록, 이른바 ‘트랙레코드’를 중시하는 환경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투자 과정에서 다양한 도전에 직면하고 이를 풀어나가는 과정도 중요한데, 단기실적에만 집착한다. 왜 이것밖에 못 벌었느냐다. PEF는 원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데, 현장에서 요구받는 건 ‘노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A씨 : “연기금ㆍ공제회ㆍ보험사 등으로부터 ‘실탄’을 확보하는 건 오히려 쉬운 문제다. 까다로운 건 투자물건 확보다. 특히 재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견기업의 경우 보수적인 문화가 강하다. 파트너십을 맺고 경영 개선 방안을 마련해서 갔는데도 ‘기업 사냥꾼’이라고 얕잡아 보더라.”

✚ 2004년에 PEF 제도가 정비됐다. 고작 16년 역사일 뿐이다. 
A씨 :
“준비기와 도약기를 거쳐, 지금은 성장기라고 본다. 다만 이 시기에 코로나19란 변수를 맞은 건 안타깝다. 큰손들의 투자 여력이 제한되거나, 투자를 받아도 심사를 강화하는 추세다. 방역문제로 현장실사도 어렵다.”

B씨 : “성장기인 건 맞다. 지난해부터 PEF들이 ‘매입-성장-매각’의 기본전략을 벗어나 다양한 투자전략을 선보이고 있다.”

✚ 어떻게 다양해졌나.
B씨 :
“볼트온 전략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업종의 여러 매물을 인수해 대형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PEF 매물을 PEF가 인수하는 ‘세컨더리 딜(Secondary Deal)’의 횟수도 점차 늘고 있다. 그만큼 PEF 업계의 저변이 확대됐다는 얘기다.”

✚ 성장기에서 한단계 발전하는 데 필요한 건 뭘까.
A씨 :
“엑시트의 성공을 원하는 건 같지만, PEF는 각자의 사명을 갖고 움직인다. 국내 기업의 경영을 개선하는 데 ‘메기 역할’을 하겠다는 이들이 있고,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중소기업의 성장 디딤돌이 되겠다는 이들도 있다. 저마다 차별화된 색깔을 가진 PEF 운용사가 더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장이 됐으면 좋겠다.”

B씨 : “흔히 PEF를 구조조정의 구원투수로 비유한다. 아무리 투수의 공이 빠르고 제구가 정교해도 타선이나 수비 도움을 받지 못하면 경기에서 이기기 힘들다. 코로나19 영향으로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기업이 많을 거고, PEF의 역할은 더 커질 거다. 자본시장의 플레이어들이 함께 협력해서 이 난관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