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사 박물관에서 만난 백남준

# 사람들과의 거리가 자유롭던 시절. 아이들과 자연사 박물관에 자주 갔습니다. 입구에 떡하니 자리잡은 거대 공룡의 모형부터 지구의 탄생기, 각종 동식물의 모습까지 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물론 매점에서 사먹는 고구마 튀김과 음료수도 한몫했습니다. 


# 사진 속 이곳은 지구의 지각변동을 보여주는 전시관입니다. 수십개의 모니터에서 용암이 분출되고 땅이 갈라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때다 싶어서인지 아빠는 아이에게 용암을 설명하느라 바쁩니다. 아이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빠의 설명보다 수십개 모니터가 훨씬 더 신기한 듯 두리번 거리기만 합니다. 아이의 호기심, 수십개 모니터…, 문득 백남준의 작품이 떠오릅니다. ‘다다익선’입니다. 

# ‘다다익선’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타워 작품입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새로 태어남을 자축하며 만들었습니다. 10월 3일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개 모니터를 활용해서인지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를 뽐냅니다. 이 작품은 의미도 심오합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인류가 ‘예술과 과학기술’을 통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백남준의 작품세계를 보여줍니다. 

# 다시 자연사 박물관의 모니터를 봅니다. 여전히 용암이 흐르고 땅이 갈라집니다. 그런데 뭔가 낯섭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실제 화면은 가운데 하나뿐입니다. 윗면과 아랫면은 거울에 반사된 화면입니다. 지구의 과거와 현재가 화면과 거울을 통해 보입니다. 무엇이 진짜 화면이고 무엇이 비친 건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상과 허상이 조화를 이룹니다. 백남준의 작품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백남준을 만났습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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