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 롯데의 민낯
구리점 폐점 수순 밟나
한때 매출 톱3도 촛불 신세
벼랑 몰리는 롯데마트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의 기로에 놓였다. 구리시와의 임대계약은 이미 종료됐고, 그 자리를 채울 새로운 사업자도 결정됐다. 새 사업자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롯데마트는 영업개시 계획일인 4월 20일 전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한때 전국 매출 톱3까지 올랐던 구리점을 롯데마트는 왜 포기했을까. 그 이면엔 롯데가 처한 위기의 상황이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롯데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임대계약이 종료된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의 기로에 서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임대계약이 종료된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의 기로에 서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모처럼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던 2월 22일 오후 2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구리 유통종합시장에 위치한 롯데마트 구리점을 찾았다.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한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월요일 평일 낮시간임에도 1층 식품매장엔 소문이 무색하리만치 사람들이 붐볐다. 점원들도 물건을 옮기고 진열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 사이사이를 더 분주하게 오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온라인주문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피커(picker)였다.

롯데마트 구리점은 지난해 11월부터 ‘세미다크 스토어(semi-dark store)’를 운영 중이다. 세미다크 스토어는 오프라인 매장 일부를 온라인 주문 처리와 배송을 위한 장소로 활용하는 형태를 말한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0월 “세미다크 스토어로 매장 배송 거점화를 본격 시작한다”면서 “잠실점과 구리점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29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런 전략에 따라 구리점에선 온라인주문 물품을 장바구니에 담는 피커를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1층에서 과일을 사던 한수인(가명)씨는 “마트 폐점 소식을 들어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안 그래도 지역 커뮤니티에서 계속 얘기가 나오고 있다”며 “롯데마트가 나가고 다른 대형 마트가 들어오면 쇼핑에 불편함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란 말을 들어서 상품이 얼마나 잘 갖춰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북적이는 1층에 비해 생활용품을 취급하는 2층은 비교적 한산했다. 스포츠용품 매장엔 손님 두어명이 운동기구를 체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 무언가 궁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매장 주인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장난감 전문점인 토이저러스 쪽으로 향하는 길엔 임대매장들이 여럿 늘어서 있다. 하지만 이곳은 마치 다른 점포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군데군데 빈 임대점포들이 눈에 띄었다. ‘새로운 매장으로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적힌 흰 가림천이 흩날리고 있었다.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아이와 옷을 사러 나왔다는 이성은(가명)씨는 “롯데마트가 폐점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인가 보다”며 말을 이었다. “여기 롯데마트가 구리에 있는 유일한 대형마트라 쇼핑하러 종종 오곤 한다. 바로 옆에 롯데아울렛도 있어서 쇼핑하기가 좋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롯데마트가 폐점한다는 소문이 돌더라. 남양주에 있는 이마트도 거리상으론 멀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 지역에 오래 있던 대형마트가 사라지면 많이 아쉬울 거 같다.” 이씨와의 대화를 듣던 아동복코너 점원은 알듯 모를 듯한 미소만 옅게 지었다. 

구리시 지역주민들과 22년을 함께한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의 기로에 서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 1999년 1월 21일 구리시와 점포 부지 약 4만㎡(약 1만2000평)를 20년간 임대하는 장기 계약을 맺고 ‘롯데마그넷’ 5호점으로 구리점을 열었다. 2019년 계약 종료를 앞두고는 2년 재임대 계약을 맺으며 최근까지 영업활동을 이어왔다. 그 계약이 1월 20일 종료됐다. 구리시가 지난해부터 임대계약을 위한 경쟁입찰을 진행했지만 롯데마트는 참여하지 않으며 주인이 바뀌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됐다.

구리시에 따르면 중소형 마트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엘마트가 경쟁입찰에서 5년 계약 기간에 연 임대료 33억원에 최종 낙찰을 받았다. 1차 공모에선 최소입찰가액이 47억원이었으나 연이은 유찰에 입찰가액은 33억원까지 떨어졌고, 5차 공모에서야 엘마트가 낙찰을 받았다.

엘마트는 지난 2월 10일 구리시에 대규모점포 개설 계획을 제출했다. 계획에 따르면 엘마트는 2만8584㎡(약 8661평)를 임대해 4월 20일 영업을 개시할 예정이다. 최종 영업개시까진 아직 단계가 남았다. 구리시가 낸 임대 입찰공고에 따르면, 새로운 사업자는 관내 거주 직원 중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고용을 승계해야 하고, 구리시 소재 전통시장 상인회와 상생협약을 체결해 영업 전까지 협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입찰을 따내긴 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는 얘기다. 

만약 엘마트가 계약을 위한 이행조건을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롯데마트는 현 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롯데마트 구리점 운영의 키를 롯데마트가 아닌 엘마트가 쥐고 있는 셈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게 없다”며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을 아꼈다.

[※참고: 계약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계약 종료일로부터 최대 90일까지 현 부지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엘마트가 4월 20일 영업 개시 계획을 밝힌 만큼 그 안에 철거를 완료해야 한다. 엘마트의 영업 개시가 불발될 경우엔 새로운 임대사업자가 선정될 때까지 롯데마트가 영업을 이어갈 수 있다고 구리시 관계자는 설명했다.]

그렇다면 롯데마트는 왜 구리점 경쟁입찰에 나서지 않았을까. 구리점은 한때 전국 롯데마트 중 매출 톱3위를 기록할 만큼 효자 노릇을 하던 점포다. 앞서 말했듯 최근엔 세미다크 스토어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수익성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롯데마트 구리점 2층의 임대매장 곳곳이 비어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롯데마트 구리점 2층의 임대매장 곳곳이 비어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쇼핑은 최근 몇 년간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곧 역성장했다. 마트를 운영하는 할인점 사업부의 성적이 특히 안 좋았다. 최근 롯데마트가 기록한 영업적자를 보자. 2016년 1030억원, 2017년 2280억원, 2019년 250억원이다. 

그러자 롯데쇼핑은 지난해 2월 3~5년에 걸쳐 백화점·마트·슈퍼·롭스 등 총 700여개 점포 가운데 비효율 점포 200여개를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업손실 규모를 축소해 재무 건전성과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실제로 구조조정은 빠르게 이뤄졌다. 지난해에만 100개가 넘는 점포가 문을 닫았다. 올해도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거라고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롯데마트 구리점이 문을 닫게 되면 한때 잘나갔고 여전히 구리시를 대표하는 쇼핑장소인 이곳 역시 구조조정의 바람에서 피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구리점은 전국 110여개 롯데마트 점포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곳에 롯데가 처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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